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존재를 처음 느끼게 되다.
그날은 여느 날 같이 똑같은 아침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는 아침이었습니다.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갑자기 침대가 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멀미 덕분에 힘들게 살아온 저는 이 현상이 왜 생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자다가 일어난 것뿐이었는데 멀미를 하다니?
순간 뇌리에서 ‘아 혹시…?’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결혼을 했고, 언제든지 가임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체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바로 자고 일어나는 순간이었고, 그렇기에 혹시 는 점점 더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 너무 울렁거려.. 아무래도 약국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가서 임테기 좀 사다 줘. 두 개로.” 저는 이렇게 말을 하고 다시 누워있었습니다.
임테기를 했던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테스트 결과 둘 다 임신이라고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임테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아이에게 꼭 액자에 넣어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임테기의 결과가, 그것도 두 번 다 결과가 임신이라니… 예상은 되었어도 막상 내가 한 이 상황들이, 그리고 내 안에 작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 조금은 얼떨떨하고 신기하였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겨를도 없이 입덧은 생각보다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계속 배를 타서 울렁거리는 그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전 그 아침 이후로 그녀가 태어나기 바로 전까지 입덧에 고생을 하였습니다.
한 두 달이면 끝나겠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까지만 평균적으로 하니까 나도 그렇게 되겠지 했던 입덧은 그녀가 실물을 보여주었던 시점까지 강하게 혹은 약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제 친구 중엔 저보다 먼저 일찍 결혼하였고 출산도 먼저 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임신기간 동안 내내 입덧이 심해서 누워있다고 했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혼이었는데, ‘아 임신은 저렇게 힘들기도 하구나’라고 생각만 했을 뿐 직접 체험을 한 것이 아니니 와닿지 않았습니다(친구야 미안). 그랬던 제가 막상 임신을 하고 나니 입덧을 이리 심하게 그리고 오래 하다니… 저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그리고 친구가 겪었던 일들이 조금은 몸소 체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이런 계획들은 지속적인 입덧으로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은 태교일기도 쓰고 베이비샤워 같은 것도 한다고들 하는데 저는 이런 일들을 계속 멀미 같은 입덧을 하면서 할 여력이 나지 못했습니다. 나의 입덧과 상관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은 계속 있었으니까요.
그나마도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조금은 나아져서 입덧을 잊었던 듯한 기억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외의 시간들은 괴롭고 힘이 들었습니다.
한 번은 너무 먹지를 못하니 수액을 맞으러 가야 했었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입덧을 줄이는 약도 있던데, 그 당시에는 수액을 맞으면 입덧이 조금 줄어든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잘 먹지를 못하니 겸사겸사 갔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다니던 산부인과 옆에는 큰 마트가 있었는데, 수액을 다 맞고 몸이 조금 좋아졌는지 마트를 갔었습니다. 그곳에는 푸드코트가 있었고 저는 입맛이 없는 게 아니라 음식을 받지 못하는 상태의 입덧이었기 때문에 사실 다 먹고 싶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수액도 맞았겠다 한번 도전해 보자'하고 신중하게 고른 전주비빔밥을 시켜서 먹어보았습니다. 먹을 때 정말 맛있어서 한 그릇을 다 비웠던 것 같습니다. 아 이제 괜찮나? 싶다고 느끼고 있은 5분 후... 저는 정확히 제가 먹은 것들을 화장실에서 다시 확인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후 정기적으로 받았던 병원 상담에서 의사 선생님은 토하더라고 먹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사실 토하는 과정은 그렇게 기분이 좋은 행동은 아닙니다. 게다가 바로 먹고 토하는 이 과정이 체력적으로 너무 고달팠습니다. 그녀가 내 뱃속에서 점점 자랄 때마다 위를 누르기 때문에 더 먹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샤부샤부였습니다. 아무래도 채소나 고기를 물에 담가 먹는 것이니 소화도 덜해도 되는 것이었고, 샤부샤부만 먹으면 속이 덜 울렁거렸습니다. 덕분에 임신기간 동안 정말 원 없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태교? 덕분인지 그녀도 신기하게도 샤부샤부는 잘 먹고 있습니다. 마치 임신기간 동안 먹었던 것들을 그녀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임신기간의 추억으로 인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힘들다던 출산의 기억들은 아팠다고 하던데 저는 ‘아 시원하다.. 속이 뚫리는 기분이야..’라고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아이를 출산하던 그날도 진통 중에 토까지 해서 분만실 매트리스며 제 옷이며 진통 중에 갈아입어야 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그녀의 존재를 저에게 늘 알려주며 세상에 왔습니다. 물론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에게는 늘 큰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녀의 존재를 몸소 느끼며 10달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입덧에 정신이 팔려 잘 몰랐습니다. 그녀가 세상에 나오면서 나에게 있어 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