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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May 31. 2024

사랑받고 싶어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2013년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언어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순간 그 고통은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물론 이 말은 내 고통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 표현을 보는 이에게도 내가 겪는 고통이 전가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강신주 박사 말의 핵심이 무엇인지 이해할 것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글쓰기라는 정제된 표현으로 나타내어야 비로소 그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칠 수 있을 때 속병이 풀리는 것이 인간 본능 아니겠는가?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글쓰기는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다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찍이 신영복 선생은 살아생전 많은 강연과 자신의 저서를 통해 공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히신 바 있다.


 “공부라는 말을 한자로 쓰면 工夫라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夫가 가진 의미를 풀어쓰면 하늘과 땅의 이치를 인간이 깨닫는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죠.”

신영복 선생의 친필 글, 그림

 나는 신영복 선생의 이 해석이 너무 좋다. 지금도 한 학기 수업 마지막 갈무리를 할 때에는 공부의 의미를 되새기는 말을 하면서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공부의 의미를 인용한다.

 내가 최애 하는 유시민 작가 역시 그의 저서 ‘공감필법’에서 신영복 선생의 말씀과 유사한 의미로 공부를 정의하였다. 그는 공부를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라 규정하였다. 한편, 공부를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독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책을 통해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며 자기 자신과 우주에 대해 새로운 앎을 깨닫는 경험을 한다. 이 깨달음을 통해 삶의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거나 특별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유시민 작가 말에 따르면 글쓰기란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잠시도 가만히 머무르지 않는 나의 감정과 생각은 글로 붙잡아 두지 않는 한 나로부터 쉽사리 휘발할 수밖에 없다.

유시민 작가의 어떤 책을 읽더라도 글쓰기 연습에 큰 도움을 얻을수 있다

 언어로 표현하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단단히 붙잡아 두는 작업이 바로 글쓰기이다. 그래서 "글쓰기와 독서 그리고 공부는 서로 연결되는 행위"라는 유시민 작가의 말에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님들은 공감하리라 예상한다.

 요컨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내가 깨달은 바를 표현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초등학교 시절. 일기 쓰기는 주된 숙제였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때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 일기에 쓴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잘해주셨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다가 오랜만에 그때의 일기를 다시 꺼내어 읽어보니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면서 일기에 달려 있는 그때 담임 선생님의 코멘트가 새삼 고맙게 와닿는다.

어린 나에게 글쓰기의 큰 동력은 선생님의 칭찬이었다.

 철없던 아이가 낙서처럼 그적거린 글이었지만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때의 담임 선생님이야 말로 날 키워 주신 부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나는 느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부족한 글을 적어도 이런 관심을 가져 주는 분이 있구나.’ 그 덕분에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성인이 된 이후,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몇 년 전 지역 신문사 칼럼에 정기적으로 글을 투고한 적이 있었다. 어느 기자의 부탁을 받고 마지못해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을 읽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학교에서 개인이 겪었던 일들을 인문학적 감성으로 접근하는 표현들이 참신했다는 칭찬들을 해 주었다. 그게 진심이 담긴 칭찬이 아니었을 수 있지만 당장 듣기에는 너무 좋았다. ‘아. 이게 글 쓰는 맛이구나.’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의 일기에 칭찬 코멘트를 달았던 것도 본인의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하는 위력을 지녔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40507000040

(못난 얼굴에 못난 글입니다. 혹시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듯하여 올립니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이유 역시 내 글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 때문임이 크다 하겠다. 이왕 사는 인생, 가능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겠나.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는 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경험’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철학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philosophy이다. 여기서 philo는 사랑을, sophy는 앎(지혜)을 뜻한다. 이는 철학이 ‘앎을 사랑하는 학문’ 임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철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사랑해야 알 수 있다.’는 진리임을 시사하기도 한다. 역으로 ‘제대로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로도 해석 가능하다.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려면 나와 타인에 대해 올바로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공부는 그 앎을 위해 하는 것이다. 결국, 앞서 언급했던 글쓰기의 의미가 다시 상기된다. 독서를 비롯한 다양한 공부를 통해 내가 깨달은 삶의 의미를 정돈된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


 사랑받고 싶은 가? 사랑하고 싶은 가? 그렇다면 지금 바로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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