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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Feb 26. 2022

헬린이 일기

더 이상 헬스장 가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20살이 되고 제일 먼저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던 건 운동이었다.

처음엔 등산, 그다음엔 걷기, 그다음엔 계단, 홈트 등등 나름대로는 운동을 끼고 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속마음은 운동이라도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힘들게는 하기 싫은 간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운동을 했다는 명분을 만들고 싶었다.


제대로운동을 하려면 헬스나 필라테스를 해야 했다. 그러나 도전하기가 두려웠다.

중학교 때 헬스를 끊어는 뒀는데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게 부끄러워서 러닝머신만 밖에서 탔었다.

헬스 기구 사용 방법을 몰라 쩔쩔매거나 이상하게 운동하는 걸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20살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왜 남들에게 내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건지 알아보니

살면서 무언가를 할 때 못한 적이 잘 없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신경써주신 덕분에 조기교육을 많이 받다보니

웬만한 일에 대해선 베이스가 깔린 상태였다. 그러니 나는 노력만 하면 결과는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이후로는 그 베이스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고 

노력을 해도 결과는 보장되지 않으며 세상은 학교에서 통하는 능력보다 몇 배로 많은 능력들을 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학교가 요구하는 능력은 좁디 좁다.) 그래서 내가 해보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 도전해보며 내 힘으로 일구어내는 능력을 키워보고자 운동을 도전했다. 내가 해온 분야에만 집중하면 정체된 삶을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그 분야에 발을 담군다는 건 결과를 바라지 않고 일단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빠르게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오래, 정확히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려한다.

노력이 단기간에는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거에 대해 무던해지려 노력하는 요즘이다.

앞으로도 내가 내 능력을 처음부터 직접 일궈내는 일이 많을테니 다양하게 도전해보며 노하우를 쌓고 싶다.

(헬스를 엄청 오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날짜를 세보니까 딱 1주일ㅎㅎ....)


그러나 한 달 전에 갑자기 홀린 듯이 필라테스 양도 글을 당근 마켓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필라테스도 되게 싼데 거기다가 헬스까지 무료로 해준다는 사람이 있어서 거래를 했다.

그 글을 보자마자 이번이 두려움을 깰 기회라며 절실하게 임하려고 했다.


나는 내가 근육이 부족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인바디를 찍어보니까

근육은 부족하고 지방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근육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의 허벅지가 지방이었던 것이다.


OT 때 트레이너님께 살은 빼고 싶은데 근육은 많이 안 생기는 운동법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20살 때 격하게 운동을 하지 않은 이유도 근육이 보이는 게 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절대 그런 건 있을 수가 없다며 미의 기준은 남자와 여자가 다를 수 있고

남자는 호르몬 때문에 근육이 잘 만들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애초에 여자가 남자보다 운동을 많이 하는 건 아니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내 건강이 중요하지 근육이 나온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꺼리던 허벅지 운동, 팔운동을 시작했었고

기기 사용법은 미리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트레이너님한테 물어보면서 조금씩 익혔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OT 때 트레이너님께서 내가 근력이 너무 없어서 다음 진도를 뺄 수가 없다며

더 이상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번만큼은 열심히 하고 싶었고 나름대로 운동은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씀하니까

자존심도 상했고 그 와중에 근력이 부족해서 가르쳐줘도 따라 해 낼 수가 없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저 기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부러움의 눈빛과 동시에 배운 기구만큼은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눈빛에서 드러나서 그런지

내 담당이 아닌 트레이너 분이 그 트레이너의 고객을 PT 봐주는 와중에서도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될 걸 그 한 마디 못해서 고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심지어는 그 다음날 운동하러 갔을 때도 자세를 올바르게 하고 있나 체크해주시며

무게를 너무 작게 하고 있다면서 100kg로 설정해주셨다.


100kg는 나에게 무리인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하시며 무게를 줄여주셨다.

무엇보다 다칠까 봐 많이 시키지 않겠다는 원래 트레이너님보단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내 한계치를 바라시는 트레이너님이 내 마음을 읽으신 것 같아서 감동이었다.


그래서 PT를 한다고 해도 두 번째 트레이너님한테 받고 싶었지만 원래 트레이너님이랑 바로 옆자리라서 좀 그렇고 PT가격도 좀 있다 보니 미리 끊어둔 필라테스부터 먼저 다녀보고 헬스는 나중에 하기로 결정했다.


헬스를 시작하기 전, 그리고 초기에는 헬스가 마냥 좋아 보였고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매일 나가다 보니 "내가 이걸 원한 게 맞았나?"라는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중학교 때도 도망쳤는데 지금도 도망치는 건가? 지금도 도망치면 또 언제 해내려고?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게 누적되면 내 인생에 좋을 게 뭐가 있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이 고민들의 기저에는 중학교 때 헬스를 뽕뽑아 먹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돈을 투자했어도 그 이상으로 내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자책했다.

당근에서 이번에 받은 건 헬스를 안 하고 필라테스만 해도 엄청 싼 거였는데도, 이번에는 헬스에 욕심을 내야겠다고 생각했고, 넓은 헬스장 안의 모든 기구를 다 써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러나 OT라고 해서 그 기구들을 다 써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근육량 부족으로 정확히 자세를 잡지 못한다.

내가 배운 동작들만 해도 차고 넘치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 중에서 나에게 기회가 되는 것이 있을까 봐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그냥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기구를 다 써볼 수는 없는 것이고

자세를 더 정확히 하는 데 집중하지 뷔페식으로 이 기구도 반드시 써봐야겠다는 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도전을 하고 싶다고 해도 내가 그만큼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오래 하기 힘들다.

그래서 평소에 기본 능력에 대해서 쌓아둬야 하는 것이고

그 기본 능력을 쌓는 것에 대해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헬스 대신 필라테스에 집중하기로 한 건 도피가 아니라 다른 선택일 뿐 운동을 놓지 않는 것에 집중하며 살자.

모든 거에 죄책감을 하나씩 심어서 나에게 좋을 것은 없으니까.


여러분들도 헬스를 하면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으시나요?

혹은 새로운 분야를 도전해보신 경험이 있나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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