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20화
페이퍼 작성 : 2007년 11월 10일 시간적 배경 : 2007년 11월부터
매년 이맘때면 도지는 병이 다시 찾아왔다. 바로 신춘문예 응모병!
어쭙잖은 실력이니 한 해 정도는 걸러도 되련만 올해 역시 다음 달 초가 확실시되는 여러 신문사들의 신춘문예 마감일을 넘기지 않고자 지금부터 부산을 떨고 있다. 올해는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다. 일단 신작, 즉 올 한 해 동안 써놓은 작품이 너무 없다. 8월에 있었던 ‘중앙신인문학상’에 응모했던 단편소설 외에는 신작이 전무한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작가 최지운보다 회사원 최지운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서 작품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더 많이 썼던 탓이다. 그리하여 현재 어디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펜대를 굴리고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 실정이라 올해는 여러모로 아쉽고 실망스러운 해이다.
그래서 요즘 분주하게 작품 집필에 몰두하는 중이다. 예전의 나라면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 고작 신춘문예를 한 달 남겨놓고 작품을 쓰다니. 꼭 마감에 쫓겨 쪽대본을 쓰는 삼류드라마 작가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긴 학창시절에는 매학기 창작강의가 있었으니 학점을 따기 위해서라도 그때마다 작품을 만들곤 했다. 이젠 내가 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없으면 신작이 절대 나올 수 없다. 역시 학교 다닐 때 취업 걱정 없이 찍어낸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작품을 마구 쓰던 때가 정말 행복했다. 대학원에 들어가면 다시 그 시절로 좀 회귀할까 생각했는데 이젠 논문 작성에 더 매진하는 판국이라……. 애당초 석사학위에 관심이 없던 나는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다행히 희곡과 시나리오는 그동안 써둔 시놉시스가 존재하고 소설도 생각해 두었던 소재가 몇 개 있어 느려터질망정 서서히 몇 줄씩 써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올 작품은 뭔가 획기적인 변화를 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작품들은 소재와 장르는 다양했지만 언제나 ‘해피엔딩’이라는 공통된 공식을 가졌다. 그래서 소설이든 희곡이든 시나리오든 전부 유치한 멜로드라마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어떻게 주인공들이 결말에 와서는 죄다 이렇게 행복해질 수가 있냐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리얼리즘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난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연극과 영화를 보는 게 아니겠냐며 반문한다. 비참한 현실과 그 속에서 자괴감, 우울증, 정신분열 등을 일으키는 주인공을 볼 바에는 차라리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나 사람들의 입소문을 경청하는 게 낫다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대학원에서 ‘프랑코 모레티’라는 평론가의 책을 공부하면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나와 같은 해피엔딩, 권선징악의 소설은 서양에서는 이미 19세기 초에 사라졌다고 한다. 더 이상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메시지나 교훈, 감동을 담을 생각을 하지 않고 굳이 독자들도 소설에서 그런 것들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주인공에게는 빛보다는 어둠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가득하다. 그런데 유독 나만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계속 고집했으니…….
그래서 이번에 쓰고 있는 작품들은 나의 스타일과는 정 다르게 철저히 어둡고 음습하다. 어떤 작품의 주인공은 결말에서 죽일까 말까 고민 중이고 또 다른 주인공은 사회와 단절된 채 의식의 분열을 일으킨 나머지 어떤 엽기적이고 충돌적인 사건을 저지를까 연구 중이다. 불륜이나 정사신도 좀 넣을까? 주인공을 얼마나 인생 밑바닥으로 내던져버릴까? 이런 것도 작품을 쓰면서 겪는 고민거리이다.
하지만 세 작품 중 하나는 그래도 내 스타일대로 밀어불일 생각이다. 험난한 인생과 사건에 놓인 주인공이지만 10쪽 정도 분량의 짧은 스토리를 지나고 나면 씩 웃으면서,
‘그래, 그래도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야.’
라고 외치며 그걸 읽는 독자들도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훈훈한 감동을 전하는 결말을 지닌 소설 말이다. 물론 프랑코 모레티의 이론이 2007년 한국문학에 여전히 적용된다면 그 소설은 분명 1차 심사에서부터 이면지함에 던져질 게 분명하지만 그의 이론이 살짝 깨지기를 기원해본다.
(에필로그)
동국대 재학시절 난 매년 여름에 개최되는 학과의 가장 큰 행사인 여름창작교실에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모두 참석했다. 행사 몇 주 전까지 행사 일정동안 합평할 작품을 등록해야 하는 까다로운 자격조건 때문에 나처럼 4년 개근으로 참석하는 학생은 참 드문 편이다. 하지만 작품의 질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양에서만큼은 다른 재학생을 압도하고 남는 나는 아르바이트 일정만 조절하면 참석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행사였다. 1학년 때는 드라마극본, 2~3학년 때는 희곡, 4학년 때는 소설을 각각 제출했다. 그러나 대부분 합평자리에서 교수님과 학생들에게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래도 1학년 때 제출한 드라마극본은 그나마 약간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 난 그 호평을 상당히 의아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그 드라마극본을 제출하게 된 이유는 완성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내 작품들 중에서 분량이 가장 짧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전까진 죄다 장편 시나리오만 써온 지라 분량이 다들 A4 5~60장을 거뜬히 넘어 다른 학생들의 작품도 같이 실리는 작품집에 넣기는 부적절했다. 그래서 그나마 제일 적은 A4 25장의 그 드라마극본을 하는 수 없이 냈다. 1999년도에 집필했는데 당시 나는 약간의 실험정신을 발휘해 내 스타일과는 다르게 조금은 비루하고 칙칙한 일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얘기를 그렸다. 게다가 내가 가장 중시하는 잘 짜인 플롯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어서 내 스스로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희곡 담당이셨던 이종대 교수님이나 박노현 선배 등은 조금만 다듬으면 공모전에 제출해도 될 정도의 작품이라고 호평해주셨다. 그 바람에 난 한동안,
‘당선되려면 정말 이런 스타일로 써야 하나?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라며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난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밝고 경쾌한 스타일을 고집했다. 그 드라마극본이 앞서 15화에서도 언급했던 <미드나이터>이다.
* 그런데 '프랑코 모레티'의 의견과 다르게 내가 상을 받거나 인지도를 쌓은 작품은 모두 해피엔딩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평론가들로부터 지나친 낭만주의에 빠졌다는 소리를 들어도 밝고 건강하게 쓰고자 한다. 독자들도 현실보다는 희망을 보고자 할 수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