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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도담

by 이효명


도담도담, 어린아이가 별 탈 없이 자라는 모습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이다. 건강히 잘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사랑스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오늘은, 도담도담이라는 말과는 조금 멀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이다. 작은 몸으로 쌕쌕 숨소리를 내며 열과 싸우는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저릿하다.

"언니하고 홍대 잘 갔다 와."
딸은 사촌 언니 손을 잡고 홍대로 나들이를 갔다. 어느새 초등학생 고학년이 된 딸은 엄마, 아빠와 어디 가는 것보다 대학생 언니와 가는 서울 여행을 더 즐거워한다. 손에 엄마 카드를 쥐여줘서인지 가는 발걸음이 더 신나 보였다.

"언니랑 애견카페, 스티커 사진도 찍었어. 마라탕을 1단계를 먹었는데 너무 매웠어."
집으로 돌아온 딸은 언니랑 있었던 쉬지 않고 말했다. 하루 종일 사람들 많은 낯선 장소에서 긴장했을 딸은 밤 10시부터 잠이 온다며 침대에 누웠다. 오래간만에 일찍 자는 딸 덕분에 미뤄왔던 일을 한 후 나도 잠을 청했다.

새벽, 딸아이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평상시보다 콧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처음엔 방이 건조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딸의 몸을 만져봤다. 온기가 조금 느껴졌다. 이번엔 이불을 덮고 보일러를 틀어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결국 아이의 숨소리가 계속 신경이 쓰여 체온계를 꺼내 딸의 귀에 꼽았다. 39도였다. 급히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해열제를 먹였다. 그 뒤 아이의 숨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 채 잠을 설쳤다.



밤새 눈이 내렸다. 누구도 밟은 흔적이 없는 눈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일요일 이른 아침 소아과로 걸어갔다 8시 반경, 4층 병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로 복도가 붐볐다. 길게 이어진 줄 뒤에 서서 병원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밤새 아픈 아이들이 많았나 보다. 9시가 되기 전 병원 문이 열리고 순서대로 접수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의 순서가 20번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1시간 정도 기다리면 진료를 볼 수 있겠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대략 진료 예상시간을 말한 뒤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다.

코알라 선생님 방으로 들어갔다. 밤새 증상을 말하고 선생님께서 아이의 입안을 살펴보시더니 한숨을 쉬셨다.
"독감 검사를 해봐야 할 거 같아요."
"갑자기? 독감이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안이 벙벙해하니 선생님은 이어 말했다.
"지금 초등학생 독감으로 초토화된 상태입니다."

독감이다. 의사는 수액을 맞고 한 번에 끝낼 것인지 약을 5일 치 먹을 것인지 선택하라 했다. 아이가 독한 타미플루를 5일 치 먹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액을 맞는 게 편하다며 아이를 달랬다. 평상시 주사라면 질색을 하는 아이지만 빨리 나아 친구들 하고 밖에서 놀 수 있다며 달래며 수액을 맞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이의 목은 더 심해져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틀 정도 열도 지속되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처방해 준 해열제가 효과가 있어 약을 먹자마자 차도가 있었다.

평소에 씩씩하게 뛰어다니던 아이가 이불 속에서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 작은 몸으로 어떻게 세상을 헤쳐나갈까 싶었다. 친구들과 추운 한 겨울에도 밤늦게까지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 모습이 그리웠다. 대신 아파주고 싶었지만 내 몸 아픈 건 또 싫다.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한밤중 아이 숨소리를 체크하고 가습기를 틀어주고 열을 재고 시간 맞춰 약을 준비해 먹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은 떨어졌지만 기침은 더 심해졌다. 자다가 기침을 심하게 하면 아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손을 꼭 잡고 나지막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옛말에 아이는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아이가 아프면 또 뭔가를 하나 배우는 거라고 했다. 이번 독감으로 아이는 또 얼마만큼 자랄지, 무엇을 배울지 궁금했다. 이번 독감도 많이 아프지 말고 잘 넘어가길 바랄 뿐이었다.

3일쯤 지나니 약간의 기운을 되찾은 아이가 밝게 웃고 말하기 시작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딸은 식탁 위에 영어 문제집을 펼쳐놓고 숙제를 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학원에 갈 수 있다며
"엄마, 목소리도 잘 나와."라고 말했다.
숙제를 마친 아이는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돌 댄스를 따라 추기 시작했다. 이번 독감도 이렇게 넘어가 나보다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은 아픔 속에서도 자란다. 비록 아픈 날이 있었지만, 그것 또한 아이가 스스로를 돌보고 더 강해지는 과정이다. 나는 오늘도 이 작은 존재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며 손을 잡는다. 이번 독감 전쟁에서도 살아남았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면역이 생겼기를 바란다. 도담도담, 아프면서 또 건강하게 아이, 그 옆에서 나도 함께 성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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