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생 전자피아노
나의 방에는 10년이 된 전자피아노가 있다. 방을 치우고 구조를 바꾸고 다른 가구들을 버릴 때도 그 피아노는 자리만 바뀌었을 뿐 나의 방 한편에 그대로 놓여있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쉽게 버릴 수가 없는 이 피아노는 나와 아주 오랜 기간 함께 했고, 무엇보다 나의 아버지가 사주신 피아노이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 값진 것처럼 느껴진다.
15살, 처음으로 실용음악학원에 등록을 했다. 내성적이고 낯도 많이 가리고 두려움도 많던 내가 처음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노래'였고, 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학원에 보내주셨다. 처음에는 무작정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고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어쩌다가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그 꿈은 나의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약간의 고민 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합격을 했고, 그렇게 나는 실용음악과 보컬전공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입학예정자가 되었다.
그 후에 아버지가 축하선물로 낙원상가 근처에 있는 악기점에 가서 크리스마스세일을 하고 있는 예쁜 검은색 전자피아노를 사주셨다. 피아노를 사면서 아버지는 가게 사장님에게 "저희 딸이 이번에 학교를 붙어서 예고를 다니게 되었어요"라고 은근슬쩍 자랑을 하셨다. 당시에 나는 조금 창피하였지만, 나의 노력으로 아빠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피아노가 집으로 배송이 된 후 내 방에 설치를 하고 나는 배송상자에 같이 딸려온 악보집을 펼쳐서 유치원 때 배웠던 클래식을 되새기며 연습을 했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피아노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정말 매일매일 연습을 하고 좋아하는 곡들의 악보를 뽑아서 노래를 부르며 연주를 하기도 했다. 날이 좋은 날에는 베란다 창문으로 들려오는 새소리를 배경으로 선선한 노래를 불렀고, 비가 오는 날이면 그에 맞춰서 감성 있는 곡들을 연주하며 흥얼거렸다. 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 실기곡들을 이 피아노와 함께 연습을 했고, 동영상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며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을 즐기기도 했다. 학원 연습실을 가지 않는 날이면 하루종일 건반 앞에서 노래를 만들고 메모를 하다가 그게 지치면 젓가락행진곡을 연주하며 피아니스트를 흉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3학년을 바라보기 몇 개월 전 나는 아버지에게 자퇴를 하겠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비교하는 게 지겹다고, 그 시간에 곡을 더 쓰고 음악인으로서 활동을 하고 싶다고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셨다. 당시 시기상 내게는 검정고시를 보고 조기 입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고 막무가내로 그저 학교를 가지 않고 집과 학원에서 연습과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버지는 담임선생님과 상의 후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다고 말하셨고, 그 후에 돌아온 대답은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모두 만들어줄 테니, 학교에 가서 자더라도 졸업은 하자'였다. 자퇴결정을 절대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나만의 작업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 알겠다고 하고 아버지와 함께 낙원상가로 갔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너 자퇴하는 거 안 말릴 거야 알아서 해'라고 말씀하셨지만, 뒤에서 아버지에게 나의 마음을 잘 돌려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낙원상가에 가서 오디오인터페이스와 마스터키보드를 구매하고 이마트에 가서 노트북을 구매하였다. 우연히도 피아노를 살 때와 같이 크리스마스 세일을 하고 있었어서 비싸지만 약간의 할인을 받고 구매할 수 있었다. 내 방에는 책상이 없었어서 접이식 식탁을 한쪽에 두고 그 위에 노트북과 마스터키보드, 인터페이스를 올려두고 나만의 작업공간을 만들었다. 비트를 찍어보고 코드를 찍어서 트랙을 만들며 그동안 만들어놓았던 노래들을 하나씩 작업물로 완성시켰다.
마스터키보드가 생긴 후 전자피아노를 작업에 쓰는 일이 없어졌다. 전자피아노는 미디트랙이 아닌 오디오트랙으로만 입력이 가능했었어서 수정이 불가하다는 단점 때문에 전자피아노보다 마스터키보드를 훨씬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곡을 만들거나 연습을 할 때에는 종종 쓰기도 했다.
내가 20살이 되고 재수를 시작할 때쯤 다니던 학원이 문을 닫았다. 레슨을 개인레슨으로 바꾸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재수를 하는 매일매일이 너무나 힘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가족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것 같아서 눈치가 많이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습뿐이었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오로지 연습만 했다. 자가반주를 하기로 했기에 노래연습보다 피아노 연습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수십 번 수백 번을 같은 곡만 연주했다. 잘되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연습했다. 어느 날은 너무 연습이 하기가 싫고, 부담감과 불안함 때문에 건반을 치다가 울었다. 건반이 불협을 내며 눌려졌고 나는 그 위에서 펑펑 울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쨌든 해내야 했고, 눈물을 닦고 다시 연습을 했다.
누군가 자는 나를 깨워서 연주를 시키면 바로 연주할 수 있게 나의 몸을 준비해 놨다. 매일 같은 곡만 연주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건반라인만 맴돌았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고 내 손에 익어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다. 그래도 버텨내고 이겨내고 이루어낸 나 자신이 너무나 기특하기도 하다. 지옥 같던 1년이 가장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았던 날이 되었다.
이제 전자피아노는 내 방 한구석에 뚜껑이 닫힌 채로 인형을 지고 있다. 나는 외부에 새로운 개인작업실을 대여해서 쓰고 있고 그곳에는 신시사이저가 놓여있다. 전자피아노는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방 한편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거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불투명해질 때 그 피아노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이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노래했나, 어떤 마음으로 노력했나,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