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의 밤. 북유럽 특유의 맑은 공기가 어둠을 틈타 도시를 씻기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과 골목을 촘촘히 밝히는 가로등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아무 곳이나 앉아서 멍하니 도시를 바라보고 있어도 지금 이 순간은 추억이 될 게 뻔했다. 도시가 주는 아름다움이 내 마음 감동 주머니를 채워 찰랑거린다. 광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연인이 앉아있다.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데, 헬싱키의 밤 풍경이 더해지니 음악이 없어도 선율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한 이들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어떤 대화로 서로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을까?’ 한 뼘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긴 이야기를 한다. 드넓은 헬싱키 광장의 소음과 빛들이 이 커플에게 향해있는 듯 아름답다. 어쩌면 이 커플은 10cm의 작은 우주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성하고 이끌어 온 인생의 과정을 나눌 수도 있고, 보석보다 아름다운 단어로 서로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밀고 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우린 그 어떤 대화에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공간을 만들고 이끌어간다.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 공간엔 사랑도 미움도, 때로 기쁨도 슬픔도 생명을 움트고 존재했다가 소멸한다. 사라지지 않은 감정은 사람의 심장에 머물며 한 사람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병이 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하지만 분명히 있는 어떤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