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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늠 Jan 29. 2023

욕정보다 우정

톨스토이의 <악마>를 읽고

크로이체르(Kreutzer) 소나타는 베토벤의 아홉 번째 바이올린 연주곡이다. 

1800년대 초에 작곡된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고, 1890년 톨스토이는 중편의 소설을 썼다. 발표했을 때, 성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던 <크로이체르 소나타>이다. 펭귄클래식에서 출간된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에는 이를 포함한 네 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다. 각 소설에 톨스토이의 결혼관이 담겨 있다. 

20대에 쓴 <가정의 행복>에서 톨스토이는 어린 시절 꿈꾼 완벽한 결혼 생활을 묘사한다. 

스물아홉 톨스토이는 "관능에 의해 활기를 띠지만, 관능 때문에 타락하지 않는"(『크로이체르 소나타』 서문 12쪽) 형태의 사랑을 그렸다. 나머지 세 작품은 모두 60대에 썼는데, <악마>는 썼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숨기려고 의자 등받이에 숨겨둔 걸 그의 사후에 발견하여 발표되었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를 주제는 위대한데 글을 못 쓰고, 투르게네프는 글은 잘 쓰는데, 주제가 사소하다고 평가했다.(『강신주의 감정수업』337쪽)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글의 소재는 무엇일까.

톨스토이를 설명하는 수사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딴 톨스토이즘은 인도주의, 무정부주의를 일컫는다. 그는 금욕주의와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추구한 깨달음을 얻어 이에 이르고자 했던 구도자적 사상을 띤 작가였다. 



작가란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 진실의 탐구에 종사하는 현자(賢者)이다.
(『톨스토이 악마』  149쪽 / 작가정신 / 옮긴이의 말 중 )     

사람에게 이성만 존재한다면 톨스토이가 꿈꾼 유토피아가 실현되었을지도 모른다. 

톨스토이가 아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숨겨두었던 작품 <악마>는 정욕에 사로잡힌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이르테네프는 신중하고 지혜롭게 영지를 관리하고, 가족의 채무를 성실하게 변제하는 능력 있는 지주가 되려 했다. 그는 스물여섯의 건장한 사내였고, 성적인 자유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 의도치 않게 금욕을 하는 게 힘들어진 주인공은 산지기에게 성욕을 해소시킬 수 있는 여자를 소개받는다. 스테파니다라는 마을 농노의 며느리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혼 적령기였던 예브게니가 자기 신분에 맞는 아내, 리자를 얻은 후 끝이 난다.    

  

이야기의 전환점은 예브게니가 결혼 2년째 되던 어느 비 오는 오전에 시작된다. 

그는 "모든 게 밋밋하고 권태로워" 외출을 했다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계속 쳐다보게 되는 스테파니다를 우연히 마주친다. 그가 스테파니다에게 밀회의 장소를 알려준다. "그의 내면에 있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한 게 틀림"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곤 뒤이은 우연으로 인해 그녀와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자 혼란에 빠진다.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욕구와 사회적 자아가 충돌하다 내면의 자아가 폭발해 버리는 순간, 주인공이 선택한 출구는 파멸이다. 


모 아니면 도처럼 톨스토이가 생각한 선과 악은 명확하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내가 더욱 수긍이 가는 태도는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속 프랑코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을 안 주인공 레누에게 이룰 수 없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즐기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더 현실적이다. 


휘황찬란한 연애사를 경험해서가 아니라 살아온 경험치를 되짚어보면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명확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없는 일은 없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 미루고 묻어둘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흐른다. 19세기 러시아의 현자, 톨스토이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현자는 아니지만 나도 욕정에 휘둘리는 짜릿함보다는 편안한 우정을 선택하고 싶다. 죽고 죽이기까지 하는 극단적인 상황은 이제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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