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아버지에게 퇴사 사실과 앞으로의 계획을 알렸다. 어머니의 반응이 너무 걱정되어서, 나를 위해 아버지께 먼저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3-4일을 고민하다 겨우 말씀드렸다. 엄마 몰래 말씀드리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말씀드리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큰맘 먹고 아빠한테 할 말이 있으니 엄마 몰래 연락을 달라고 카톡을 남겼다. 아버지 생신 즈음이라서 선물을 기대하시면 실망하실까 봐 걱정이었는데, 아빠는 내가 일하고 있을 시간에 갑자기 연락을 남겨서 큰일이 난 줄 알고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아, 부모 마음.
아빠의 반응을 짐작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긍정적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응원해 주셨다.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최근에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고 약간의 후회가 섞인 격려를 해주셨었는데, 퇴사를 말씀드리고 나서도 같은 말을 해주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게 우리 때문인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둘째 딸내미에게 일어난 나쁜 일 때문에 아버지는 은퇴도 조금 미루셨다. 나는 퇴사를 했는데, 아빠는 여전히 일을 하셔야 한다.
그리고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느 누구가 해줘도 눈물 나는 말인데, 아빠가 이렇게 말해주시다니. 아빠는 왜 우냐고 당당하게 말해야 엄마도 걱정을 덜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맞아요 그렇죠. 그러면서 언니가 먼저 길게 여행을 가거나 첫 퇴사를 할 때, 아빠한테 장문의 메일을 보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둘 다 지금까지 말 안 하다가 이제야 말해주다니!
최근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아쉬우신지 아빠는 여행 일정을 더 늘릴 순 없는지 물어보셨다. 아마 이제 모든 비밀이 사라지고 나면, 좀 더 내 이야기를 부모님께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너무 많은 걱정과 비밀이 있었으니까. 20대까지도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괴롭혔을까.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큰 불운에 빠져 아직까지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 맞고, 이렇게 복 받은 사람이 맞다.
카페에서 안 쓰고 가방에 챙겨둔 휴지가 이렇게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