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일기 8화: 하루 종일 갑옷을 입고 산다는 것

이상적인 내가 아닌, 가벼운 나도 허용하기

by 당근

첫 질문은 역시, 근황 토크였다.

"어떻게 지냈어요?"

"이번 주는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거나, 좋았어요!"

장족의 발전이었다. 드디어 말문이 막히지 않고 기분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근황을 이야기한 다음, 저번주에 썼던 독후감을 같이 읽어 보기로 했다.


선택한 책은 마음의 상처를 다룬 내용이었다.

예전에 받은 심리적 트라우마와, 그와 관련되어 발생할 수 있는 무감정, 부정적 사고 등 여러 반응들을 세세하게 풀어냈다.


너무도 내 얘기 같아 공감하면서 읽었다. 특히 저번주엔, 직장에서 여러 이벤트가 발생해 멘탈이 가루가 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의 상처를 다룬 책을 읽다 보니 감정이 북받쳤다.


오랜만에 올라온 감정들을 듬뿍 담아, 독후감을 썼다.

평소의 정제된 글이 아닌,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분노, 억울함마저 모두 녹여냈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 썼던 글을 가져와 이번 상담에서 해석을 들어보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 실은 이런 거였구나', '내가 이런 부분에서 우울한 면이 드러났던 거구나' 하며 하나하나 깨닫는 시간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감정을 미뤄두고 괜찮은 척해왔던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공유해 보고 싶다.

아래에 독후감과, 상담사님의 피드백을 한 문단씩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하루종일 갑옷을 입고 산다는 것 – 연약한 나를 숨기기 위한 이상적인 자아상 속에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피곤함’이라고 답할 수 있다.

육체적 피곤함 말고도, 정신적인 피로함이 대부분의 정서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대개 직장인들이 그렇듯, ‘대외적으로 보이는 나’는 다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적당히 쾌활하며, 상황에 따라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 생활이 익숙하기 때문에, 삶을 ‘연기하고 있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피곤하고,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중이라 여겨왔다.


- 왜 피로했을까?

사회에서 쓰고 있는 가면, 이른바 ‘이상적 자아상’을 가까운 관계와 개인적인 구역에서까지 적용했기 때문이다.

잘 땐 잠옷을, 생활할 땐 평상복을, 근무할 땐 근무복을 입어야 했는데 나는 사시사철 갑옷을 입은 것처럼 바짝 긴장하여 지낸 것이다.


- ‘대외적으로 보이는 나’, 삶을 연기한다?

치료적 방향으로 생각을 틀어보려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가면(=이상적 자아상)을 벗어야 할 것, 나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사실 노력해서 만든 ‘사회생활 속의 나’도 나일뿐이다. 대외적인 내가 괜찮은 모습이라면, 그저 내가 잘살고 있던 것이다.

다만, 생활 반경에 따라 내 모습도 단계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좀 더 편해도 될 땐 편하게 지내면 된다. 아래처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화면 캡처 2025-08-08 190824.png

- 세상에. 평범하게 피곤하고,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중이라니.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나를 좀 더 좋게 봐줘도 됐을 텐데.

나를 포함해 평소 본인의 노력을 ‘당연하고 평범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분들은 모두 본인의 노고를 알아주길 바란다.


그러다 요즘 들어 부쩍 부정적 정서가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회사 생활이 즐겁기가 더 어렵겠지만, 집에서도 온종일 오늘의 억울한 일, 불쾌한 일들을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구나 싶어 평소보다 운동을 더 열심히 했고, 직장 동료와 카페를 가서 직장 욕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반추의 늪에 빠져 몸은 퇴근했는데 정신은 여전히 직장에 갇힌 상태를 벗어나질 못했다.

그럴수록 과도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나름의 대응은 했지만 채우는 속도보다 고갈되는 속도가 빠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우울증의 핵심 구조가 여기서 드러난다. ”인지 삼제(the cognitive triad)“.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인지 구조를 묘사하는 말이다.

1. Negative view of self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

2. Negative view of the world(others)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

3. Negative view of the future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


-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이 세 가지가 모두 녹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젠 ‘저 우울증 아닌데요!’ 하고 부정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런 상태에서 이번 책을 쭉 읽어 보았다. 어쩐지 나와 비슷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무감정’, ‘우울’, ‘문제 중심적 사고’ 등.. 직장에서의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연속적으로 겪으면서 내가 선택한 최선의 대처는 ‘기대 안 하기’, ‘눈에 띄지 않기’, ‘나는 저런 행동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였다.

납득이 되지 않는 대우 속에서 그래도 나는 저들과 다른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고, 그럼으로써 상처받은 나에 대한 정당성과 자기 긍정감을 확보했다.

그렇지만 너무 열심히 노력만 해서일까, 어느새 ‘나는 달라야 한다’라는 생각은 ‘이상적 자아상’이라는 갑옷이 되어 단단하지만 무거운 존재가 되었다.


- 최선의 대처..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마음이 다치는 것은 똑같았다.

맞서기보단 회피를 택했으며, 팩트를 말하자면,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들이다.


- ‘기대를 안 해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정말로 기대를 안 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 한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데 가당키나 한 말이었을까.


- 아무튼, 대처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부정적 감정을 삼키며 그냥 버티고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 실제로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지만, 내가 받을 만했던 실제 스트레스를 30이라고 친다면, 나는 거기에 위에서 말했던 ‘인지 삼제’를 녹여내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증폭해서’ 느끼고 있던 상태였다.

상담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곱하기 10 해서 300 정도. 그러니까 270의 스트레스는 안 받을 수 있었던 것’.


- ‘나는 저들과는 달라’라는 자기 위안은, 정말 솔직히 말하면 자칫 나르시시즘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려는 시도이므로. 우울 정서로 인해 낮아진 자존감을 채우려는 의도에서 생긴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타인을 무시하거나 내가 돋보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반복되는 상처 속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시도'로서 만들어낸 신념이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나는 지금도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자기 자비를 베풀 줄 알았다면,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 얻어낸 ‘갑옷’은, 분명한 순기능도 있었다.

직장 동료들의 신뢰와 긍정적 피드백,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남발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다르다’라는 자기 위안감. 그리고 더 나아지기 위한 여러 자기 계발들.

그렇지만, ‘내려놓아야 할 때’를 무시한 채, 점점 무거워지는 갑옷 속의 나에게 책임감만을 강요하면서 정작 내가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모른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들도 쉴 때는 분명 갑옷을 벗을 텐데, 나는 매 순간이 전투태세인 것처럼 살다 보니, 전투와 휴식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직장에 싸우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매 순간 치열하게 지내다 보면 그 긴장도는 전투태세에 가까워진다..)
앞으로는 갑옷을 ‘입을 때’와 ‘내려놓을 때’를 적절히 구분하며 나에게도 숨 돌릴 틈을 줘야겠다.

성숙하고, 열심히 일하며, 잘 참는 나도 필요하지만, 힘들 땐 힘들다고 표현하고, 적절히 남 탓도 하고,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나를 지킬 줄 아는 ‘가벼운 나’도 필요하다.

글쓰기와 상담, 운동을 병행하면서 내 속에 눌려 있던 연약한 자아를 꺼내어 먼지도 좀 털고, 바깥바람도 쐬게 해 주고, 얘기도 들어주면서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나로 돌아와야겠다!


- 갑옷을 무작정 벗어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순기능을 찾아보려는 것은 좋은 시도였다.

추가로 권할 것이 있다면, 이상적 자아상을 ‘내려놓는다’, ‘입는다’ 두 가지로 보는 것보다는 위에서 묘사했듯 사회적 관계, 친밀한 관계, 개인적인 영역에 따라 ‘다양한 내 모습’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감정은 내 일부이지, 떼어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독후감으로 한 번 정제되어 써낸 감정인데도, 나의 억울하고 우울한 마음들이 새어 나왔다.

현실의 나는 그것의 몇 배나 되는 힘든 감정들을 풀지 못하고 떠안고 있었고, 부정적인 면들을 '참아야 할 것'으로 분류하여 하염없이 짊어지며 살아왔다.


'어차피 사람은 변하지 않아.' '내가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나라도 멀쩡하게 살아야지.'라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이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나를 포함해, 힘들게 하는 사람과 일들 사이에서 최대한 다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이 정말로 소중하고 응원받아 마땅하다. 특히 그것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풀어내려는 사람들은 더더욱, 귀하고도 드문 따뜻한 사람들이다.


다만, 그런 마음들이 '자신을 억제하는 방향'으로까지 커진다면, 그 많은 짐들을 짊어지려 애쓰느라 정작 나의 행복과 감정들은 뒤편으로 미뤄지거나, 외면당하게 된다.


애쓰는 모두가, 좀 더 스스로를 사랑하고 행복해졌으면 한다.

스스로 좀 더 행복해질 권리가 있음을, 이성적 이해를 넘어 몸소 체득하길.

번듯하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모른 척했던 힘듦을, 이제는 알아주자.


감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감정은 떼어내야 할 조각이 아닌, 그저 나의 당연한 일부일 뿐이다.

살아있는 한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 고통스러워 그 존재를 무시한 채로 살다 보면

제 때 해결하지 못한 감정적 과업들이 나를 짓누르는 순간이 온다.


이제는 감정과 화해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