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확신이 불안으로 바뀌었다. 과연 이곳이 삶을 떠난 모든 사람들이 들어갈 문인 걸까, 죽음의 이유와 방식들은 상관없으며 그저 ‘살고 있다’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모인 곳인 걸까? 내가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후회를 한다고 해도 그 결정은 절대 바꿀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했던 결정에 대한 후회들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서 나의 마음에 약간의 안도감을 주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고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떠한 후회도 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이 길을 찾아왔는데, 진이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으면 어쩌지?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다른 길을 몰라서 다시 찾아갈 수가 없는데 진이를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이곳으로 오기로 다짐을 한 이상 나는 진이를 찾아야 했다.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문을 열었다. 문은 그다지 오래 열리지 않았던 문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부드럽고 무겁게 열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문 바로 앞에 진이가 서있었다. 진이는 나를 바로 알아본 것 같았다. 하지만 반가움의 표정이 아닌, 불안함과 약간의 화남이 얼굴에서 비쳤다.
“설희야… 네가 여기 왜 있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여기 왜 와?”
말끝에 가시가 돋아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반기는 것이 아닌 보면 안 되는 사람을 본 것처럼 물어보는 진이의 태도가 서운했다.
“진아, 보고 싶었어. 그 세상에 네가 없으면 내 자리도 없어. 나도 너처럼 나의 자리를 찾아야만 했어. 그래서 노력했어. 네가 말했잖아, 내가 언젠가 이곳에 온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너의 자리를 꾸며놓겠다고. 그래서 왔어.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어. 반갑지 않아?”
“넌 아직 이곳에 오면 안 돼. 너는 아직 그 세상에 너의 사람들과 네 자리가 있잖아? 나도 네가 많이 그리웠고, 너를 볼 날을 생각하면서 이곳에 있었어. 그런데 아직은 아니야. 너무 이르잖아 여기에 아직 너의 자리는 없어 설희야. 그러니까 다시 돌아가.”
진이는 차분하고 담담하고 어딘가 굳건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난 이미 문을 열고 들어왔고, 진이를 만났으니, 그다음엔 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밖에 남아있지 않았는데, 진이는 아직 여기에 내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돌아갈 수 없다. 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새로운 시작이 나를 맞이하고 있어야만 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아닌, 그토록 보고 싶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맞이하는 그런 장면이 펼쳐져있어야만 했다.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진이는 나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진아,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너를 위해서, 너의 곁에 있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나는 여기에 왔는데 어떻게 돌아가라고 할 수가 있어? 네가 나를 세상에 두고 너의 자리를 떠났을 때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았어. 그저 너무 보고 싶었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열심히 노력했어. 너를 잊지 않으려고 너의 그림을 그리고 품 안에 안았어. 그런데 진아, 너를 기억하면서 나의 삶으로 돌아갈 순 없었어. 그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왔어. 올 수밖에 없었어. 나는 네가 없는 선택지를 고를 수가 없었어.”
“나는 너무 이기적인 선택을 했어. 오로지 나를 위해서, 사랑받고 싶어서 이곳에 왔어. 그런데 설희 너는 너를 사랑해 주는 가족들, 친구들 모두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에 있잖아. 너는 그곳으로 가야 해. 아직 시간이 있어, 어느 정도의 기억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너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은 그대로일 거야. 그러니까 다시 돌아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를 기억해 줘.”
진이는 울며 싫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나를 문 밖으로 밀며 말했다.
“너를 만난 건 축복이야. 너의 사랑이 된 건 행운이야. 우리 조금만 있다가 다시 만나자. 내가 있는 곳을 아니까 우리는 분명히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다음번엔 네가 불안하지 않게 더 빛나고 예쁘게 꾸며놓고 너를 반겨주고 안아줄게. 설희야 조금만 더 사랑받고 와.”
진이는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고, 반대쪽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 듯 아무리 힘을 써도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문 너머에 있을 진이에게 말했다. 아주 작고 힘이 없는 목소리로,
“살려줘, 제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길을 잃어버렸어. 진아, 도와줘. 나는 너만 생각하면서 왔어.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왜 자꾸 날 밀어내는 거야…..”
어느 순간 몸에 힘이 빠졌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시야가 흐려지며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되돌아갈 길을 찾으려 걷고 또 걸었다. 어떠한 빛도 보이지 않았고, 어둠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진이는 이곳에 내 자리는 아직 없다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진이는 이 길을 나처럼 되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그저 걷고 걸었을 것이다. 그 문이 나올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되돌아가기로 했다. 어디선가 진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믿음만 있다면 진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