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일기 7화: 이제는 행복할 때가 됐다

채찍은 잠시 내려놓고

by 당근

상담일기 프롤로그: 나는 어떤 인간이었나

상담일기 1화: 내가 '아직도' 우울증이라고요?


지난 상담을 통해 자기 연민을 되찾은 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한 주를 보냈다.


물론 지난 일을 반추하는 것과 틈틈이 자기비판을 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잠깐의 깨달음으로 고치기엔 너무도 오래된 습관이었으므로.

대신, 약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기비판의 끝에 한 마디를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휴, 또 시작이네. 잡생각!”


또 하나의 변화는, 나를 조금이나마 측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창 속으로 잔소리를 하다가도, “그래, 나도 애쓰긴 했지. 이 정도면 그래도 성과가 보이긴 해.”라고 한마디 칭찬을 해 주기는 한다.(칭찬 맞다.. 내 기준으론)


[이제는 앓던 이를 마주할 때]


쉬는 동안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우울증, 자기비판, 회피, 부정과 긍정을 다룬 강연을 라디오 듣듯이 켜놓기도 했다.


나도 생각이 많은 편이지만, 알던 내용을 다른 사람의 표현을 빌려 듣는 것은 새로운 기분이었다. 전문가의 해석이든, 누군가의 지나가는 사연이든 ‘세상에 나만 이렇게 땅굴 파며 사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은 종종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다음 상담이 조금 두려웠다.

저번 상담 이후 상담사님에게 보낸 감정 일기 겸 감상문에서 넌지시 가족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분명히 다음 만남에서 가정사를 더 풀어내게 될 텐데,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감정들을 꺼내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될지, 독이 될지 자신이 없었다. 언젠가는 꺼내어 봐야 할 상처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지금까지도 회피하며 잘 살아왔는데, 굳이 그걸 다시 마주 봐야 할까? 너무도 고통스러울 텐데. 옛날얘기를 꺼내지 않고도, 지금 얘기만 하며 넘어갈 순 없을까?’


마치 오래전부터 방치해 온 사랑니나 심한 충치(신경치료가 필요한 정도)를 치료하러 치과 진료 예약을 잡아놓고, 가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어른답게 마주하기로 했다.


우선은, 뭐라도 부딪혀 보자.


[행복하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상담치료를 가는 길, 유튜브 쇼츠를 내리다가 무심코 본 영상에서 마음에 확 꽂힌 것이 있었다.

긍정 캐릭터로 동기부여 영상을 만드는 분의 채널이었는데, 세상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맑은 눈으로 외치는 말들이 인상 깊었다.


“아직도 지나간 일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직도 떠나간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어? 아직도 어제 그 말은 하지 말걸~ 이러고 있어? 하루하루가 이렇게 아까운데, 행복하게 살지 않을 이유가 뭐야? 짧은 인생 부정적으로만 살 거야? “


처음에는 무신경하게 ‘음, 그러게요. 긍정 좋죠..’ 하면서 다음 영상으로 내렸는데, 하나를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분의 다른 영상을 추천해 줬다. 그러면 나는 또, 무심결에 그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다.

(아마도 말로는 무심결에, 무신경하게라고 말하지만 내심 그 말들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수년간의 회피학 마스터로서 장담한다.)


그렇게 몇 개의 영상을 시청하고 나니, 단순하지만 임팩트 있는 말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리곤 나도 덩달아 생각했다.

‘그러게,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뭐지?’

‘행복해져도 되잖아? 뭐 있어?’


이때, 다른 유튜브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자기 자비’를 다룬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비판’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열심히 채찍질한다. 본인을 엄하게 다루어야 행동 교정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번아웃이 오기 쉽다. 그러면 결국 오래 달리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있는 그대로 괜찮아’라는 전제가 깔린 긍정적 방향으로의 자기 자비가 있어야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고 더 큰 방향의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위 내용을 합쳐 보았을 때, 퍼즐이 풀리듯 깨달음을 얻었다.


[무작정 깎기만 한다고 해서, 완전한 모양이 될 수는 없다]


깨달음은 단순했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잘 살고 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했다.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도, 누군가의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더 큰 비중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오죽하면, GPT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이 '지금까지 나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나의 장단점을 분석해 줘.'라는 것이었다. 칭찬을 들어도 안심하지 못했으며, 비판을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이렇게까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가끔 누군가와 불편함을 겪기도 하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도 잠시 멈칫할 뿐, 금방 회복하고 잘 지낸다.

그런 걸 보면, 잘 산다는 조건에 꼭 윤리적, 사회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게 포함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만족하며 산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과 기준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내가 만족하고 즐기는 선에서도 충분히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나는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라는 자기 자비의 유무였다.

자기 자비를 베이스라인으로 깔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내 감정선이 긍정적인 구역에서 머무르게 된다. 그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효율이 더 높을 것이고.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다.


나는 살면서 구태여 행복할 이유를 못 찾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불행하게 살 이유도 없었다.


지나간 일로 괴로워하는 것도, 그들의 행동이 어땠든 사실 별개의 문제였다. 따지고 보면 그걸 이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괴로워하는 건 내 몫이었으므로.


사실상 나를 괴롭게 하는 건, ‘인간관계에 결점이 없어야 한다.’라는 신념이 원인이었다.


잘 살지 못하고, 후련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부단히도 애써왔고, 노력하던 관성만으로도 충분히 바르고 훌륭하게 살 사람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좀 더 가볍게 살고 싶어졌다. 그러면 왠지, 좀 더 개운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그것이 '행복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나서, 드디어 상담실에 도착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꺼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