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혹시….”
“아하! 데자뷔인가? 하하하. 지금 너의 말과 이 순간이 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하하하. ”
“데자.. 뷰...?”
“그래 데자뷔 말이야. 실제로는 처음인데, 과거에 했었던 거 같은 그런… 느낌.”
“하하하. 그… 그래. 그런 게 있다더라! 콜록콜록.”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동안이지만 나의 치부라도 들킨 것 마냥 부끄러워졌고 혹시라도 그녀가 나의 타임루프에 대해서 알아챈 줄 알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녀의 재빠른 해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감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의 타임루프가 오류라도 난 게 아닌지 초조해졌다. 그런 오류로 인해 아무도 모르게 했던 나의 비밀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리고 이유도 잘 모른 채 울컥했다.
“야! 나랑 같이 가! 왜 이렇게 빨리 가?”
“다연아 나 오늘은 빨리 집에 가봐야 될 것 같아. 미안.”
“갑자기?”
“어 엄마가 시킨 일이 생각났어. 나 갈게!”
“어. 어. 알았어.”
나는 다연이를 뒤로 하고 급기야 뛰었다. 나의 비밀이 혹시나 들켰을까 봐 불안해졌다. 뛰고 또 뛰다가 마침내 건널목에 이르렀다. 나는 몸을 굽혀 무릎을 잡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몸을 펴서 일어나 앞을 보니. 이게 웬걸. 그 여자다. 흰색 티셔츠에 빨간 모자를 쓴 키 큰 그 여자가 건너편에 서 있다.
내가 타임루프를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 그 여자는 지금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 여자가 또 있지? 초록색 불이 켜지자 갑자기 그 여자는 나를 응시하며 걷다가 갑자기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어…어….”
나는 그때와 같이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가 이내 움직였다. 신호등의 초록불이 켜지고 나는 여지없이 그녀에게로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고 뛰었다. 때마침 반대편 찻길에서 전에 보았던 회색 밴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밴은 빠른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굉장한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불법 유턴을 했고, 그 밴은 나와 함께 손잡고 달리는 그 여자를 향해 사정없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전개.
나는 그녀와 함께 뛰고 또 뛰었다. 그녀가 힘들어해서 멈추려 했지만 나는 다시 그녀를 이끌었다. 그리고 최대한 있는 힘껏 달렸다.
“조심해!!”
눈을 떠 보니 하얀 천장이 보인다. 나는 침대 위에 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일어나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꿈이었다. 그 꿈에서 난 너무 긴박했고 무엇보다 매우 생생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가 꿈이었을까. 다연이가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하냐고 말할 때부터일까? 건너편에 서 있던 빨간 모자 여자부터 일까? 그 여자는 왜 또 나타났을까.
“재윤아. 괜찮니?”
엄마 목소리다. 엄마는 약과 따뜻한 물을 챙겨서 내 방에 들어오셨다. 엄마는 다 큰 아들이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고 걱정인 모양이셨다. 세상에서 제일 안되고 불쌍한 아들인 것 마냥 지켜보면서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감긴가 봐. 무슨 열이 이렇게 많이 나. 좀 쉬어.”
“엄마 나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너 오늘은 다연이랑 학원 안 가고 먼저 왔다며. 오자마자 씻고 바로 자던데. 다연이랑 싸웠어? 걔가 너 싫데?”
“아니. 안 싸웠어.”
“우리 아들이 뭐가 못났다고 이렇게 애를 태울까. 걔가 그렇게 이쁘디? 얼굴 좀 보자.”
“됐어. 정말 안 싸웠어 엄마. 나 좀 더 누워있을게.”
“그래 우리 아들.”
나의 연애가 순조롭지 못한 이유를 다연이 탓으로 돌린 엄마는 쯧쯧 거리시더니 책상에 약을 올려놓고 나가셨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내가 집에 빨리 왔다는 뜻인데, 아까 다연이와의 대화는 꿈이 아닌 걸까. 내가 시도 때도 없이 타임루프를 사용하니까 과잉사용으로 오류가 생겼을까. 그래서 다연이가 나와 같이 같은 타임루프에 들어와서 나의 기억을 가져가 두 개의 같은 추억이 생기는 것일까. 나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아무렇게나 헤집어 놨다. 그냥 우연일 수도 있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아니면 다연이도 타임루프 이용자? 에이 설마. 돌연 소름이 돋았다.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다연이에게 특이할 만한 좋은 스펙이 없다. 전교 1등 타이틀이라던지, 집이 부자라던지라는 것. 타임루프를 쓴다면 응당 하는 것들 말이다. 다연이는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한부모 가정이라고 들었다. 돈이 넉넉지 않아 보였다. 항상 같은 운동화, 같은 머리끈, 검소하게 생긴 지갑을 들고 다닌다. 물론 그런 것들이 그녀를 기죽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빛이 났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그냥 여신이었으니까.
그녀가 말한 데자뷔는 그냥 해프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