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를 읽고
20대 초반 어느 겨울, 호주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갔다. 빠듯한 예산에 메뉴 중에서 가장 저렴한 햄버거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던 난, 집으로 돌아올 즈음 대상포진으로 한동안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30대 중반, 아이들이 서너 살 무렵이었을 때 땅끝마을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캠핑하러 갔다. 오래전 사두었던 텐트에서 네 가족이 밀착하여 이틀을 자고 귀가하던 날, 난 쓰러져 응급실에서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안정을 찾은 후 귀가해야 했다.
기골이 장대하진 않아도, 야리야리한 체형과는 거리가 멀고, 곱게 자라지도 못한 내가 잠자리가 바뀌고, 평상시와 조금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몸에 탈이 났다. 그러나 나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고, 아픈 몸을 치료받을 여건도 되었다. 일과의 경중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늦은 밤 내 몸을 뉘 울 따뜻한 방과 이불이 없다면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물며 평생 여행을 다니고, 거리에서 자야 하는 이들이 있다. 홈리스, 노숙인들이다.
경제 위기는 자신을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겼던 사람을 바닥으로 밀어낸다. 1929년의 미국 대공황, 1992년 일본의 장기 불황,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9년 코로나 19와 같은 위기 순간마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월급생활자인 우리 가족에게 한두 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누군가 아파 큰 병원비 지출이 계속되어야 한다면? 이런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이 있다. 큰돈이 필요한 경우, 가장 먼저 현금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떠올린 물건은 집이었다. 거주지를 옮기거나 크기를 줄이는 게 1순위였다. 집은 의식주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출영역이기 때문이다.
집과 한계상황에 대해 새삼 떠올린 이유는『노마드랜드』때문이었다. 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집을 잃고 거리로 나온 후 미국의 유랑 노동자가 된 이들을 취재한 르포다. 집 없이 떠돌며 노동하는 이들을 노마드라 한다. 이들은 노동 의지가 있고, “평생 쉼 없이” 일하지만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막다른 길로 몰릴 때, 가파른 임금 상승이나 일확천금이 없는 한 대개는 가장 큰 지출 목록을 포기하게 된다. 내 주변의 평범한 한국인뿐 아니라 미국인도 마찬가지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미국의 담보대출상품 이름이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신용등급에 따라 프라임, 알트에이, 서브프라임으로 나뉜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저금리 기조에 의해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했고,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자를 대상으로 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역시 높은 등급으로 전 세계에 판매되었다. 계속 오르기만 할 줄 알았던 집값이 하락하면서 저신용자의 연체율은 급격히 높아졌고,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사태가 발생했다.
저자는 린다 메이라는 60대 여성을 주요 인터뷰이로 하여 여러 유랑 노동자들을 3년간 밀착 취재하여 글로 담아냈다. 그 시작은 2014년 8월 하퍼스 바자에 기고한 <은퇴의 종말>이었다. 일을 멈출 수 없는 노년층의 현실을 담은 기사가 나간 후 한 권 분량으로 묶어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이후 2017년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경제적인 모순으로 인해 영혼이 털리는 소모적 노동을 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삶을 고발한다. 노동소득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이들이 불안정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일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도 못하는 현실이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로 사는 한,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린다로 대표되는 노마드들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내리는 결정은 취향의 문제나 취사선택의 개념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뿌리를 내린 이들은 이동하는 삶을 택한 사람을 홈리스라 부른다. 고정된 주거지가 없고, 사회기반 시설을 이용하면서도 돈을 적게 내는 이들을 기생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 집을 포기했지만 이후 노동 빈곤층이 되어 주류 사회로 편입되지 못한다.
차에서 생활하기로 한 이들이 삶을 이어가는 힘은 자존감이다. 밀려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순한 삶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내기 위해 애쓴다. 살려면 음식과 거주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희망이다. 노마드들은 그들에게 닥친 파고를 가볍게 타고 넘어갈 수 있도록 공동체를 형성하여 서로를 돕는다. 헤어짐이 일상인 그들의 생활방식과 달리 그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노마드를 ‘체험’하지만, 결국은 거주지로 돌아가 글을 쓰는 자신이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자조한다.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읽은’ 내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거리로 나선 미국인의 삶에 온전히 동화되기란 더 힘들었다. 서부개척시대에 땅이 남아돌아(원래 주인은 원주민이었지만) 깃발을 먼저 뽑는 사람을 땅 주인으로 삼기까지 했던 미국이 세금을 내지 않는 유랑 노동자들을 야박하게 처우하는 현실이 야비한 미국식 자본주의를 보여주는 듯했다. 전기와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야영공간에서 한 번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고작 2주이고, 주택가에 캠핑카를 세우고 잠들었다간 신고당하기 일쑤인 그들이 도시에 머물기는 요원한 일이다. 땅이 넓어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은 도시에 있는데 그들이 그 주위에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은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보건복지부에서 노숙인 실태조사라는 것을 한다. 노숙에는 일시보호시설·종합지원센터에 머무는 거리 노숙인, 노숙인 생활 시설(자활·재활·요양 시설)에 머무는 거주 노숙인 외 쪽방 주민도 포함한다. 역사 주변에 머무는 노숙인 외에도 일정한 거주가 없이 머무는 사람들이 모두 노숙인에 포함된다. 이들의 수는 (’ 16년) 1만 7,532명 → (’ 21년) 1만 4,404명으로 나타났다. 노숙하게 되는 계기는 실직 42.4%, 사업실패 17.5%, 이혼 및 가족해체 8.9%이다.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은 소득보조 49.2%, 주거 지원 17.9%, 의료지원 12.4%, 고용지원 6.8%이었다. 거처 유형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의식주 중 먹고 머무를 곳에 대한 지원 요청이 가장 컸다. 노숙인의 주된 수입원은 기초생활 보장 생계급여 등 공공부조나 기초연금이라고 답한 비율이 61.5%, 공공근로활동에 의한 소득이라고 답한 비율이 27.7%이었다. 이들의 지난 1년간 월평균 소득은 53만 6,000원이었다. 통계에 잡힌 노숙인의 현황이 이 정도이고, 잘 몰라서 혜택을 받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위기 가정도 있을 것이다.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2022-04-07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참고)
산업혁명의 시기에 기계화에 반대하며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졌다. 지금의 산업 구조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중장년층에게 큰 변화이다. 자동화, 기계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로 들어섰다. 기존의 노동시장에 머물던 노동자들은 자동화, 기계화로 실직의 위기에 처할 수 있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임무는 국가에 있다. 물질을 제공하여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게 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단순히 살아남도록 하는 도움만 주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힘(교육)을 제공하여 사회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더없는 행복이 보이는 온갖 곳에서 나 혼자만 돌이킬 수 없이 배척을 당하고 있소. 원래 나는 어질고 선했소. 불행 때문에 악마가 된 겁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시오. 그러면 다시 선한 자가 되겠소”(프랑켄슈타인 2부 2장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 ‘그것’의 말이다.
책은 420페이지로 끝나지만,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 저자가 “이야기는 미래로 계속 펼쳐지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작가는 물러나야 한다. (397쪽)”고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희망을 품고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 공동체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