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고
2017년 4월 초 『에브리맨』(필립 로스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09년 10월)을 읽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한 후 동네의 지역 카페에서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독서모임에서였다. 책은 혼자 읽기만 했지 지정 도서를 읽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은 처음이었다. 모임장은 독서논술 학원을 운영 중이었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독가였다. 모임장의 추천으로 읽고 모인 자리에서 난 이 책을 혹평했다. 내게 이 책의 화자는 누군가의 말처럼 "세속적으로 성공했으나 난봉꾼으로 막살다가 늙고 병 걸려 죽은" 인간 말종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모임장은 한 남자의 노년과 죽음이라는 보편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니 중년 이후 연령대의 모임원들과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라는 의견을 내보인 터였다. 40~50대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모임원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잠시 휴직을 하고 있거나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죽음과 노년이라는 주제는 아직 먼 세상 이야기였고, 작중 화자가 미국인이라는 점도 공감을 하기엔 거리가 멀었다.
2022년 4월 말 『에브리맨』을 다시 읽었다. 혹평했던 책이었는데 그즈음 이 책이 많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시 읽으면서 좀 당황했다. 예전과는 매우 다르게 읽혔기 때문이다. 노쇠해지는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전혀 공감가지 않았던 '그'가 보이고 한편으로는 이해까지 되었다. 내 아버지는 85살까지 일을 했고, 자전거를 타고 20분 거리의 시장을 다닐 정도로 건강하고 꼿꼿했다. 늘 가던 복덕방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자전거를 탄 채 넘어진 아버지는 이후 서서히 무너졌다. 요를 깔고 생활하던 아버지 방에 침대가 들어갔고,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여 걷다가, 양팔을 보행보조기에 의지하여 집 안에서만 생활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앉을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얕은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다 돌아가셨다. 2년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작품 속 화자가 말했듯 이 책은 "만에 하나 자서전을 쓰는 일이 생긴다면, 그 제목은 『남성 육체의 삶과 죽음』"(58쪽)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듯 미국의 한 평범한 남자의 생에 대한 소설이다. '그'는 자신의 갈망과 충동에 솔직했고, 행동했으며, 때론 외로워했고, 비겁하면서 책임도 다한, 그러면서 고통받고 분노한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6년 전 이 책을 읽었던 나의 시선은 ‘그’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그의 아들들과 같았다. 40대 중반의 두 아들은 "죽은 아버지와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거리가” 멀었고 나 역시 그랬다. 『에브리맨』의 그와 내 아버지의 다른 점은 엄마와 이혼하지 않았다는 것과 폭력 성향이었다.
1년 후 여름,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왜 계속 『에브리맨』이 생각났을까. 그즈음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던 말은 ‘간쟁(諫爭)’이었다. “아버지에게 간쟁하는 자식이 있으면 아비가 무례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있”(『순자』, 자도 29장) 다는 말에서 나온 간쟁의 사전적 의미는 “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히 말함”(네이버사전)이다. 무서웠지만 짱짱했던 아버지가 노쇠해지고, 자식들에게 외면받는 모습을 보면서 난 그걸 아버지가 초래한 자업자득이라고만 생각했다.
동양 도덕의 축인 공자, 맹자가 기준으로 삼았던 요순시대가 있다. 그 시대는 몇천 년 전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태평성대였다. 순임금은 성군이었다.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는 사리분별과는 거리가 멀었다. 후처에게 눈이 멀어 정실 자식인 순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아비였다. 지붕을 고치라고 일러 순이 지붕에 올라가면 밑에서 불을 지르고, 우물을 고치라고 하여 우물로 내려가니 입구를 막아서 죽이려 했다. 하지만 현명했던 순은 미리 대처하여 살아남고, 요임금의 발탁을 받아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 아들 순의 한결같이 지혜로운 처사에 고수 또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아들의 효에 감화된다.
순이 평생에 걸쳐 줄기차게 노력한 끝에 어리석은 아비의 마음을 돌렸는데 줄곧 외면만 했던 내가 과연 아버지를 탓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반백이 다 되어서 처음 했다. 고대 황제의 일화에 나를 빗대어 생각한다는 게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어이없고 어리석은 말과 행동에 “아버지 왜 그러세요... 그건 아니죠...”, “아버지 사과할 건 사과하세요. 정식으로.”라고 웃는 얼굴로 장난스레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게 괜히 마음 쓰이고 후회된다. 모든 후회는 늦는 법이라는데 이런 뒤늦은 후회가 뜬금없이 불쑥불쑥 치솟는 건 한가위여서 그런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