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생 소중한 나
살다 보면 사람에게 상처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한다.
팀 프로젝트가 힘들다고 털어놓을 때도,
결혼생활이 어렵다고 말할 때도,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감정의 충돌은 늘 존재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함께 살아가는 건 불변의 진리지만, 그 안에서 ‘나’를 지키는 일은 선택이고 기술이다.
오늘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마음속에서 되뇌었던
작지만 강한 마법의 문장들을 나누고자 한다.
사람이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건,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그걸 얼마나 오래,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일 때도 있다.
이 문장은 내가 더 이상 감정 소비를 멈추고 싶을 때 꺼낸다.
특히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일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 때
그 사람의 의도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에서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자꾸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씩 나한테로 되돌아온다.
나는 나를 위해 옳은 선택을 했고,
그 사람의 행동은 내 감정을 흔들 수 없다.
이건 상대가 내 감정을 가볍게 여길 때 꺼내는 문장이다.
예를 들어,
“너는 너무 곱씹는 성격이잖아.”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너무 생각이 많나...?’ 하며 자책하기 쉽다.
하지만 그 함정에 빠지면 안된다.
감정은 느낀 사람의 몫이다.
공감해주지 못할 거면, 적어도 탓하진 말아야 한다.
내 감정을 어떻게 느낄지는 내 몫이야. 그걸 성격 탓하지 마.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외우거나,
실제로 말로 꺼낼 수 있다면
훨씬 빨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관계에서 가장 흔한 착각 중 하나는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라는 자기 의심이다.
하지만 감정은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실망했거나, 섭섭했을 때
그 감정을 스스로 부정하지 말고
이건 내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 문장은 감정의 존재를 정당화해주면서,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 의도를 왜곡하거나 내 말의 일부만 해석해서 공격해오는 사람이 있을 때,
이 문장은 방패처럼 나를 보호해준다.
예를 들어,
“네가 그렇게 말한 건 날 무시한 거잖아.”
“넌 항상 자기 생각만 맞다고 해.”
상대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자기 프레임 안에서 해석하고 판단할 때,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이 문장을 통해 내 진심을 다시 중심에 둘 수 있다.
슬픔, 분노, 짜증, 외로움.
불편한 감정들을 우리는 자주 눌러두거나 무시하려 한다.
하지만 감정은 무시하라고 오는 게 아니라, 알려주러 오는 신호다.
이 문장은
내가 지금 무슨 경계에 닿아 있는지,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작점이 된다.
상대가 내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 사람의 감정이다.
그게 곧 내 잘못은 아니다.
특히 ‘넌 왜 그렇게 말하니’,
‘그건 너무 과한 거 아니야?’라는
평가나 비난이 들어왔을 때
이 문장을 마음속에 세워둔다.
불편함과 잘못은 다르다.
이걸 구분할 수 있어야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관계 안에서 가장 어려운 건
이해와 자기 보호 사이의 균형이다.
“그 사람 입장도 이해돼” 하면서
내 감정은 무시하고 넘어가진 않았는지.
이 문장은 그 균형을 잡아준다.
상대를 완전히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내 기준과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이다.
대화는 감정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감정은, 한 번 흔들리면
나 자신을 의심하게도, 작아지게도 만든다.
내가 나에게 해주는 문장들은
세상에 등 돌리기 위한 말이 아니다.
더 이상 숨거나 도망치지 않고,
내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말들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함께 사는 삶이 고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내 안의 울타리는 곧, 우리가 더 건강하게 함께 살기 위한 조건이 된다.
오늘도 나를 위해
마음속에서 한 문장,
작게 속삭여보자.
네 감정을 깎아내리는 사람에게,
더 이상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하나쯤은 마법의 문장이 되어주길 바라며.
나를 지키는 말은, 결국 나를 더 사랑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