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은 사랑이 맞을까요
3편을 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먼저 봐주세요!
자매 일기3: 동생이 집에 개구리를 들여왔다 (brunch.co.kr)
이제는 개구리뿐만 아니라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들도 확장해서 생각해보려 한다.
물론 개구리는 애정을 사람에게 표할 수 없고, 개와 고양이는 인간에게 애정을 표한다는 점에선 다르지만,
모두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다.
특히나 개와 고양이는 인간이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들여온 존재들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처럼 우리는 개들을 정말 가족처럼 대한다.
개가 나를 사랑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도 진심으로 개를 사랑한다."
하지만 내 통제 안에 개를 가두고, 그 통제 안에 있어야 개가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진 않을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 폭력이진 않을까?
사람이 개를 가족같이 사랑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개만큼은 나를 영원히 사랑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검토해보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개만큼은 언제나 내 편이니까
개를 좋아한다는 사람으로 가득한 사회가 정말로 행복한 사회일까?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그들을 지배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물질적인 것, 칭찬, 사랑의 확인 또는 관심을 보이는 방법으로 그들을 매수한다.
다만 한 가지, 자유와 독립에 대한 권리만 제외하고.
지배를 전제로 두는 것은 절대 건강한 사랑이 아니다.
인간은 지배하는 입장에 있으니까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에리히 프롬이 항상 강조하듯이, 내가 나를 사랑해서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지배나 복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가장 어려운 요즘이다.
사랑을 주고 싶어도 예전에 크게 데인 경험 때문에 사랑을 주기 두렵고,
내가 사랑을 주기보단 내가 일방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렇게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반려동물과 가족에게 의지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점점 좁혀나간다.
서른 즈음 넘어가면 인생 친구 1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고, 여럿 사귀어 봤자 다 부질없다는 식.
나 역시 사랑이 뭐가 대단한 거냐며 무시하면서 산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무시하는 사랑이야 말로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꼭 알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이는 자기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다음 단계에선 남에게 먼저 사랑을 줘야 한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무슨 사랑을 베푸냐면서 먼저 줄 생각을 못했는데,
그냥 한 번만 내가 먼저 주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행동이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이다.
남을 도우면서 기분이 좋은 이유는 그게 나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계산이 아니라,
남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절대 이상한 느낌이 아니라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까.
인간의 본성을 성악설로 왜곡하지 말고 원래의 본성에 충실하게 살면 좋겠다.
설사 성악설이 맞다고 해도 우리는 성선설을 믿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려동물과의 애착관계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댓글로 편히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