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으로 재해석된 공장 건축 : 톱니 지붕의 재발견
미술품과 공산품.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내는 것 중 가장 대척점에 서있는 두 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언뜻 생각해보아도 미술관과 공장은 영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에야 리노베이션 열풍이 불면서 옛 공장 건물을 카페나 갤러리 등으로 개조하는 사례가 많아졌지만, 1986년에 지어진 루드비히 미술관(Museum Ludwig)의 공장스러운 외관은 그야말로 기묘한 만남이었다.
부스만 + 하버허(Busmann + Haberer), 당시 피터 부스만과 고트프리드 하버허가 설계한 루드비히 미술관은 우리가 흔히 공장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왜 어렸을 때 그림 그리다 보면 흔히 공장을 톱으로 썬 듯 삐죽삐죽한 지붕과 뭉게뭉게 피어나는 굴뚝의 연기로 묘사하지 않나.
그 삐죽삐죽한 지붕 모양을 '톱니 지붕'(Saw-tooth roof)이라고 부른다. 톱니 지붕은 19세기 초 산업혁명 시기에 공장 건물을 위해 고안되었다. 작업 능률과 품질 관리를 위해서는 공장 내부에 일정한 조도를 확보해야 했는데, 당시엔 인공조명의 광도가 균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던 공장 건물에 균일한 자연광 확보가 유리한 톱니 지붕을 대다수 채택하였고, 이것이 오늘날에 공장 건물의 톱니 지붕과 높은 굴뚝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정작 공장에서는 점차 품질이 개선된 인공조명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잊혀지게 되었다.
그렇게 사라지는가 싶던 톱니 지붕이 현대에 들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균일한 자연광을 필요로 하는 공간에 효과적인 톱니 지붕은 미술관과 같은 전시 공간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작업 공간에서 시작된 양식이 시대가 바뀜에 따라 예술 공간으로 재해석되다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예술품의 감상이라는 행위도 작품을 감상하고 재생산해낸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이라는 큰 범주로 함께 묶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요를 위한 생산과 표현을 위한 생산이라는 본질 자체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루드비히 미술관의 톱니 지붕은 일반적인 공장의 날카로운 톱니 모양과는 다르게 톱니 사이의 간격도 넓고, 남쪽을 향하는 지붕면이 사분원에 가까운 곡선이다. 이로써 완성된 독특한 부채꼴 모양은 박물관 내부에서도 반복해서 인용된다. 이 변형은 아마도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강조하는 '위압적이지 않은 외관'을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익살스러운 아연 도금 패널과 붉은 벽돌 마감재의 채택 역시 이 커다란 볼륨의 미술관을 최대한 도시 경관과 어우러지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쾰른 중앙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쾰른 대성당의 위용에 압도되고, 그다음으로 이 미술관의 공장스러운 외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루드비히 미술관을 다루는 이유 역시 쾰른의 도심 중에서도 도심에 위치한 친근한 모습의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앤디 워홀, 피에트 몬드리안, 파블로 피카소, 백남준, 알프레도 자코메티,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호크니 등등등... 평소 미술에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작가들이 다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총집합한 소장 컬렉션뿐만 아니라, 난해해서 마음을 끄는 최신 기획전까지 시간 가는 줄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될 것이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면, 티켓 오피스를 중심으로 바닥이 약간 기울어져 있다. 파리 퐁피두 센터처럼 광장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경사진 것은 아니지만 방문객들에게 직관적인 동선 암시를 주기에는 충분하다.
티켓을 끊고 전시 투어를 하다 보면 라운드 투어, 즉 미술관 내부 동선이 상당히 매끄럽다고 느낄 것이다. 이는 2003년 부스만 + 하버허의 추가적인 구조 수선으로 각 전시관의 연결성이 보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미술관에서는 라운드 투어를 구성하는 동선계획 역시 조명계획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다. 루드비히 미술관의 커다란 중앙계단 영역이 인상 깊게 꾸며져 있는 이유이다. 뿐만 아니라 전시공간에서는 크고 작은 계단을 자주 마주칠 수가 있다.
계단을 올라 다른 공간으로 들어섰을 때 스케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또 이 공간은 어떤 다른 공간과 보이드(Void)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에 따른 내 느낌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생각하며 미술관 곳곳을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