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브 Syb Jun 03. 2022

교회 건축에 진심인 유럽

거기서 거기인 유럽의 수많은 교회 건축에 싫증이 났다면

 유럽 여행에서 교회 건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에라도 코너마다 위치하는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은 어김없이 교회일 만큼 유럽 땅에는 교회가 발에 차이도록 많이 존재한다. 그만큼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리 멋진 교회라도 조금은 무뎌지게 마련이다. 특별한 신앙심이나 서양건축사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이상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유럽 여행에서 교회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그렇다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유럽 교회 건축 양식의 간단한 흐름을 짚어가며 오늘날의 교회 건축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까지 살펴본다면 교회를 방문했을 때 조금 더 공간을 인상 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마드리드 근교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Parroquia Santa Mónica는 Vicens+Ramos 에서 설계한 소교구 교회이다. 한눈에 보아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 창이 위치한 동쪽 파사드와 단조롭고 가로로 긴 북쪽 파사드는 또 느낌이 다르다. 입구는 도로로부터 한 겹 감추어져 있다. 신성한 공간으로서 교회를 속세와 분리시키기 위해 현대식 교회에서 많이 채택되는 구조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파사드에 직설적으로 드러나있는 창의 형태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제단 쪽 벽이 면이 아닌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들로부터 스며들어오는 햇빛은 그 유명한 롱샹성당(Notre Dame du Haut, Ronchamp)으로부터의 모티프를 연상케 한다.


archdaily.com/wikiarchitectura.com

모더니즘의 아버지 르 코르뷔제가 1950년 설계한 롱샹성당은 교회 건축뿐만 아니라 르 코르뷔제 그 자신의 형식마저도 완전히 타파함으로써 그의 건축에서 차지하는 의의가 큰 작품이다. 롱샹 성당 내부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아마도 다양하고 불규칙적인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에 의한 극적인 효과일 것이다.


일본의 간판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또한 절제된 개구부를 통한 빛의 연출로 극적인 공간 연출을 의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렇듯 현대 교회 건축에서 빛은 건축가들의 재료가 되어 다듬어지고 조형된다. 허나 비단 이것이 현대에 들어서 드러난 특징은 아니다. 교회 건축에서 건축가들은 언제나 빛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왔다. 빛은 교회 역사를 통틀어 신의 전능함을 부각하고 신도들에게 신앙심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교회 건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실리카'라는 원형이 나온다. 바실리카는 로마 시대의 공공건물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로마 시대 기독교의 번성과 함께 교회의 형태로 발전했다. 그러나 유럽 여행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잘 보존된 바실리카 교회를 흔히 발견하기란 어려우니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하늘에서 신이 내려다보았을 때 십자가의 모습을 한 로마네스크 교회

바실리카 교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네이브(Nave)와 아일(Aisle)로 구분되는 공간의 분화이다. 간단히 말해 네이브는 예배가 주로 이루어지는 직사각형의 중앙 공간을 뜻하고 아일은 그 양 옆에 배치된 통로이다. 그리고 이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발전하면서 제단 부에 직사각형을 가로지르는 짧은 직사각형 공간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트란셉트(Transept)라 부른다. 하늘에서 신이 내려다보았을 때 십자가의 모양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교회 건축의 아주 기본적인 구조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으로는 초기 형태의 반원형 아치와 볼트, 두꺼운 석벽 등이 그 특징으로 이 시기 교회 건축은 크고 많은 창을 내는 것이 어려워 빛이 아주 제한된 형태였다. 덕분에 내부 공간은 자연스레 어둡고 엄숙한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 로마네스크 교회는 11세기부터 늦게는 14세기까지의 건물이 남아있으므로 잘 보존된 로마네스크 건물을 운 좋게 마주친다면 훗날 고딕 건축의 특징으로 발전하게 되는 로마네스크 특징들을 비교해보며 감상해 보도록 하자.


신에게 닿고자, 혹은 신에게 도전하고자 하늘로 뻗은 고딕 교회

13세기부터는 전성기를 누리던 교회 권력에 힘입어 그 권능과 위세가 건축에도 반영되는데, 그 산물이 바로 고딕 건축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뻗은 고딕 성당의 첨탑은 우리가 교회를 생각했을 때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다. 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닿고자 한 인간의 갸륵한 신앙심과 오만을 담고 교회 건물은 점점 더 위로 뻗어 올라갔다.


이 시기에는 건축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고딕 건축만의 다양하고 독특한 특징들이 꽃을 피웠는데, 대표적인 것이 로마네스크 교회와 비교되는 첨두형 아치와 리브 볼트(Rib vault)다. 볼트란 아치를 교차시켜 만드는 3차원 구조를 뜻한다. 이 첨두형 아치와 외벽의 횡압력을 받쳐주는 플라잉 버트레스의 등장으로 더 이상 벽을 두껍게 만들 필요가 없어졌고, 이 내력벽으로부터의 해방은 고딕 건축에 다양한 가능성을 가져다 안겨 주었다.


가장 큰 변화는 창을 높고 크게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건축가들이 본격적으로 빛을 이용해 신성한 공간을 연출하게 된다. 높고 뾰족한 스테인드글라스로부터 들어오는 한줄기 빛은 없던 신앙심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졌다. 이후 교회 건축은 고전 양식을 차용한 르네상스식과 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뻗어갔지만, 그 시기 건축이 그랬듯 이전의 건축 양식들을 답습하는 선에서 그쳤다.


다시 현대의 교회 건축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날의 교회는 과거와 달리 자유분방하다. 상가건물 쪽방에서도 예배가 이루어진다. 최근에 지어지는 성당들은 Parroquia Santa Mónica처럼 컨템포러리 건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재도 더 이상 석조가 아닌 콘크리트와 철골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현대까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교회 건축에 있어서 빛의 연출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르 코르뷔제와 Vicens y Ramos는 트레이서리, 장미창, 레요낭과 플랑부아양 양식 등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던 과거의 교회 건축처럼 교회를 찾은 사람들에게 특별하고 거룩한 영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Parroquia Santa Mónica의 외벽은 일부러 녹슨 느낌을 주기 위해 Corten 강철 코팅이 된 석고보드로 마감되었다. 이는 내부의 새하얀 석고벽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데, 이는 바깥세상의 번잡함과 녹을 의미 하며 성당 내부의 신성하고 정결한 빛의 공간과 대조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삐죽빼죽 솟은 창이 연결된 벽은 금박 도배가 되어있는데, 이는 성령의 일곱 은사를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동쪽으로 향해있는 제단은 교회 보편적인 형식인데 예수가 동쪽에서 부활한다는 믿음에 기인해 이렇게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마드리드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인 파로키아 산타 모니카, 고전적인 유럽의 교회 건물에 싫증이 나고 교회에 진심인 유럽의 현대식 교회 건축을 탐방하고 싶다면 방문해보도록 하자. 빛이 동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오전 시간대에 방문하기를 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따뜻한 비인간성의 건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