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언니와 청동기시대 동생의 만남
생각보다 형제자매끼리 돈독히 지내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데, 우리 자매의 경우에는 아버지께서 우리가 싸울 때마다 혼을 내시면서 싸움을 중단시키셨고, 둘 다 뒤끝 없는 성격이라 싸우고 나서도 1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며 다시 친하게 지내고의 연속이었다.
나와 동생은 성격이 정반대인 것도 있지만, 양육 방식도 정반대였다. 나는 첫째였기에 부모님들께서 기대도 많으셨고 지원도 많이 해주셨지만 동생은 나에게 시키신 공부의 반의반도 시키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많이 바라지 않으셨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첫째 둘째의 차이도 있지만 성향을 잘 반영하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나와 내 동생이 다르지도 않은데 다르게 대하시는 것에 대한 약간의 억울함과 서운함이 섞였기에 부모님의 말씀과 행동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또래보다 똑똑했었기에 또래들과의 유대감을 잘 느껴보지 못했다. 항상 나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었다. 5살 때부터 영어를 공부하고 6살 때부터 중국어, 한자, 서예, 피아노를 공부하다 보니까 어느 집단에 있든 간에 나이와 상관없이 잘하는 축에 속해있었다. (유치원 때는 작은 선생님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렇게 중학교 때까지는 노력만 한다면 그에 맞는 결과를 얻었고, 실패를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노력을 해도 성적이 뚝 떨어지게 되었고 인생에서 거의 처음 맛본 실패를 어떻게 다뤄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평생을 경쟁, 불안과 함께 살아왔고 인정을 갈구했다. 21살이 되어서야 불안과 인정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기 보다는, 내가 처한 환경의 영향이 컸다. 어릴 때는 페르소나(남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과 진짜 자아를 구분하지 못했다. 페르소나가 내 자아라고 믿었던 것이다.
반면에 동생은 조기 교육이나 학원 없이 그냥 학교만 충실하게 다녔고, 나보다 책은 어릴 때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이해력이 좋아 학교 수업도 잘 따라갔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았고, 공부한 양에 비해서 상위권의 성적을 받으면서 보냈었다. 기억에 남는 예로, 동생도 영재를 지원했지만 떨어졌는데, 위층에 사는 동생 친구는 영재에 붙었었다. 내가 동생에게 너는 떨어지고 친구는 붙었는데 안 속상하냐고 물으니까 동생이 "친구가 붙었으면 축하해줘야지"라고 말하는 걸 보고 얘는 크게 될 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옹졸하게 산 것은 아닌지 반성했었다.
또 동생이 남다른 점은 사업 머리가 있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동생이 청동기 시대에 태어났다면 사유재산을 많이 축적해서 족장이 되어 있었을 것 같다. 청동기시대에서 동생의 삶의 만족도가 최상일 것 같다. 동생은 자갈밭에 던져둬도 알아서 살 수 있는 아이다. 엄마가 장난감이나 딱지를 안 사주니까 산길에서 달팽이를 잡아와서 달팽이와 친구들 장난감을 교환했었고, 딱지가 없다 보니 일단 빌려 놓고 많이 따서 돌려주는 식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또래들이랑 같이 딱지를 치는 게 아니라 밑에 층에 동생보다 어린아이들한테 내려가서 딱지를 따내며 승률을 높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동생이 딱지로 부를 축적했을 때쯤 나이 어린아이들이 동생이랑 딱지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손재주가 좋고 가진 장난감에 질려서 새총이나 자동차를 만들며 놀았다. 원시 시대의 자연인이 이런 경제 형태를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학부모들끼리 모여서 반 아이들 책상을 치우러 갔을 때 동생 책상에서 돌이 한가득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동생의 4차원적인 행보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 동생은 한 번 놀면 계속 놀고 싶고 한 번 혼나도 나중에 또 사고 치는 아이였다. 동생의 말을 들어보면 항상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절제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정말로 나와는 정반대였다. 과한 절제가 독이었던 나에겐 동생이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스스로가 안 된다면서 한계 짓는데 어떻게 절제가 가능하겠냐며 동생을 잘 타일렀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동생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공부를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말하니까 동생이 나에게 “그런데 언니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행복해 보이진 않아, 그래서 공부 안 할래. 나는 언니처럼 공부를 열심히 할 자신도 없고 그냥 만족하면서 살고 싶어.”
내가 동생이 머리도 안 좋고 집중력도 낮으면 애초에 공부를 권하지도 않겠지만, 동생은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공부할 줄 아는 아이다. 공부를 하면 성적이 나오는 아이가 공부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 처음부터 포기해버리니까 아까운 것이다. 본인이 합당한 이유로 선택한 것이 아닌 도피이기에 언니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후회 없이 도전해보고 포기했다면 모르지만, 두렵기 때문에 미리 포기한 건 습관이 되어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회가 와도 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생이 예전에 포기한 일이랑 나중에 동생이 마주할 일이랑은 독립 시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존감이 낮아 포기를 한 건 평생 후회를 남기고 포기가 습관이 되도록 만들기 때문에 고등학교 3년만 딱 집중했으면 좋겠다. 성적을 무조건 잘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미덕이 아니라, 본인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을 깨서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동생이 얻었으면 좋겠다. 그 자신감은 평생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동생에게 원하는 건 나처럼 공부만 하면서 보내라는 것이 아니라 기상이나 운동에 있어서의 기본을 지키라는 건데 참 쉽지 않다. 고3 때 무식하게 15-16시간씩 공부한 게 안 먹힌다는 걸 알고서 대학 때는 기상과 운동 습관부터 잡고 휴식을 병행하며 공부했었다. 그래서 건강한 공부법을 동생에게 전수하고 싶은데 사춘기다 보니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내 친구 중에서도 본인이 동생인데 언니가 공부를 엄청 독하게 해서 좋은 대학을 간 케이스가 있다. 그 친구가 하던 말이 "나는 애초에 언니처럼 될 수 없으니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였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 동생은 나를 보고 그런 생각이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정말 사진이랑 똑같은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적으라고 할 때, 동생은 나를 적었다.
왜 나를 적었냐고 물어보니, 언니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내가 자기혐오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언니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알아? 언니는 항상 잘하는데 나는 못하니까 속상 했단 말이야. 언니가 자기혐오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라고 말했다.
동생이 나를 부러워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부러움이 동생의 발전을 막는 게 아닌가 싶어 내가 어떻게 동생을 도와줘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누구보다 동생을 사랑하고, 공부가 주는 즐거움을 일찍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에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많이 잔소리를 하지만, 의도가 전달되기는 참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동생은 오징어가 나오는 웹툰을 보면서 웃고 있다. 아무리 호소해도 듣지 않는다. 내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려면 어떻게 소통해야 되는지를 고민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3년간의 플래너를 동생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얼마나 무너졌었고, 성적이 잘 나올 수가 없는 공부를 했는지 보여줬었다. 동생도 드디어 내가 머리가 나쁘고 공부하는 방법조차 몰랐다는 것을 인정했다. 동생이 본인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며 자극을 받는 모습을 보니 왜 진작에 플래너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말로 전했을 땐 내 머리가 돌머리라는 것이 동생에겐 와닿지 않았지만, 내 기록을 보고 수긍했다.
동생뿐만 아니라 과외 구인 사이트에서도 내가 화려한 스펙만 적어두니까 성적이 안 좋은 적이 있었단 걸 믿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성적들을 인터넷 상에 다 드러내기엔 부끄러운 성적이라 드러내지 못했다. 무엇이 맞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못 친 시험 성적을 적어두면 실력이 없는 선생이라고 생각해서 문의가 안 오고, 잘친 결과만 적어 놓았을 땐 나도 공부를 못하던 적이 있었다고 적어둬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예전에만 해도 고등학교의 추억은 지워버리고 싶었다. 너무 힘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플래너만큼은 남기고 싶었고, 수능 직전에 썼던 플래너 빼고는 모두 남아있다. 그렇게 남긴 플래너를 동생에게 보여주기 전까진 덜덜 떨려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플래너를 펼치는 순간 내가 부끄러워했던 과거를 수용하게 되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참 애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생 보고 절대 공부를 나처럼 매일 15-16시간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고 꾸준히 운동하고 주변 정리를 잘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본인이 스트레스를 풀 취미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취미 시간을 점점 줄이고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라고 말한다. 아마 동생의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는 동생처럼 변하고 동생은 나처럼 변하는 순간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맨날 하는 말, “우리 둘이 반반 섞어 놓으면 딱 좋겠다.” 그 말이 점점 실현되고 있다.
여러분의 형재자매 관계는 어떠한가요? 댓글로 남겨주세요ㅎㅎ
ISTJ언니(자본주의)와 INFP동생(청동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