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특급(2)
버스정류장이다. 저 멀리서 버스가 서서히 다가온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달려가 버스에 오른다. 이어서 한 대가 들어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곳으로 달려간다. 아직 내 버스는 오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타려는 버스는 몇 번이지? 갑자기 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뭐였더라?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소용이 없다. 아침 9시를 한참 넘겼다. 그때 번호 하나가 떠오른다. 마침, 그 버스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그곳으로 달려가려 하지만 이번에는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리에 힘을 주어도 땅에 붙은 듯 제자리다. 답답하다. 잠시 정차했던 버스는 야멸차게 떠나고 나는 홀로 남겨진다. 이제 주위에 아무도 없다. 억울하다. 두렵고 서럽다. 다시 버스는 오지 않을 것이고 온다 한들 탈 수 없을 것이다. 장송곡처럼 처량하게 낯익은 멜로디가 들린다. 그 소리에 눈이 떠진다.
이제는 필요 없는, 오전 7시 45분에 맞춰 놓은 첫 번째 알람음이다. 삭제해야 하는데.... 스마트폰 음량 버튼을 눌러 알람을 끈다. 방 밖에서는 아이들의 인기척이 들린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삭인다. 잠시 후 출입구 도어락 알림음이 들린다. 문이 열렸다가 이내 닫힌다! 이제부터 나 혼자다. 다시 잠을 청한다. 갈수록 머리는 투명해지는데 앞은 보이지 않는다. 생각은 이미 길을 잃었다. 기운이 빠진다. 그대로 다시 잠이 든다.
다시 눈을 뜬다. 낮 12시가 조금 넘었다. 예전처험 출근했다면 동료들과 투덜대며 식사할 시간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떨쳐내려고 한참 뒤척거리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커텐이 창을 봉쇄하고 있는 거실은 천장등이 꺼진 채 어둑하게 버티고 있다. 배는 고픈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해 먹기 싫다. 욕실로 가서 칫솔질을 한다. 이쪽저쪽 대충 닦고 급하게 물로 입을 헹군다. 거울을 응시하자 귓속으로 쨍쩽한 울림이 맴돈다, 계속 알아만 볼 거야? 무슨 대책 있어? 얼마라도 벌어야지! 근처 편의점이라도 알아봐! 그곳은 아무나 구하겠지....
그래서 바로 구했다. 첫 번째 편의점은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가 근무시간이다. 노인요양병원 지하에 있는 편의점이라서 담배와 술, 컵라면는 판매하지 않았다. 당연히 술 취한 손님도 없다.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문병에 적합한 음료와 환자용 기저귀, 물티슈 등이다.
기껏 여섯 시간 일하는 편의점 한 곳에 다녀서 무슨 돈이 돼? 그래서 다른 편의점도 알아봤다. 이곳은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야간 타임이다. 집에서 마을버스로 10분쯤 거리에 있는 아파트 상가 1층이며 술 취한 중년 남성은 물론이고 오토바이 배달을 마친 20대 초반 청년들의 집결지다. 편의점 앞 파라솔을 중심으로 무수하게 수놓은 담배꽁초와 제멋대로 나뒹구는 맥주캔을 치우는 것도 업무 일부다. 가끔 깨진 병과 토사물을 정리하는 것은 덤이다.
한 달 동안 취업사이트 여러 곳을 수시로 드나들며 예전과 비슷한 업종의 직장을 알아보고 지원 서류를 보냈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편의점 알바 생활도 두 달째로 접어들고 있었고 걱정과는 달리 서서히 익숙해진다는 막연한 자신김이 생겼다. 처음에는 꽤 애먹었던 포스기(금전출납기)도 제법 능숙하게 다루게 됐다. 종일 기획서를 쓰거나 원고를 쓰면서 버벅대는 머리를 써야 했던 이전까지의 일보다는 어떤 면에서 나았다. 특히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면 제안서 발표에 대한 부담감과 입찰 결과에 대한 책임감까지, 선을 넘는 스트레스가 내 일상을 쥐락펴락했다. 더 무서운 것은, 외적 스트레스를 내적으로 풀려고 하는 직장 내부의 적이었다. 직장은 그곳이 어디든 무슨 일을 하든, 적군이 우글대는 무원고립의 전쟁터다. 이곳 편의점은 달랐다. 출근하자마자 홀로, 진열대와 냉장고에 부족한 물품을 확인한 후 창고에서 찾아와서 채워놓으면 그만이었고, 손님이 찾은 물건이 없으면 없다고 말하면 그뿐이었다. 박 대표, 최 이사, 장 실장, 이 부장, 오 차장 누구의 간섭도 없다. 손님에게는 거스름돈만 제대로 계산해 주면 끝이다. 아르바이트생인 내게 다시는 찾지 않아도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꿀 빠는 보직이 여기에 있었다. 병원 편의점에서, 그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그렇게 믿었다.
병원 특성상, 오후 6시 이후부터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끝나기만을 고인돌처럼 기다리다가 셔터를 내리기 30여 분 전에 오늘 계산이 맞았는지 시재만 맞추면 된다. 그럼에도 편안하지만 평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가할수록 불안의 끝을 잡고 이어지는 잡념이 머릿속에서 활개를 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꾸 지난 세월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치곤 했다.
20년 넘게 돈벌이로 한 일은 각종 홍보책자의 콘텐츠를 짜고 거기에 들어갈 내용을 취재하고 원고를 쓰고 교정교열을 하는 일이었다. 인기 직종은 아니라도 고용불안과는 거리가 있는, 저임금 고노동의 나름 전문직이었다. 유선 전화에서 무선호출기(삐삐)로 시티폰에서 PCS 폰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세상은 변했다. 피부로 느끼던 종이책보다 온라인의 각종 플랫폼이 더 스마트하고 접근하기 쉽고 편리했다. 영업과 마케팅을 목적으로 굳이 홍보 책자를 만드는 기업은 급속하게 줄어들었고 나의 일도 쪼그라들었다.
회사가 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기업체에는 매년 홍보 책자 제작을 대행할 편집 기획사를 경쟁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절차를 통해 선정했다. 공정성을 위한 제도라고 했지만 매년 경쟁에 참여하는 대행사들은 착취 같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고스란히 기획사 비용으로 준비해야 하는 소모전이었다. 최종으로 선정된 기획사 외에 다른 경쟁업체들은 한 달여 남짓 준비했던 모든 투자가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단 한 푼의 비용도 보전받지 못했다. 입찰에서 두세 번 연속으로 떨어질 경우, 작은 규모의 회사는 거센 태풍을 맞은 고목처럼 휘청댔고 직원들은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적자생존의 야생에서 나 역시도 피라미드의 무게를 밑바닥에서 버겁게 지탱하다가 압사 직전에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도망 나온 상태였다.
편의점에서 잘 지냈디고 믿었지만 무계획의 삶은 숨통을 조여왔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에 나는 없었다. 인간은 뿌리 생물이다. 일하는 곳이 터전이며 잘하는 일이 생명수다. 뿌리까지 통채로 뽑힌 나는 박제된 채 말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다가 금세 바스러질 것 같았다.
아파트 상가의 편의점 야간 타임은 불안함보다 무서움이 앞섰다. 밤 11시를 전후로 술에 제 영혼을 팔아넘긴 중년 직장인들이 좀비처럼 찾아든다. 계산대 앞에서 입을 벌릴 적마다 알코올과 오만 가지 안주 섞인 냄새는 역했다. 자정을 기점으로 퇴근 좀비가 뜸해질 때쯤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무리가 있다. 야식의 도로를 오토바이 질주로 불태웠던 배달의 기수다. 혈기왕성하다 못해 극악무도함까지 느껴지는 그들은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다. 먼저 시비를 걸거나 딱히 위법 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불량스러움으로 가득한 그들의 눈빛은 공격할 약점이나 빈틈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다. 격하게 굽신거리거나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굴어도 안 된다. 그들이 편의점 앞 파라솔을 점거하고 있는 동안 매 순간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새벽 3시가 지나면서 배달의 하이에나도 지친 듯 비틀대는 오토바이를 끌고 하나둘 사라진다. 당분간 인간들과 마주침은 없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시간도 잠시 이내 좀비, 하이에나 인간이 그리워진다. 장르가 다른 무서움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소용 대용량 잔반통을 가득 채운 컵라면 찌꺼기와 국물을 상가 중앙에 자리한 화장실 변기에 버려야 할 차례다. 국물이 위협적으로 찰랑대는 묵직한 잔반통을 꾸부정하게 들고 암흑 속 복도를 헤치고 나갈 때, 머릿속은 극히 단순해진다. 귀신쯤은 만나도 죽지 않아. 혹시 마주친다 해도 이 잔반통을 놓치면 절대 안 돼!
스릴러 체험까지 감내해야 하는 야간 편의점에 비하면 병원 편의점에는 강 같은 평화가 흘렀다. 술 취한 좀비도, 불량한 배달의 기수도, 상가 귀신도 마주칠 걱정이 없다. 이곳 무대의 등장인물은 병문을 온 사람들, 환자들, 의료진이 전부였으며 모두 자신이 원하는 물건만 얻으면 신속하게 퇴장했다. 더 이상의 빌런은 없을 듯했다. 그렇게 믿었다. 이곳 편의점에서는 병원 복도 위에 제멋대로 나뒹구는 맥주캔이나 담배꽁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병원 특성상 7시 30분에 편의점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 역시 이곳의 평화를 도왔다. 그러나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날 문득, 종일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녀석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주요 대상이 나라는 것은 상상도 경계하지도 않았다. 좀비, 불량배, 귀신과는 아주 다른 모양새와 메커니즘으로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띨 띨 띨... 띨 띨 띨... 띨 띨 띨...."
특대형 성인용 기저귀 패드를 찾던 손님을 그냥 돌려 보낸 직후였다. 포스기 옆에 소품처럼 놓여 있던 유선 전화기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고 귀에 가져다 댔다.
"특대형 패드는 아래 칸에 있다고요!"
"네?"
"아까 찾던 그 아래 칸 안쪽에 대형 기저귀 패드가 있다고."
"아... 네...."
편의점 점주였다. 면접 이후 처음 듣는 목소리다. 짜증과 답답함이 뒤범벅된 불쾌지수 높은 말투였다. '아.... 그걸 생각 못했네.... 아래도 한번 확인해 볼걸' 하는 생각이 순간 떠올랐다. 역시 점주가 말한 그곳 깊숙한 곳에 특대형 기저귀 세세트가 놓여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띨 띨 띨... 띨 띨 띨... 띨 띨 띨..."
아까 그 전화기가 또 소리쳤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네??"
다시 어벙하게 답했다.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어떡해요! 방금 손님이 들어왔다가 그냥 나갔잖아."
"네....??"
"내가 보니깐 한두 번도 아니고.... 일하러 왔으면 제대로 해요!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날 지켜본다고? 어디서 뭘 어떻게? 뻔한 스릴러 영화도 아니고 누군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고? 그냥 겁주려고 한 말인가? 아니다! 점주는 내가 기저귀를 제대로 못 찾은 것도, 잠시 핸드폰을 보는 사이에 손님이 들어왔다가 그냥 나간 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어디선가 지켜보는 것이 맞았다. 물론 그게 어디인지 찾아내는 데는 수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범인은 편의점 천장 네 귀퉁이에 똬리를 틀고 있는 CCTV였다. 모바일 전송 기능을 탑재한 CCTV를 통해 이곳의 모든 상황이 점주의 스마트폰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화재, 도난 등 위급한 상황이나 도난 사고를 대처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앱을 깔았을 것이고, 잠깐 생각날 때마다 들춰보듯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르바이트생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을 것이고 언제부터인 수감자를 관리하는 교도관처럼 감시자가 되어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훔쳐보기'가 주는 변태적 즐거움에 조금씩 중독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정당한 관찰이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는 '저렇게 대충 일하는데 내가 어떻게 감시를 안 해!'라고 합리화하며 당당하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처럼 따지고 화내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훔쳐보기가 정당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편의점을 비워 놓은 지 한 시간이 좀 지나자 헐레벌떡 편의점 사장이 달려왔다. 편의점 문 앞에 붙여 놓은 종이를 잠시 보더니 신경질적으로 뜯어낸 후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 종이에는 '주인이 알바를 CCTV로 감시하는 편의점입니다!!'라고 적어놓았다. 벗어놓은 편의점 조끼 위에도 사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몇 자 적은 종이쪽지도 올려놓았다.
"어제까지 일한 아르바이트비는 계산해서 입금해 주세요! 인터넷에 아르바이트생을 종일 CCTV로 감시하는 편의점이라고 글을 올리려다 말았습니다...."
결국, 아르바이트 생활도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