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으세요?” 종종 듣는 질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시간을 여행하는 ‘타임슬립(Time slip)’물이 인기를 끌면서 경험하지 못한 초자연현상은 늘 궁금증과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가고 싶은 과거가 없어요.” 보통은 그렇게 얘기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면 과거 어느 때로 돌아가도 바꿀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사실 힘들었던 과거로 가서 그 시간을 이겨내고 지금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과거에 좋았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를 되새기며 새 의욕을 다질 생각도 없다. 어제까지 살았던 내 삶이 오늘의 결과가 되었다고 믿는다. 난 유난히 ‘감사’라는 말을 많이 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좋은 미래가 올 거란 꿈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 언젠가부터 유년기보다는 넉넉해지기 시작했다. 주머니의 돈도, 사람과의 관계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난 그걸로 충분하다. 여전히 다른 욕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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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어린 시절로 갈 수 있다면 날 과거로 보내주세요.”
조금 구체적이지만, 요즘 상상해보는 일이다. 몇몇 드라마에서 소재로 쓰였던 스토리이기도 하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초자연현상이니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돌아가신 엄마의 유년기 시절로 가기를 원한다.
엄마가 살았던 오래전 어느 날 경북 상주의 작은 마을에 찾아가 크고 예쁜 집을 지을 거다. 엄마와 주변 친구들에게 공부도 가르치고,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모두 도와주고 싶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근엄하셨다는 외할아버지를 설득해 여자도 배우면 사회에서 쓰임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엄마가 좋아했다는 노래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피아노도 마음껏 부르게 하고 배울 수 있도록. 나이 차 많이 나는 언니들의 옷도 물려받아 입지 않게 동네에 작은 옷집을 하나 차려서 언제든 골라 입고 신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마저 아무에게도 티가 나지 않게 동네에서 후한 인심을 가진 아저씨가 되어 어르신과 가난한 아이들에게 똑같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가 아가씨가 되면 내 아빠를 만나지 않게,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아픈 상처를 몸과 마음에 새기지 않게 꼭 해주고 싶다. 소심하고 주눅이 든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당당하고 세상에 쓰임이 많은 20대 30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전개라면 드라마에서처럼 나는 태어나지 못하게 된다. 엄마가 성장하는 어느 시점에 난 분명히 세상에서 사라진다. 지금의 난 없을 것이고, 엄마의 인생에 아들로서 나와의 추억은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괜찮을 자신이 있다. 엄마에게 받은 충분한 사랑이 있고,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추억이 있다. 고작 내 목숨 하나로 엄마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면 난 과거로 돌아가 그렇게 살고 싶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달 전 어느 늦은 밤 내방으로 와서 이런 말을 하셨다.
"네가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아픈 모습만 보여서 미안하다. 어쩌면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엄마는 우리 아들과 함께 한 추억으로 충분하다. 두용이가 내 아들이어서 고맙다."
내가 엄마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엄마가 꿈꾸던 다른 삶을 도울 수 있다면 난 처음부터 엄마의 아들이 아니었던 고마운 아저씨로 기억되고 사라져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