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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연 Jan 05. 2025

말버릇

나는 나를 속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1월 1일이라, 무언가 뜻깊고 성숙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꾸며내지 않고 솔직하게 쓰는 게 내 글의 모양이라 늘 그렇듯 그렇게 써보려고 한다. 


지난 12월은 세상이 참 어지럽고, 마음이 아픈 일이 많았던 달로 기억된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도 그 목소리에 작은 힘을 더했다. 무엇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날에게 조금 더 원해보려고 한다. 부디 더 이상 아픈 사람들이 없기를,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기를,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기도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를, 어디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신에게 빌어본다. 


매년 해가 지날수록 뒤를 돌아보는 날들이 줄어들고 있다. 후회 없는 선택은 없겠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나를 믿으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은 선택의 기로에 서는 날들이 참 많았고, 나답지 않게 즉흥적으로 행동했던 날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기억에 남는 일은 '그래도 잘했다.'로 남아있다. 순간의 창피함으로 기억될 일들도 당시에 말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는 누구나 한다. 다만, 그 후회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후회의 모양은 달라진다. 나를 자책하면 후회는 끊임없이 나를 파고들어서 나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는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나의 대표적 말버릇을 붙이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흐려진다. 어떠한 힘든 일이나 버티지 못할 일들도 '그럴 수 있지'라는 한마디면 모두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사람의 뇌는 단순해서 속이기도 쉽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잘 속인다. 어쩔 수 없었고, 그럴 수도 있는 모든 일에 의미를 두는 것은 시간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했던 말버릇은 이제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때도 쓰인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만의 위로법이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더 크고 자극적이게 느낀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제삼자 입장에서 나의 상황을 보았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면들이 보이고, 그걸 보는 순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20대 후반이 되어서 그나마 느낀 것이다. 


물론 이러한 말버릇이 어느 순간 나에게 상처로 다가올 때가 올 수도 있겠지만, 나의 두 번째 말버릇 '결국 다 지나간다'를 쓰면 해결이 된다. 나는 꽤나 참을성이 많은 편이라 기다리거나 버티는 걸 미련할 정도로 잘하는 고집불통이다. 아픈 것도 잘 참고, 화도 잘 참고, 잠도 잘 참는다. 참을 수 있는 이유는 그저 지나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20대 초반 약 3년간의 연애를 끝으로 이별을 했을 때도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다 무뎌지게 되어있으니, 결국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로 나를 달래고 그렇게 이별의 아픔을 서서히 잊어갔다. 이겨냈다기보다는 잊어갔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할 때도 이가 시리고 피가 나지만 결국엔 끝날 치료이기에 그 말을 머릿속에 써 내려가며 참아냈다. 재수가 확정되었을 때도, 돈이 없어서 병원을 가지 못했을 때도,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바깥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을 때도 이러한 말버릇들이 나를 위로했다. 


기억은 단편만이 존재하기에 아픔도 단편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행복도 단편으로 존재한다. 세세한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화되거나 변질되면서 본질을 잃어간다. 아픈 것을 더 아프게, 덜 아프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어떻게 위로하느냐에 따라서 길은 달라진다. 누군가는 자기 합리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방법을 쓰고 나를 위로하면서 단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모든 말버릇은 나를 속이고 그렇게 만들었다. 


아픈 기억과, 슬픈 기억, 그리고 행복했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저장해 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기억들은 미래의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에 처음부터 잘 여며줘야 한다. 그렇지 않게 되면 결국 이리저리 뒤엉켜서 모든 것이 변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말버릇이 있다. 나는 '그럴 수도 있지', '모든 건 다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끝날 일이야.(별거 아닌 일이 될 거야)'같은 말들로 나를 위로하고 나를 속인다. 그래왔기에 이별을 견뎌냈고, 치과 치료도 견뎌냈고,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조금씩 나아져서 바깥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도감에 어지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주문을 외우고 호흡을 단정하게 고친다. 그리고 깨닫는다. 

'봐, 결국 다 지나갔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아직 살아있어.'


나는 살기위해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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