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나는 20살보다 30살에 더 가까워진 나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모든 나이가 예쁜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가끔 아플 때면 나의 장례식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는 한다.
나는 장례식에 많이 가보지 않았다. 총 2번이었다. 한 번은 7살, 한 번은 20대 초반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와 어쩌면 어느 정도 알 것만 같을 때, 나는 죽음을 보았다. 죽음을 보면 참 모든 게 덧없게 느껴지고는 한다.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끝은 모두가 비슷할 텐데 하는 그런 생각들…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밤에 오는 우울과 깊고 쓸데없이 어두운 생각들을 떨쳐낼 수는 없다.
나의 장례식을 꿈꿔본 적이 있었다. 누가 나의 곁을 지키며 나를 만나러 올 사람들을 반겨줄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었으니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 가장 나를 잘 알고 가장 나를 사랑하고 온 힘을 다해 나를 걱정해 주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매년마다 유서와 함께 1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은 1년 후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참 좋다고들 말하지만, 유서를 쓴다는 것에는 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듯 나를 보고는 한다. 나는 매우 불안정하고 우울감도 심하니, 그렇게 보는 것이 보편적인 반응이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주변에 사람을 많이 두지 않는 버릇이 있다. 10대 때 인간관계(교우관계)에서 꽤나 많은 상처와 배신을 당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을 그렇게 신뢰하는 편도 아닐뿐더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나라도 몇 명의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에게는 모든 것을 퍼줄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애정을 많이 쏟았고, 지금도 쏟고 있다. 20대에 들어서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지만 곁에 남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게 남아있다. 만날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피로도도 그만큼 쌓이기 마련이고 이 관계를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고는 한다. 일로 엮인 사람은 그럴 수 없으니, 적당한 선을 지키는 법을 터득하며 인간관계를 만들어가고 유지하고 있다.
나는 유난히 ‘내 사람’의 기준이 높은 사람이다. 속마음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 마음을 얘기하는 순간 나의 사람이 되기도 하고, 도덕적으로나 배울 점이 많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때에는 낯가리는 나의 성격을 잠시 갈아 끼운 뒤 먼저 다가가서 친해지기도 하는 신기한 사람이다. 후자의 이유로 친해진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이러한 성격은 인간관계에 대한 맺고 끊음을 명확하게 할 수 있기에 참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내 장례식에는 나와 맺은 사람들이 나에 대한 기억들을 안고 방문했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이 있다.
가는 데에 순서 없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그렇듯 이 세상을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는 없기에 떠나는 날을 준비까지는 못하더라고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사실 나는 조금은 과할지도 모르겠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모든 시간들은 어차피 흘러가게 되어있고, 언제가 내가 그 흐름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참 한 적이 있었다. 의미를 찾지 못해서 매일 나의 머리를 뒤적거리며 애착인형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울었었다. 나는 왜 살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아직 죽지 않았으며, 왜 태어남을 결정할 수 없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두려움으로 다가올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지. 물론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과 우울감에서 나오는 질문들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당시의 나는 그걸 알지 못한 채로 힘이 빠져 늘어져만 있었다. 삶에 대한 간절함이라는 걸 딱히 가져본 적은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꿈이 있기에 살아낼 수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사랑이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난 아직 시간의 흐름을 지나고 있고, 이렇게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있다.
나의 장례식에는 사랑이 넘치기를 바란다. 억지로 와서 나 때문에 시간을 버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예의상 오는 그런 마음이 아닌 정말로 나를 기억해 줄 수 있는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와주었으면 한다. 영혼을 믿지는 않지만 혹시나 있다면 나를 잘 보내줄 수 있는 사람들의 곁을 구경하다가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