나는 꿈이 생겼다. ‘내가 진이를 잊기 전에, 진이가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 없어지기 전에, 돌아가서 진이를 기억하면서 살아가야겠다’
나는 겁이 났다. 이 순간을 떠나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겨우 한 사람 때문에 스스로의 목숨을 잃으려 했던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진이에 대한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의 방향이 모순되었다며 나에게 손가락질할 사람들이 무서웠다. 아직은 진이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진이를 지킬 수 있으면 기꺼이 받을 수 있는 손가락질이었다.
진이는 나에게 자신의 목소리와 나를 걱정하던 진심 어린 눈빛,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갈망하던 발걸음, 그리고 항상 잃지 않았던 선한 미소를 남겨두고 갔다. 그것을 내가 잊지 않는다면 진이를 평생 내 곁에 둘 수 있었다. 그래서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조금씩 힘이 돌아오는 손가락을 온 힘을 다해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차가운 느낌의 천장이 보였다. 돌아왔구나…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아직 나의 자리가 남아있는 이곳으로 나는 돌아왔다. 행복을 어떻게 찾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진이는 나의 전부가 되어있었고 안식처와 행복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안도의 눈물일까, 후회의 눈물일까, 그리움의 눈물일까. 알 수는 없지만 이 눈물로 곁에 잠들어있던 아빠가 눈을 뜨셨다. 아마 내가 죽음의 선택을 한 후부터 내 곁을 이렇게 지켜주고 있으셨던 것 같다. 아빠는 밖에 있던 간호사들을 부르려 잡고 있던 나의 손을 살포시 놓고 밖으로 향하고 돌아올 땐 뒤에 몇몇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들어왔다. 아직 멍한 느낌이 가시지도 않았지만 끝없는 질문이 들어왔고 나는 겨우 고개로 의사표현을 했다.
일단은 돌아왔다. 아마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이를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곁에 둘 수도 없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어디선가 나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두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후에 내가 다시 그곳으로 가게 된다면 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시 눈을 감는다. 나를 밀쳐냈던 진이가 보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진이가 나를 문 밖으로 밀쳐낼 때 약간의 눈물이 보였던 것 같다. 진이는 그곳에서 행복하길,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과 그곳에서 자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길…
진아, 나는 너 덕분에 행복했고 너로 인해서 더 행복해지려고 해. 열심히 사랑하고 나누어주고 아껴주며 나의 길을 잘 닦아내며 걸어가려고 해. 훗날 너를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떠한 후회도 망설임도 가지지 않은 채로 너를 안을 수 있게… 닿을 수 없는 거리를 거슬러 올라가서 너의 손을 잡을 수 있게…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닿을 수 없는 거리> 작가 기연입니다. 저의 첫 번째 소설이 이렇게 끝이 났네요. 평생 노래만 하던 제가 글을 써보겠다고, 소설을 써보겠다고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결말을 정해놓고 쓰인 글이 아니라 사실 중간에서 힘을 많이 잃기도 했고, 길을 잃기도 해서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그래도 용기를 내서 어설프지만 결말까지 왔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고 헐렁한 느낌의 글인 것 같아서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쓴 제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닿을 수 없는 거리>는 어쩌면 로맨스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인간의 삶에 대한 내용을 넣으려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랑을 받는 것과 주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큰 원동력이 되는지, 그로 인해서 나는 수 없이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 우리의 자리는 존재하고 나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꼭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면서 시간을 보내주세요.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