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에는 최대한 벗어나지 말자.
나는 타고난 집순이다. 프리랜서 뮤지션으로 나의 직업에 도장을 찍은 후 집에 있는 시간은 더욱 소중해졌다. 일주일에 5번 작업실과 아르바이트로 외출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집에 있을 때면 최대한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프리랜서 뮤지션으로 레슨과 공연, 그리고 작업과 아르바이트로 5일을 연속해서 일을 하면 정말 아무것도 손에 잡고 싶지 않다. 나의 체력을 집중해서 쏟아내기 때문에 온몸에 힘이 빠지고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럴 때면 하루정도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계획을 짠 후 실행에 옮긴다.
나의 주변엔 집순이 친구들보다 외출형 친구들이 훨씬 많아서 이런 나를 신기해하는 친구들이 많다. 쉬는 날 집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이렇게 답한다. "나는 집에 있을 때 제일 바빠" 이러한 말을 듣는 친구들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이 나의 계획을 물어보고는 한다.
특이하게도 늦잠을 자지는 않는다. 나의 모든 계획을 실행하려면 시간 분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쉬는 날 계획 안에는 낮잠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좋아하는 인센스를 피우고 명상을 한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환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인센스 대신에 방에 항상 디퓨저를 놓아두고는 하는데, 그 향을 맡으며 30분 정도 명상시간을 갖는다. 지난 5일간 내가 했던 행동들과 나의 다짐들, 그리고 놓쳤던 많은 부분들과 나를 괴롭혔던 말들을 곱씹으며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고 버려버린다. 모든 스트레스들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두면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신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는다.
명상이 끝나면 다가올 5일에 대한 스케줄 정리를 한다. 레슨일정과 작업일정은 모두 작업실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짠다. 레슨은 보통 고정적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이사이 시간을 만들어서 외주나 개인작업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한다. 스케줄 정리는 항상 해오던 것이기도 하고, 파워 J형인 나는 이렇게 모든 일정을 정리해 두고 텍스트로 남겨두어야 마음이 편하다. 보통 스케줄 정리를 할 때에는 좋아하는 차를 타서 마신다. 향과 따뜻함을 좋아하는 나로서 차를 마시는 것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부엌 찬장에는 선물로 받은 티백들이 가득 차있어서 기분에 따라 골라 마시는 재미도 있다.
내 방에는 책상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쉬는 날 계획한 모든 일들은 거의 침대에서 해결한다. 명상과 스케줄 정리, 차 마시기가 끝나도 아직 내 몸은 침대 위에 있다. 이제부터는 선택이다. 이른 점심을 먹거나 글을 쓰거나 둘 중 하나인데, 지금은 입맛이 없어서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를 시작한 후 쉬는 날 중 하루는 글쓰기 리스트를 추가해서 진행한다. 진행한다고 하니까 무언가 대단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저 좋아하고 쓰고 싶은 글들을 쓰기 때문에 일을 한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글쓰기를 일하는 날이 아닌 쉬는 날에 진행한다.
어쨌든 글쓰기도 머리를 쓰기 때문에 피곤이 몰려온다. 요즘 취미에 '범죄다큐보기'가 추가되어서 구독하고 있는 OTT에 들어가서 영상을 켜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감상한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전기장판 위에서 내 몸을 녹이며 다큐를 보다 보면 눈이 무거워진다. 이제 낮잠시간이 온 것이다. 알람을 따로 맞추지 않아도 2~3시간 사이에 나의 낮잠시간은 끝이 난다. 이상하게도 낮잠은 짧을수록 달게 느껴진다. 낮잠이 끝나면 침대에 앉아서 아껴놓고 있던 음악들을 차례대로 감상하는 시간을 보낸다. 음악을 하기에 음악과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있게 되는데 이상하게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특히나 작업을 해야 할 때는 더더욱 듣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틈틈이 좋은 노래들이 들려올 때면 유튜브 재생목록에 저장한 후 쉬는 날이 올 때 듣는 편이다.
내가 침대에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생각하기'이다. 아주 옛날부터 생긴 나의 버릇인데, 끊임없이 생각에 잠긴다. 보통 드는 생각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들과 망상이 주를 이루지만, 침대에서 하는 생각들은 조금 더 깊이 있고 어쩌면 우울한 생각들이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과 불안함, 다가올 5일에 대한 거부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하다가 아이패드 굿노트를 켜서 일기를 쓴다. 몇 달 전에 스케줄 정리용으로 구매한 다이어리에 매일매일 일기를 쓰기는 하지만, 하루에 대한 일기와 나의 생각들을 정리한 일기를 구분해서 쓰고 있기에 전자는 다이어리에 후자는 굿노트앱을 이용해서 쓴다.
앞서 말한 일정들은 글로 보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상상이상으로 하찮은 하루이다. 하찮다기보다는 후회를 많이 하는 하루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직장인들처럼 나의 직급이나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등이 쥐어지는 직업이 아니라서 사실 매일매일 일을 하는 기분이 들기에 이러한 하루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때때로 쉬는 날 밤에 자려고 누울 때면 오늘 하루를 허투루 쓴 것 같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이 생각들이 더 커지기 전에 '지난 일주일과 다가올 5일에 대한 보상'이라는 답변을 나에게 쥐어준 후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번 글은 원래 최대한 나의 우울을 많이 담으려고 했지만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2명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서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몇 년 전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매일 침대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해야 할 것들도 해내지 못하는 일상들을 보냈지만, 다행히도 증상이 점점 흐려지고 건강이 좋아지면서 계획한 일들과 주어진 일들을 완벽히는 아니지만 나의 최선을 다해 해낼 수 있게 되었고, 눈물을 흘리며 하루종일 누워있지는 않게 되었다.
침대는 나의 모든 발자국을 남긴 것들 중에 가장 편안한 것이다.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나른하게 쳐져있을 때면 날아오르는 듯한 가벼움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침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