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세계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 Mar 20. 2022

누가 내 침낭을 당겼다.

(나폴리/이탈리아) 몰랐다. 혼자 하는 여행이 이토록 외롭다는 걸.


(나폴리/이탈리아)


'분명 큰길에서 좌회전이라고 했는데'


아까 길을 알려준 그 사람의 말 대로라면

여기가 분명하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유스호스텔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

숙소도 마찬가지다.



청결하고 안전하며

내부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시내 중심에 위치하면서

가격이 저렴한 숙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여행을 하다 보면

운 좋게 간혹 그런 숙소를

실제로 만날 때도 있긴 하지만.




가격 대비 괜찮다 싶으면

거리가 아주 먼 외곽이거나.


반대로 위치가 좋다 싶으면

주방이 엉망이거나.

찬물 샤워만 가능하거나.

벼룩이 있거나.





주어진 예산안에서

최고의 숙소를 찾기 위해

늘 애를 썼지만


아무리 기를 쓰고 후기를 들여다보며

비교에 비교를 거듭해 선정한 숙소라도


막상 가보면

만족스럽지 못한 점

한 두 개는 늘 있기 마련이었다.





안전하고. 저렴하고

무엇보다 위치가 가까워 선택한


나폴리의 유스호스텔은

역과 직선거리는 가까웠지만


외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도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귀가해야겠다.

불안한 마음도 드는 곳이었다.





내부가 온통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 안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방은 복도 끝에 있었다.


텅 빈 복도.


방은 많은데 사람이 없으니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장면.

공포영화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호스텔. 뭐 그런 제목이었던 같은데.




4인실 방에는

나무로 된 이층 침대가 2개 놓여 있었고

침대는 모두 비어있었다.


어느 자리가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벽 쪽에 붙은 침대 2층에 짐을 풀었다.


차마 불을 끌 수가 없어서

불을 환하게 켜 둔 채로 2층 침대에 올랐다.

눈이 부셨지만 어쩔 수 없다.


방이 파란색이 아니라

분홍색이나 베이지 색이었더라면

좀 덜 무서웠을까.






이탈리아 나폴리.

외진 곳에 위치한 텅 빈 유스호스텔.


여기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세상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삐-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방안은 적막했다.


끼익- 닫힌문이 열리면서

뭐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다.






'음악이라도 들을까'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가방을 뒤져 헤드폰을 꺼내 들고

다시 침대로 올라왔다.


오늘도 긴 밤이 될 것 같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혼자 하는 여행이

이토록 외롭다는 걸.


즐겁고 신나는 순간만큼

초조하고 외로운 순간이 많았다.




티켓을 저렴하게 끊는 법.

교통편 예약 꿀팁.

여행지 맛집정보는 넘쳐났지만


이런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갑자기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음악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나도 그대로 정지 상태가 되었다.


숨죽이고 누워

소리가 나는 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릿속 상상처럼. 호러처럼.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커다란 눈동자 두 개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억' '윽' 비슷한 소리를 목으로 삼켰다.






"히- 아직 안 잤구나. 자고 있을까 봐 살짝 들어오려고 했지"


50대 중반.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 아직 안 잤어요. 괜찮아요" 하고 내가 답했다.





잠시 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이번엔 벌컥!



스페인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떠들며

요란스럽게 등장한 금발머리 여자.


먼저 들어온 갈색머리 여자가

조용히 하라며 손사래를 쳤다.


가방을 내려놓은 금발의 여자는

그제야 침대 위의 나를 발견하고

흘깃 눈인사를 건넸다.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고.

침대에 돌아누웠다. 

놀란 마음을 감추기위해.






사실은 다행이었다. 혼자가 아니라서.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왠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방안을 돌아다니는

금발의 여자는 왠지 미심쩍었다.


'나 가방 털리는 거 아니겠지?'

'하긴 털어도 가져갈 것도 없지'




모르겠다. 

나는 돌아누워 잠을 청했지만

영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누가 내 침낭을 당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금발 여자다.


"우린 브라질에서 왔어. 너는 어디서 왔니?"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저녁을 못 먹었단다.

시간이 늦어서 나가서 먹을 수도 없어서.

방에서 먹어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고소한 찌개 끓이는 냄새가 났다.

어디서난 것인지. 휴대용 버너까지 챙겨 온 걸까.


냄새를 맡으니

왠지 나도 배가 고파지는 것 같았다.


금발머리 여자가 다시 침대로 왔다.


"너 브라질 음식 먹어봤니?"







브라질 음식은 처음이었다.


된장찌개에 밥을 넣고

한참 졸인 것 같은 모양새였고

고소한 고기 냄새가 났다.


낯선 음식을 가리는 나도

제법 먹을만했다.


"한국에서는 뭘 먹니?"

"그러게. 한국 음식은 한 번도 못 먹어봤네"


어느새 나는 그 둘과

무릎이 닿을락 말락한 거리를 두고 앉아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한국 음식 먹어보고 싶어?"


한국 음식이 궁금하다는 말에

나는 배낭 아래 깔아 둔.


아껴두었던 

통조림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금발머리 여자는

이번에도 요란한 탄성을 질렀다.


하나는 깻잎 통조림.

하나는 장조림 통조림.






이탈리아 나폴리.

유스호스텔 복도 끝 방.


긴장, 초조, 무서움으로 채워졌던 여행이

설렘, 신남, 즐거움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한국어. 포르투갈어.

짧은 스페인어와 짧은 영어가 난무하는 밤.


나와 너희는

우리가 되었고


나는 더이상 

파란색으로 칠해진 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

여행지에서는 늘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여행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 Behind story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던

나폴리 유스호스텔. 우리묵었던 복도 방.




이후 우리는 아말피, 폼페이 

이탈리아 남부여행을 함께했다.




첫인상이 강렬했던 금발머리 사만다는

강렬했던 첫인상보다 더 쾌활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당당함

자유롭고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그녀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어딜가나

매순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멜은 늘 바빴다.

우리를 챙기느라. 이모 같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소녀같은 사만다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뜬금 아재개그든 뭐든 다 받아주는

따뜻하고 재치있는 사람. 멜


둘은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


오래된 친구라는 둘.

나는 왠지 부럽기도 했다.





이탈리아 남부여행을 마치고

서로 가는 길이 달라 헤어졌다.


나의 배낭여행이 남미에 닿으면

브라질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여행을 하는 중에

주소가 적힌 명함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나의 친구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 오늘 내 방에서 자고갈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