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동!
2교시 시작이다. 이로서 사건은 무마됐지만 그런 일이 다른 물건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얘가 왜 다연이에게 이러는지부터 살펴볼 문제다.
“있잖아. 그러니까… 이수아 말이야. 걔가 너랑 다연이가 학원 끝나고 둘이 같이 걸어가는 걸 본 것 같아.”
“그게 왜?”
“걔가 학원 뒷건물에서 담배 피우면서 애들이랑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다연이 그년을 썅년으로 만들어 버려야겠다고 말하더라고.”
“왜?”
“왜긴 이놈아. 이수아가 널 좋아하는데 네가 다연이랑 둘이 데이트하는 것 같으니까 열받아서 하는 말이겠지. 그러니까 어쩌다 보니 이수아의 라이벌이 된 거야 다연이는.”
“와….”
“설명 죽이지?”
도진이는 래퍼처럼 총알을 쏘듯 말했다. 그는 그날 라면을 다 먹고 학원 건물 안 화장실에 들렀다가 창밖으로 그들의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너네 사귀는 거야?”
“아직 몰라.”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수아를 자극시키지 않는 게 좋을걸. 걔 못된 짓 하기로는 영재라고 소문났거든. 걔랑 학폭으로 넘어가면 그냥 빨간 줄이래.”
내가 다연이를 대신해 이수아에게 복수해 주면 다연이에 대한 이수아의 분노는 더할 나위 없이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수아랑 잘해 볼 수도 없는 법. 나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아야 나한테 집착하지 않아야 다연이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타임루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골치 아파졌다. 웬 분수에 넘치는 인기인가. 날 차지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괴롭힌다고?
“파핫!”
나는 민망하고 오글거리고 기분이 좋은 데다가 신경질이 나는 오묘한 감정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곤 머리를 책상 위에 놓았다.
“차라리 네가 비호감이 돼.”
“뭐?”나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러면 이수아가 너한테 관심 주는 일은 없을 것 아니야.”
“참나. 무슨 조언이 그래?”
“뭐 뾰족한 수 있어?”
“음….”
맞았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이 매력을 죽인단 말인가! 이제야 간신히 쌓아둔 내 명성을 비호감으로 만들라고? 으으윽. 전에 없던 내적갈등이다. 내가 갈등이란 걸 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처음 겪어보는 번뇌이다.
그런데 매력…이라고? 이거 다 만들어진 거 아니야? 아 그래. 내가 전교 일등 된 것도, 우리 집이 주식에 운이 좋은 것도. 엄마 선물로 1등 번호 로또를 사드린 것도. 승학이한테 쫄지 않고 덤빈 것도 다 타임루프 때문이지. 내가 타임루프를 하지 않아서 여전히 승학이한테 당하고 있고, 공부도 그저 그런 데다가 가난한 학생이었으면 어땠을까. 이수아가 날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닐 만큼 내가 매력적이었을까. 나는 그것들이 없으면 매력이 없는 걸까.
“음… 참고해 볼만한 방법인 것 같아. 걔 앞에서 방귀라도 뀌지 뭐.”
“하하하 더러운 새끼.”
“다연이 괴롭히는 건 못 참아.”
나는 주먹을 책상 위로 내리치며 말했다. 내가 굉장한 호위무사라도 된 것 마냥 의지를 불태웠다. 곧장 이수아가 있는 반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지만 실수가 있어도 타임루프를 쓰면 되니까 괜찮다! 괜찮을까?
실제로 이 생각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렇게 자신감 있게 말하면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여러 번 있었다. 나는 그녀 앞에 가서 다시는 다연이 괴롭히지 말라고 겁을 줄 것처럼 돌진했다.
“수아야.”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상냥하고 부드러웠으며 리듬까지 탔다. 그렇게 따뜻하게 여자의 이름을 불러 본 적이 없다. 이런….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의 부모님의 후광이 보였다. 엄마가 공격적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수아와 친구들은 나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장난치며 놀고 있다. 좀 노는 아이들처럼 껌을 씹고 있었고 교복도 제대로 입고 있지 않았다. 다연이는 대각선 방향으로 반대편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수아!”
이번엔 좀 더 큰 소리로 불렀다. 리듬감은 여전히 가진 채.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더러운 짓을 생각해 내야 했다. 마침 주머니에 초콜릿이 있었는데 초콜릿 껍질을 벗기고 살짝 녹여 주무른 손으로 교복 셔츠를 문질렀다. 대충 더러워졌다. 좀 바보 같아서 괜찮았다.
이수아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다리를 서둘러 내려놓았다. 친구들과 있을 때 걸걸거리다가도 내 앞에선 목소리가 바뀐다. 어느새 입 안에 껌도 없다.
“나? 나 불렀어?”
“어.”
“왜? 무슨 일이야?” 그녀가 약간 부끄러운 듯이 몸을 베베꼬며 실실 댔다.
“학교 끝나고 후문에서 잠깐 볼래?”나는 코를 파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당황한 그녀는 나에게 예의를 차리기 위해 가까스로 웃어 보였다.
“어? 하하. 어… 근데 갑자기 나를?”
“응.”
나는 코딱지를 둥글게 만드느라 그녀의 얼굴 앞에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연신 비볐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 하하하. 오늘은 글쎄? 안될걸?”그녀는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썹을 시옷자로 만들었다.
“그럼 언제 돼?”
“잠깐. 잘 모르겠네? 아마 내일도 안될걸? 하하하.”
“그래?”
부우우웅.
나는 이참에 방귀도 뀌어줬다. 그녀는 기겁을 했다. 주변에서 ‘뭐야. 누구야.’라고 웅성거렸다. 그들은 우리, 아니 수아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나이스.
“벼… 별일 아니지? 할 말 있으면 지금 말해. 아니면 난 간다.”
“응 별일은 아니야. 네가 날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같이 디저트나….”
“무…무슨 소리! 누가 그런 개 같은 소리를!”
오호라! 입이 걸걸한 본색이 나왔다.
“어. 내가 오해한 거야?”
“어후!”
그녀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로 2반에서 이수아가 내 얘기를 하고 다닌 적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졸라 더러운 애’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이수아의 관심은 서서히 사라졌다. 다연이를 괴롭히는 일도 다행히 없었다. 일이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자 매우 뿌듯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굉장히 헌신적인 사람이다.
그제야 나는 마음 놓고 다연이를 꼬시러 다녔다. 다연이와 만남을 만들어 내면 몇 번이고 타임루프를 이용해 다연이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 타임루프를 연습장처럼 썼다. 하지만 그녀가 아직 날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늘 그녀의 뾰로통한 반응에 쩔쩔매야 했다.
오늘은 학원 수업이 없다는 다연이에게 같이 커피숍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그녀는 ‘심심한데 잘됐네’라는 느낌으로 나와 함께 가주었다.
“오랜만이야 다연아.”
“어제도 봤잖아.”저렇게 차갑게 정색하는 표정도 예쁠 줄이야! 나는 입에 마취 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어버버 했다. 졸지에 나는 말을 재미없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하. 아니 그러니까. 음. 그 그게. 우리 단 둘이 말이야.”
“단둘이?”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적당한 거리에 있는 테이블을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또 쩔쩔매었다. 내가 부여하는 ‘단둘이’의 의미를 그녀는 가볍게 치부했다. 하…. 이번에도 어쩔 수 없다. 다시 타임루프를 썼다.
“안녕 다연, 또보네?”
“응 그러게.”
“저기 가서 시원한 거 마실까? 내가 사줄게.”
“어….”
“뭐 마실래?”
“흑당버블밀크티 마실께. 고마워.”
이게 더 자연스러우면서 시크하고 멋있고 찌질해 보이지 않는다. 크…. 그녀가 아까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음료를 주문했다. 이번에는 정말 멋있어야지!
“너는 보면 항상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아.”내가 흑당버블밀크티를 그녀에게 건네자 그녀가 처음으로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저… 정말? 그래?”그녀가 그런 말을 하자 나는 자신감에 차 있지 않은 모습으로 돌변했다.
“하하하. 응. 넌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지고. 나에게도 뭐랄까… 확신에 차서 말하는 느낌?”
“그게…. 이상해?”
“아니. 보기 좋다고.”
그녀는 컵 속에 있는 버블이라고 불리는 타피오카펄을 빨대로 잡겠다는 듯 콕콕 찔러댔지만 올챙이 알 같은 그 동그라미들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왔다. 그녀는 버블을 잡는 재미로 버블티를 마시는 듯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랑 왜 여기 오자고 했어?”
“그냥. 네가 맞을 뻔한 축구공도 내. 가. 차주고 잃어버린 지갑도 내. 가. 찾아준 기념으로.”
“무슨 논리야? 고마워서 디저트 사줘야 될 사람은 난데 네가 사준다고?”
“하하하.”
“….”
“그래야 널 한 번 더 볼 수 있고….”
나는 고백 같은 말을 하고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시선을 회피했다. 아무 말이라도 해라. 말 없는 것이 더 두려웠다.
두근두근.
“하하. 그랬구나.”
뭐? 그게 다야? 설레었다던가. 그 말을 기다렸다던가. 사실 나도 너랑 만나고 싶었다던가. 아니면 나 같은데 꼴 보기도 싫으니 저리 꺼져!라는 말이 나와야 되지 않나? 그랬구나가 뭐지? 누굴 위로하는 건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랬구나’라니. 너의 이야기라고. 이 답답아. 나는 조급해진 마음에 진짜 고백을 했다.
“어.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