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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May 30. 2024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

나의 글 솜씨를 개선하는 방법 중 3, 4번

 글을 좀 잘 쓰려면 일단…

1. 술 줄이기

2. 휴대폰, 특히 유튜브나 SNS를 사용하는 시간 줄이거나 없애기

3. 좋은 책을 더 많이 읽기.

4. 일상의 작은 사건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연습하기

5. ‘작가의 시작’ 책 꾸준히 읽으며 [52주 즉흥 글쓰기 훈련] 부분 게을리하지 않기


 ‘어쩌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때로는 한 문장을 읽은 다음 책을 가슴에 대고 먼 산을 한 참 동안 바라보았다.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은 작가가 고전 문장들 중에서 꽤나 괜찮은 글귀를 발췌하여 그 글귀의 내용과 관련되는 작가 개인의 여럿 에피소드를 잘 녹여 만든 산문집이다. 공감되는 내용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마음속으로 엄지 척을 몇 번이나 날렸는지 모른다. 주옥같은 표현들이 워낙 많아 특정 부분만을 선정하기는 어렵지만 최근에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우연히 읽었던 부분을 좀 옮겨 보고자 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지속된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 어느 날, 화곡동 시장 골목을 지나가다 보니 언젠가 그곳에서 마셨던 소주와 갖은 안주들이 기억났다. 언제쯤이었을까? 봄이었던가? 가을이었던가? 나는 화곡동 시장 골목에 있는 좌판에서 사촌형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와는 겨우 여섯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조카가 그 근처 육군병원에 입원해 있어 문병 갔다가 사촌형과 함께 밖으로 나왔던 참이었다.”


 글의 시작은 어느 시장 골목에 얽힌 추억과 작가 조카에 관한 얘기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 글의 제목이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지속된다.’ 임을 읽는 독자들은 글의 초반 이후에 이어질 이야기는 어느 정도의 비극이 있으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결엔가 그 애가 ‘나는 삼촌이 참 좋아’라고 말했다.....(중략).... 내가 좀 더 예민한 사람이었으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예민하지 못했다.”


 작가는 때 늦은 후회를 고백하면서 스토리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독자로 하여금 이어질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글을 처음 읽었던 나는 본격적인 비극의 스토리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다음 문단에 나오는 예상 밖의 시를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카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둔감한 내가 그만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에 빠져버리게 된 계기는 현대 하이쿠 시인인 이시바시 히데노의 다음과 같은 시를 읽었기 때문이다.


 매미소리 쏴-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쫓아왔네.”

인용한 시의 일본어 버젼이다.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까 봐 작가는 이어지는 글에서 하이쿠 시의 특징 및  읽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하이쿠 시에서 ‘매미 소리’는 “곧 찾아올 죽음의 적막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떠들썩함”임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자신이 경험한 비극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 며칠 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사촌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카가 죽었다는 얘기였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중략)..... 아직 이른 아침이라 둘이서만 빈소를 지키던 사촌형 부부는 내가 들어가자 나를 부둥켜안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일제히 들리는 매미소리보다 훨씬 더 큰 울음소리였다. 매미가 왜 그렇게 크게 소리 내 우는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듯도 하다.”


 지금도 난 하이쿠 시 같은 것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김연수 작가가 쓴 이 에피소드를 읽었던 그해 여름, 매미소리를 듣고 난생처음 눈물을 찔끔 흘린 기억이 난다.

 글에서 소개한 하이쿠 시인인 이시바시 히데노는 폐병을 자주 앓았다고 한다. 한 번은 그녀의 병이 깊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던 도중에 엄청 크게 울던 매미 소리를 그녀가 들었나 보다. 그 와중에 그녀의 딸아이는 구급차에 실려 가는 자기 엄마를 울면서 쫓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결엔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인지한 그녀가 자신의 스토리를 위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매미소리 쏴-’를 떠올릴 때, 그녀에게는 이제 죽으리라는 예감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울부짖음마저도 삼켜버릴 듯한 그 매미소리가 사라지면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터였다. 혼자서만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운명이 굳이 지금 세상을 떠나라고 해도 그다지 아쉬울 것은 없으리라. 하지만 우리 모두에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일이 반복되는 한,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되리라. ‘아이는 구급차를/못 쫓아왔네’라는 문장은 그처럼 오랫동안 지속되는 슬픔의 한 모습이다. 시간은 그렇게 지속된다.”


 이제 왜 작가가 하이쿠 시를 인용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그리고 내 마음에는 말라죽은 생선 껍질 같은 죄책감이 수북하게 쌓였다.”라고 비유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문장도 있었다. 하지만 하이쿠 시를 인용하지 않았다면 그의 슬픔이 독자에게 더 깊게 다가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구급차를/못 쫓아왔네’라고 말할 때는 이제 그만 자신을 잊어달라는 소리였겠지만, 아직도 그 아이의 마음은 구급차를 쫓아가고 있을 듯, 귀를 울릴 듯 매미소리가 들리다 일제히 울음을 그치는 그 순간, 앞으로 찾아올 그 모든 슬픔의 시간이 단단하게 압축된, 빈 공간이 찾아온다.”


 마니아들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할 법한 일본 시를 읽으면서도 이를 재구성하여 자신의 스토리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글 솜씨가 너무 부러웠다. 물론 그의 슬픔 앞에서 이런 경탄을 보이는 것이 다소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글 솜씨를 개선하기 위해 이미 잘 쓴 글이라 정평이 난 책을 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면 난 주저 없이 ‘청춘의 문장들’을 추천 하고 싶다. 김연수 작가가 청춘 시절에 수집한 수려한 문장들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한껏 만끽할 수 있으니 읽는 즐거움도 더할 나위 없다.

 절판된 줄 알았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2022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작가가가 새로 쓴 산문이 더 추가되었다고도 하니 나도 새로 사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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