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에 데뷔한 지 5개월 차, 찌는 듯한 여름날 8월에 말로만 듣던 폭염골프를 한차례 경험한 후, 그것보다 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경기, 강원, 충북, 제주도, 일본도 아닌 30시간 멀리 떨어져 있는 브라질에서의 라운딩! 짧은 골린이 이력에 특이한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냥 한 게임 하루 더 하는 게 마냥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업무 출장 중 휴일에 하루 시간을 내서 치는 거라 온전히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완전히 골프에만 집중해서 준비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브라질은 잘 알다시피 남미에 위치해 있어서 위치상으로도 우리나라와 지구 거의 정반대 편이고, 시차도 정확히 12시간, 그러니까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 없이 한국 시간 그대로 하고 그냥 낮밤만 바꾸면 된다. 그래서 보통 업무 협의 때는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고 Conference call이나 화상회의를 잡으려면 어느 한쪽 희생이 불가피하다. 어쨌든 매년 한차례 씩 가게 되는 브라질, 일정을 논의하다가 그곳 주재원과 뜻이 맞아 휴일 하루에 라운딩을 하기로 했다. 그 주재원도 딱 나정도 경력을 지난 골린이라 이심전심 맘이 통했다고나 할까~
중동까지 10시간, 거기서 다시 14시간, 환승 대기 시간까지 하면 거의 서른 시간이 걸리는 브라질행. 지난번에는 두바이 혹은 아부다비를 거쳐갔는데 이번에는 카타르 항공을 이용하게 되어 월드컵을 앞둔 시점의 카타르 도하를 살짝 경험(공항에서만) 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기내 엔터테인먼트 통해 모래바람 속 골프 보며 브라질 라운딩을 기대하며 이동을 했다. 도착 후 약 1주일여 일을 하며 시차를 대략 맞춰갔지만 여전히 피곤함이 있기는 했으나, 골프 하면 역시 새벽 라운딩의 피곤함이 기본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상파울루와 거기서 한 시간 떨어진 캄피나스 두 곳을 오가며 업무를 봤는데, 주재원 연구소 위치가 캄피나스라 그곳 주변에 있는 구장을 가게 되었다. 뭔가 기대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약간 시골길 지나 있는 곳이라 그런지 빈민가와 같은 곳에서 정말 맨발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지나친 이후 나타난 골프장은 우리나라 유수의 골프 클럽과는 약간 상황이 다른 조금 아쉬울 수도 있는 시설과 환경이었다. 물론 상파울루 근처에는 더 좋은 곳이 많이 있겠지만
클럽하우스(?)에서 체크인 중
일단 날씨는 지구 반대편이라 8월의 한여름인 한국과 달리 나름 선선한 따뜻한 겨울이라 그런지 골프 치기에는 적당했다. 기본적으로 여름날이긴 하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방품용 긴팔 재킷을 갖고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골프복과 골프화, 그리고 장갑, 골프공 등은 간단히 출장 가방에 넣어갔지만 당연히 클럽은 가져가지 못했기 때문에 주재원 분이 챙겨준 게스트 전용 클럽을 받아 들었다. 게스트 전용, 왠지 좀 고급스러울 거 같은 느낌에 내가 잘 휘두를 수 있을까, 내 클럽으로 안치는 건 처음인데 잘할 수 있을까 등등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모두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관리가 안 되는 클럽이라 그런지 흙이 그대로 많이 묻어있고, 몇 번 채인지 한참 들여다봐야 하는... 그래서일까 부담 없이 맘대로 휘두르니 좀 내손에 맞는 느낌까지 : )
1번홀, 파4, 핸디캡 13번, 299야드.. 뭐 대충 이렇게 적힌 듯
코스는 그리 길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서 파 4홀에서 드라이버를 못 치는 코스가 종종 있었다. 아직까지 우드가 익숙지 않던 시절이라, 그리고 드라이버 연습을 꼭 해보고 싶던 터라 좀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점은 우리나라의 폭이 좁아 산자락이나 옆 코스와 딱 붙어있는 그런 코스들과는 달리, 약간 벗어나도 그냥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다시 페어웨이로 레이업 하면 되는지라 오비나 해저드 걱정은 좀 덜 수 있었다! 나무 사이에서 볼을 빼내다 보니 약간 티브이 중계에서 보던 PGA 선수들 플레이도 오버랩되면서 재밌는 경험이다 생각됐다. 주의점은 나무를 맞춰서 다시 볼이 돌아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거!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경험해 볼 수는 있지만 여기에서는 카트를 안 타고 직접 클럽을 들고 다녀야 했다. 다행스러운 건 선수들 캐디처럼 어깨에 메고 다니는 건 아니고 개인 카트가 있었고 아쉬운 건 한국에서 봤었던 전동 기능이 있는 건 아니라 직접 힘으로 끌고 밀고 가끔은 들고 그렇게 이동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카트에서 캐디가 건네주는 클럽을 받아 들고 치는 거보다 각자 캐디백을 끌고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클럽을 신중히(?) 골라서 꺼내 들고 가끔 맘에 안 들면 다른 클럽을 부담 없이 꺼내들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경험이었다. 단, 현지 상무님, 연구소장님과 함께 걸어가는지라 내 보폭에 맞춰 내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지만~
쿨럽을 끌고 다니다 그늘집(?)에 세워둔 걸 보니 꼭 에버랜드에 유모차들 같기도 하고
전반 마치고 들린 클럽 내 그늘집(?)에서는 식당을 운영 중이신 일본 분이 한국 라면을 끓여준다고 해서 모두 함께 주문 후, 맥사(맥주+사이다)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한국의 골프 열풍을 전해주었고 이곳 브라질 현지에서는 이렇게 저렴한 필드가 접근성이 좋아 자주 실전을 하지만 한국과 같이 시설 좋은 실내 스크린 연습장이 없어서 본인의 자세를 보면서 연구하고 수정해 보는 그런 학습을 하기 어렵다고 들었고, 그래서인지 아직 실전에 익숙함은 떨어져서 긴장감에 실수는 자주 하지만 아직까지 필드 데뷔 전 입문 시기에 배웠던 스윙 자세가 남아있는 내 스윙을 보고 자세가 좋다고 칭찬해 주셨고 (골린이에 대한 의례 하시는 얘기이기도 하겠지만) 주재원분은 후일담이지만 그날 필(?) 받아 느낀 점이 있어 좀 더 연습을 했고, 몇 주 후 바로 깨백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참고로 난 아직ㅠ
그늘집을 지키고 있다 잠시 드러누워 쉬고 있던 모습과 브라질에서도 빠질 수 없었던 맥사 한 잔!
18홀을 무사히 마치고 보니 개인용 카트를 끌고 다니며 지치기도 했지만 약간 아쉬움이 남았던 것도 사실인데, 상무님이 눈치를 채신 건지, 아니면 골린이의 열정을 보고 배려하신 건지 아니면 본인도 아쉬움이 있었던 건지 9홀 추가를 제안했고 나는 당연히 받아들여 둘이서만 9홀을 더 돌았다. 말로만 듣던 27홀 플레이! 추가로 플레이하면서 직접 영상도 찍어주시고 세세히 가르침도 주시고 골린이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시려는 모습과 계속되는 칭찬에 9홀 추가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다음날 엉덩이 골반이 안 움직이는 걸 보고 아, 무리한 게 좀 있었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름 멋지고 좋았던 코스에서 원 없이 플레이해보는 좋은 경험이었다. 내년에 더 성장해서 만나기로 한 주재원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 해도 다시 서른 시간의 비행 여정에 도전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