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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 속 작은 하트

by 이효명

하얀 거품이 올라간 따뜻한 라테 한 잔, 출근 전 루틴이 된 지 오래다. 라테를 손에 들고 사무실로 들어서면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

커피는 참 신기하다. 원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건 물론이지만, 라테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우유를 데우는 과정은 똑같다. 실버 주전자에 우유를 따르고, 커피 머신에 달린 스테인리스 스팀 봄으로 데운 뒤, 커피 원액이 담긴 잔에 부어준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이 마지막 과정이 조금 다르다. 다른 곳은 우유만 붓고 끝이지만, 이곳은 큰 숟가락으로 우유 거품을 한 스쿱 듬뿍 얹어 준다. 갓 나온 라테 위, 소복이 쌓인 거품이 눈처럼 보드랍게 녹아든다. 한 모금 머금으면 따뜻한 부드러움이 온몸을 감싼다. 그 순간, 세상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진다.
그렇게 나는 단골이 되었다. 주말마다 남학생과 금발 머리의 여학생이 함께 일하는데, 특히 남학생이 내려주는 라테가 최고다. 한 모금 마신 뒤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있다고 하면 그는 쑥스러운 듯 웃곤 했다. 금발의 여학생은 그가 엄청 꼼꼼한 성격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어느 날, 카페 한쪽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완성된 걸 봤다. 며칠 후 다시 가보니, 남학생이 전구 장식을 하나하나 풀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다음 날도 그는 여전히 트리 앞에서 전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완성된 트리는 확실히 달랐다. 무작위로 걸려 있던 전구는 가지런히 정렬되었고, 반짝이는 불빛이 더 정갈한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정말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인가 보다며 금발 여학생에게 말하자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직원들 중에서 제일 까탈스럽다고 섬세하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오늘도 라테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평소와 다르게 그는 숟가락으로 거품을 뜨지 않았다. 대신, 데운 우유를 컵에 모두 부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유심히 지켜보던 순간, 그는 금발 학생에게 완성된 라테를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내 내 손에 하얀 일회용 뚜껑이 덮인 라테가 전달되었다. 궁금했다.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보았다. 컵 안에는 하얀 거품으로 그려진 작은 하트가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2,700원짜리 일회용 라테에서 이런 하트를 만날 줄이야. 사진으로 남겨뒀다.


그날, 나는 하트 한 잔을 손에 들고 신호등 앞에 섰다. 입춘이 지났지만 폭설과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지속되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었지만 춥지 않았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 컵 안에서 소리 없이 피어난 작은 하트에 사랑을 느꼈다.

그는 오늘도 수많은 라테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계속 하트 만들기를 시도할 것이다. 누군가는 뚜껑을 닫은 채 무심히 마시겠지만, 누군가는 우연히 뚜껑을 열고 작은 하트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오늘 그의 행동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여느 때처럼 무심히 컵을 입에 댔더라면 이 하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이런 작은 하트들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오늘 나처럼 누군가도 이 작은 정성 덕분에 하루를 따뜻하게 시작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정성이, 이름 모를 배려가, 아무렇지 않게 건넨 작은 마음이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오늘, 나도 누군가의 커피 속 하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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