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었던 사람 같아

by 봄남

“어.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그녀는 빨대로 버블을 콕콕 찌르다 멈췄다. 그녀도 나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짓는 것 같아 보였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첫 만남에 바로 고백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정말이지 충동적이었다. 심장은 더욱 빨리 뛰었다.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라고해!’


그녀는 버블티를 계속 마셨다. 끌어 오르는 피에 머리에서 김이 나는 나와 달리 그녀는 겨울왕국의 공주처럼 차가워 보였다.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녀가 마시고 있는 버블티의 버블을 바라보았다. 그 버블들이 그저 부러웠다. 버블티! 그녀의 손에 안착하고 있는 차갑고 달콤하고 말랑한 버블티. 버블티를 향한 질투심에 차오르는 열기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드디어 내뱉었다.


“나랑 사귈래?”


콜록콜록!


마시던 버블티에 사래가 걸렸는지 그녀는 연신 기침을 했다. 나는 미안해서 휴지를 가져다주었고 갑자기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러 (실제로 두드려 주진 않았다.) 일어났다가 그냥 다시 앉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녀가 기침 끝에 눈물이 났는지 휴지로 눈을 닦는 바람에 그제야 나는 아차 했다. 그녀에게 하염없이 미안해졌다.


“괜찮아?”

“응.”

“저기… 대답은 천천히 해도 돼.”

“응 천천히 할게.”


그녀의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 왠지 차인 것 같은 기분이다. 휘몰아치는 감정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했었다. 하…. 한숨을 쉬고 나는 다시 ‘조심해’를 외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에게 나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면서 그녀가 날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도진이가 알려 준 그녀의 정보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조심해!”


다시 눈앞에 빨대로 버블을 콕콕 찌르고 있는 다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그녀는 버블을 최대한 많이 빨대 안에 넣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난 시험 공부할 때 ‘아프리카’ 노래를 들어. 약간 노동요처럼 말이야. 하기 싫은 거 해야 될 때 책을 필 수 있게 된달까. 너도 이 노래 알아? 들어봤어?”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옛날 노랜데.”

“예전에 우연히 들었다가 좋아서 계속 듣게 됐어. 그러고 보니 그 노래의 느낌이 너랑 비슷한 것 같다.”

나도 빨대를 열심히 휘저으며 무심히 말했다.


“대박! 나 그 노래 매일 들어.”

“우와 어쩐지. 너의 느낌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정말? 이 노래가 좋다고? 신기하다!”


그녀는 버블을 찾느라 분주했던 손짓을 멈추고 드디어 나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만면의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그녀는 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았다.


“좀 오래전에. 서점에서 ‘울부짖는 들개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때 이 음악이 흘러나오더라고. 바로 검색해서 알아뒀지. 이후로 매일 들었던 노래야.”

“지금 방금 뭐라고 했어? ‘울부짖는 들개들’은 나의 최애 소설인데!”

“정말? 이런 우연이! 하하.”


그녀는 두 손으로 박수를 치며 흥분했다. 그녀의 두 눈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 그녀는 신이 나서 말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그 남자아이의 내면이 꼭 나 같아. 그 작가는 나의 속을 들어갔다 나왔을까 의심할 정도야.”

“나도 나 같다고 생각했어!”

“뭐야? 너도 그런 외로움이 있었다고? 그 아이는 너와 달리 좀 위축된 상태잖아.”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나도 자신감 따위 없어.”


아…. 나의 인문학적 소견에 한계가 왔다. 에잇 모르겠다 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우리 비슷한 게 정말 많다!”


그녀가 외쳤다. 전 타임루프와는 정 반대의 반응이다! 잠시 당황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가 덜컥 내 손을 잡고 ‘우리 정말 뭐가 있나 봐!’라고 소리 지르며 나를 흔들었을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우리 소울 메이트인가?”

“하하하하하.”


나는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사귀자’는 말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사실 이후로도 여러 번. 그리고 나는 별다른 반응 없이 그녀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후로도 그녀는 ‘아프리카’ 가사나 ‘울부짖는 들개들’에 대해서 심층 분석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런 의미가 거기에 있었는 줄 몰랐다,’ 혹은 ‘엄청난 해석이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꺄르르 웃었다. 그녀의 생동감 있는 얼굴은 처음 보았다.


그녀는 신이 나서 얘기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녀의 표정을 감상하느라 목소리는 듣고 있지 않았는 것을 그녀가 질문을 하자 알아챘다.


“그래서 넌 어때? 야, 재윤아!”

“어? 어.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 나는 그건 여자만의 생각인 줄 알았는데.”

“내… 내가. 좀 여성성이 있는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나의 말에 그녀는 또다시 꺄르르 웃었다. 그녀를 만난 이래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린 만났다. 나는 타임루프를 이용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후 모든 것이 우리 둘을 위한 운명인 것처럼 상황을 흘러가게 했다. 다연이는 처음엔 나 같은 잘난 남자는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생각보다 속이 깊은 사람 같아 좋게 보인다고 했다. 나는 기세를 몰아 인형 뽑기도 해 줬다. 물론 타임루프를 사용해 될 때까지 뽑은 것.


“다연아, 여기서 이 인형이 한 번에 뽑히면 우리 사귀는 거 정말 고려해 봐야 해.”

“나 이거 한 번에 뽑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만약 그러면 정말 운명이라고.”

“에이 설마.”


그리고는 나는 예쁜 토끼 인형을 그녀에게 안겨 주었다. 그녀는 너무 놀래서 발을 동동 굴렀다.

“꺄아아아아아. 대박.”

“나랑 사귀는 게 좋은 거야? 토끼 인형이 뽑혀서 좋은 거야?”

“당연히!”


다연이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았다. 이렇게 가까이 그녀의 눈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토끼 인형이 좋지!”



나는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귀신같이 캐치해 내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의 관심사가 나의 관심사이며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그녀의 마음도 척척 읽어낼 줄 아는 만능 사랑꾼이 될 작정이었다. 타임루프로 연습한 덕에 느끼한 대사도 능숙해졌다. 한 마디로 난 조만간 연애로 프로가 될 판이다.


“오늘 좀 힘들어 보이네? 어제 학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예인이가 또 뭐라고 해? 걔는 가만히 있을 때 말하고 말해야 될 때 가만히 있고 왜 그럴까.”

“내가 말했었나? 말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젠 네 표정만 봐도 알지. 느껴지는 게 있잖아.”

“내 표정이 그렇게 티가 났나….”

“네 마음? 내 마음.”


그녀는 얼굴을 양손으로 만져보다가 살짝 볼을 때렸다. 그런데 이번엔 좀 오지랖이었을까.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공감해 버려서 조금 위험했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줘서 나에게 고마워하기보다는 이야기의 전말을 다 알고 있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 살짝 긴장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나의 지나친 걱정이지 그녀가 나의 타임루프를 알리 없었다. 그녀가 무언갈 의심하는 것 같진 않았다. 아니 의심할 수 없다.


그런데 거기서 전혀.라고 생각했던 나의 확신에 위협적인 사건이 하나 생겼다. 우리는 여느 날처럼 학교가 끝난 후 버스정류장으로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바로 전 타임루프에서 그녀가 웃었던 개그를 능숙하게 했다. 그런데 그녀가 이번엔 웃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당황했지만 그녀가 더 당황스러운 말을 뒤이어했다. 다연이가 이상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있잖아. 넌 왜 매일 똑같은 말로 날 웃기려는 것 같지?”


그동안 연애에 대해 프로의 면모를 보여줬던 나는 또다시 어버버가 되었다. 왜라고? 연습했으니까!


“어? 무…무슨 말? 이 말을 들었다고?”나는 적지 않게 놀라서 나의 목소리는 어느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번에도 했잖…. ”


우리는 나란히 걷다가 서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녀가 멈춰 서자 나도 멈춰 섰다. 똑같은 말이라고? 그녀가 나의 말을 두 번 이상 들을 리 없다. 나의 타임루프에서 그녀야 말로 항상 같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근두근두근.


“게다가 난 네가 아직 어색한데, 넌 나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아.”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난 널 천 번도 더 본 게 맞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너....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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