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광주 Jun 06. 2023

죽음의 계곡

바위에 부딪치는 통기타 소리가 죽음의 의식 같았다.

  ‘퉁- 투- 둥-' 

   기타 통이 울린다. 바위와 부딪치고, 나뭇가지에 걸린다.

   ' 칭 찌-잉 칭-' 

  덩달아 기타 줄도 울어댄다. 죽음을 부르는 악마의 연주가 시작된 것 같다. 어둠에 묻힌 ‘죽음의 계곡’은 깊이를 갈음할 수 없다. 좁은 골짜기 절벽에 반사된 기타 부딪치는 소리는 공명효과로 더 크게 돌아온다. 소리만큼 두려움도 커진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설악산 등산 가자며 의기투합한 친구 세 명이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모였다. 나름대로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왔다. 군용 탄띠에 수동을 매달고, 군화를 신었다. 탱크에서 사용하는 군용(軍用) 휘발유 버너와 항고(반합)를 챙겼다. 포크송을 좋아하던 성덕이는 통기타를 가져왔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승차시간을 기다린다. 지루함을 달래려 아침이슬 한 곡을 멋지게 퉁긴다. 여학생의 눈망울을 부드럽게 흡입한다. 시선을 느낀 성덕이는 메들리로 ‘그건 너’ 윤형주의 ‘라라라’를 연주한다. 연주를 끝내고 시외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다섯 시간의 지루한 버스 여행은 설악산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준다.     

 


  산행은 설악동에서 출발 대청봉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등산 경험이 없는 초보들이다. 젊다는 패기와 용기가 산행 기술의 전부다. 천불동 계곡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양폭산장’ 시계가 오후 6시 조금 못 미친 것을 보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설악 품속 깊이 파고들수록 걸음은 느려지고,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계곡은 깊은 만큼 빠르게 어둠을 뱉어낸다. 어둠을 뚫고 한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졌다. 살갗에서 부서지는 빗방울은 한여름인데도 차가워 소름이 돋는다. 땀이 식으며 음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산하는 등산객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우리뿐인 듯했다. 

  대청봉까지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깜깜이다. 오르다 보면 끝이 있겠지?라고 서로 말할 뿐이다. 빗방울이 갑자기 굵어지자 누군가 말했다. 

  “비 오면 계곡은 물이 급격히 불어나 위험하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다 얼굴을 마주 본다. 어둠이 사방으로 암막 커튼을 쳐 놓아 깊이를 갈음할 수 없다. 

  “이곳이 몇 년 전에 산악대원 10여 명이 눈사태에 파묻혀 죽은, 죽음의 계곡인 것 같아!” 

  이 한마디는 어둠과 빗방울이 뒤섞여 공포로 변했다. 물이 불어나기 전에 양폭 산장으로 피신하자고 했다. 불안한 상황에서 양폭산장이란 이름만으로도 구조된 것 같은 위안이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산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화는 중단되고 발걸음은 빨라졌다. 성덕이 어깨에 매단 통기타가 정적을 뚫는다. 

  ‘퉁- 투 둥-, 칭- 찌잉- 칭-’

  바위와 부딪칠 때마다 괴성을 지른다. 골짜기에서 공명 되어 되돌아온 소리는 죽음을 부르는 인디언의 주술 소리 같았다. 걸음은 빨라지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누군가 넘어져도 돌볼 여유가 없다. 알아서 일어서고 내려가야 했다. 길을 분간할 수 없어 몇 번이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리본을 이정표로 삼았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누군가 소리 질렀다. 

  “산장이다.” 

  어둠의 침묵을 깨고 죽음에서 벗어나 살았다는 포효다. 넘어져 부딪친 무릎에 통증이 왔다. 인지하지 못했던 발가락물집 터진 곳이 쓰라리다. 긴장이 풀리자 배고픔도 느껴졌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항고 가득 밥을 했다. 된장에 박은 무장아찌 썰어온 것이 반찬이다.

  산장 구석 자리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에 눈을 떴다. 천당폭포에서 쏟아내는 폭포 소리가 산장을 집어삼킬 듯 사납다. 밤사이 많은 비가 내린 것 같다. 

  무모하게 산행을 계속했다면 폭우에 쓸려 설악산 등산객이 실종되었다는 뉴스 속보를 부모님이 보았을 것 같아 몸서리쳐졌다. 설악산 등산을 마치고 낙산, 경포대 해수욕장을 거쳐 15일간의 여름방학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서울에 도착하자 믿기지 않는 부고 소식이 들렸다. 성덕이 아버지께서 15일 전에 돌아가셨단다. 죽음의 계곡에서 폭우를 피해 하산했던 공포의 밤, 그날이었다. 성덕이 아버지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갖고 가셨나 보다….

  성덕이 아버님 묘소엔 뿌리를 내린 잔디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