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오지라퍼

나는 어쩌다 개 오지라퍼가 되었나?

by 초린

오지랖이 넓은 사람=오지라퍼

개에 오지랖이 넓은 사람=개 오지라퍼

이것이 내가 나를 개 오지라퍼로 칭하게 된 이유이다.


나는 댕오지라퍼이다. 그밖에도 다양한 곳에 오지랖이 넓은 편이지만 여기서는 자제하겠다.


어쩌다 나는 개 오지라퍼가 되었을까? 아마 개를 키우고 나서부터? 확실히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야말로 개 오지라퍼가 되었다. 먼저 내 활동반경은 개가 발견되는 어느 곳에서 나지만, 나의 정신건강과 망상일지도 모르는 이유로 반경을 좁히기로 했다. 바로 할머니 댁 시골 깡촌으로.


할머니네는 전라북도 고창군이다. 자세한 주소는 차치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처럼 개를 키우는 시골집이 좀처럼 없다. 아니 아예 없다. 개는 짐승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항상 짧은 줄로 개 일생의 대부분이 묶여있다. 이 마저도 다행이다. 비교적 짧은 주기로 시골을 가면 있던 강아지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이번 년 4월에도 내가 겪었던 일이다. 정을 주었던 백구가 사라졌다. 주인 할아버지는 내 눈치를 봐가며 떠돌이 개에게 물려 죽었다고 했지만 거짓말인 게 금방 들통났다.)

백구가 사라지고 새로운 강아지가 생겼다.

지금껏 시골에서 본 그 많던 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상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아주 운이 좋은 개를 제외하곤 좋은 결과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시골 개들은 키워지는 동안에도 아주 고되다. 혹서(아주 추운 날), 혹한(아주 더운 날)에도 어김없이 마당을 지켜야 한다. 요새 할머니 댁 동네에는 거의 없어졌지만 밑바닥이 뚫린 철창 안에 사는 애들은 목줄만 하지 않았을 뿐 발까지 빠지는 마당에 더 안 좋은 환경에서 삶을 이어나간다.


대부분의 시골 개들의 특징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다가가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고 거칠한 곳에 자기 몸을 비비적 댄다. 예뻐해 주다 조금만 멀리 떨어지면 이내 서글픈 목소리로 짖는다.


많은 미디어를 통해 시골 개에 대한 처우를 보면서 우리 할머니 댁 마을 개들은 그나마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산책은 꿈도 못 꾸는 일에, 하루에 1번 자신을 들여다봐주기 어렵지만 적어도 부러 때리거나 물리적 학대를 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항상 밥그릇과 물그릇이 채워져 있으며 말라 삐쩍 고른 개 또한 없으니 조금 낫겠다 할 수 있겠다. (물은 이끼가 잔뜩 끼어 있을지라도..)

이제 나를 알아보고 만져달라 엉댕이를 내민다.

개 오지라퍼는 할머니 댁에 오면 온 동네를 후비고 다닌다. 누구 집에 어떤 개가 있는지 아직도 있는지, 처우는 어떤지 등등. 집집마다 대우는 조금씩 다르지만 확실히 도시처럼 사랑을 듬뿍 받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시골에서는 좀처럼 개에게 관심을 주는 일이 없다. 명절이나 휴가 때마다 가서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짧은 산책과 간식 그리고 사상충 약 챙겨주기다. 이마저도 못 받는 애들도 있을 것이고, 내가 바빠서 못 가면 그해의 반짝하는 이벤트는 없다.


이전에는 이런 사실이(시골 개 처우) 많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내가 제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해도 달라지지 않을 현실에 한계를 느꼈고 시골에 가기를 거부했었다. 그런데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다 보니 더 걱정이 되고 그냥 현실에 부딪혀 작게나마 챙겨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브런치를 쓰는 일도 유튜브를 하게 된 계기도 이 때문이다. 나의 작은 날갯짓에 큰 영향은 아니더라도 1명이라도 보고 마음이 동요한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지 않나..


다행인 건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동물복지에 대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수만리라도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원래 인생은 작은 희망 때문에 산다고 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은 희망에 불씨를 켜보자


https://youtu.be/QwK3 sNdZf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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