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일기 9화: 말하고 싶은데 말하기 싫어

누가 나 대신 직면해 줬으면 좋겠다

by 당근

독후감 피드백이 끝났다.

그다음 대화는, 상담 오기 전 생각했던 ‘자기 자비’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잘 사는 것’에 집착해 왔던 점에 대해 언급하자, 상담사님이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잘 사는 것과, 잘 지내는 것은 달라요.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

잠시 생각하고는, 잘 사는 건 왠지 뭔가를 성취해야 할 것 같고, 긴장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반면 잘 지내는 건, 행복해 보이고 왠지 편안해 보였다.


대답을 들은 상담사님이 설명을 덧붙였다.

잘 산다는 것은, 평가가 들어간 것이죠. 반면 잘 지내는 것은, 표현이죠. ‘이상적 자아상’은 잘 산다는 것. 즉 평가가 들어간 것에 집착하도록 부추겨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불안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던 거죠. “


한 가지 더 질문을 하셨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아상은 정확히 어떤 거예요? “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하고, 직장에서 실수하면 안 되고, 항상 철든 모습이어야 하고, 집에서 첫째 역할 잘하고.. 그런 거요.”


내가 대답한 것들을 쭉 적어보시곤 다시 물어보셨다.

“지금 본인이 말한 것들이, 가능한 건가요?”

“불가능하겠죠!”

“그런데 왜 본인에게 그런 걸 요구해요?”

“음... 스스로 마음이 안 놓였던 것 같아요. 계속해서 불만족하니까,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고, 더 높은 기준을 삼아야 할 것 같았어요.”

“왜, 언제부터 그런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음.... 하하”


이때 직감했다. 가정사를 꺼낼 때가 되었음을.


그런데 이걸 꺼내는 게 나을지, 오히려 감정적 후폭풍을 경험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어 솔직하게 말했다.

“아마 학생 때부터였을 거예요. 입시를 준비할 시기. 이걸 말하려면 가족 얘기를 꺼내야 할 것 같은데, 말하는 게 나을지 안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상담사님이 말했다.

“어떤 게 나을지 모르겠을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세요?

일단 말해보면 돼요. 그러고 나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알게 돼요.

눈앞에 안 먹어본 음식이 있다고 칩시다. 이게 맛있는지 맛없는지 어떻게 알아요?”


“먹어봐야.. 알겠죠?”

“그런 거예요. 우선 말해보고, 괜찮은지 한 번 알아봅시다.”

“음.. 알겠습니다.”


[말하고 싶은데 말하기 싫어]


그렇게 다음 상담일이 다가왔다.


그동안에는 상담을 가는 길이 그렇게 떨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래도록 묵혀왔던 가족 얘기를 꺼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그 기억을 꺼내는 것이 내 정서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하지만, 내 가장 오래되고 깊은 상처를 꺼내어 치유한다면 오랜 시간 나를 무겁게 짓눌렀던 우울감이 나아질 것 같기도 했다.


말할 거리를 미리 생각해 간다거나, 대본을 써간다거나 하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막연히 상담사님이 먼저 말을 꺼내 주시겠지, 그러면 나는 대답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기억을 굳이 미리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막상 상담을 간 뒤에도 말할 기분일지 불확실했다. 아마도 말하기 싫은 마음이 더 클 것이다.

물어보신다면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답해야겠지.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상담사님이 가족 얘기를 능동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 생각과 감정을 물어보고, 답이 충분치 않다거나 감정이 덜 나왔다고 생각하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며 자꾸 무언가를 끌어내려고 하셨다.


반면 나도 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족 얘기를 먼저 물어본다면 조금씩 얘기해 줄 순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도.. 굳이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나에게서 속얘기를 끌어내려는 상담사님과, 상담사님이 알아서 끌어내주길 바라는 나.

둘이 의도한 이야기는 같은 내용이었겠지만, 대화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의 싸움이었다.


서로 한 치의 양보가 없었으므로, 1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용의 진전 없이 기싸움만 했다.


[너무 고통스러운데, 누가 나 대신해줬으면 좋겠다]


상담사님이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어요. 제가 트라우마를 꺼내려면 충분히 꺼낼 수 있거든요. 제가 가진 기술을 활용해서.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게 지금 옳은지 생각 중이에요.”


“트라우마에 해당하는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낸다고 해서 다 치료 효과가 좋은 건 아니에요. 큰 효과를 본다는 보장도 없고, 이럴 때 그나마 제일 효과가 좋은 건 내담자가 자의로 이야기를 꺼내는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내담자님은, 그걸 온 힘을 다해 피하면서도 말로는 ‘그래도 치료가 필요하면 해야죠..?’ 이렇게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것도, 감정 표현 안 하고 이성적으로.

지금 끌어내야 하는 건, 내담자님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 그건데, 자꾸 이성이 끼어들어서 가로막고 있어요.”


“아직 심리적 문제가 충분히 해결이 안 됐는데, 잡생각으로 마음을 덮어버리니까 문제가 해결됐다고 여기고 계속해서 마음을 무시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내담자님이 한 반응이 어땠는지 말해볼까요? 아, 그때요? 그땐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죠. 근데 뭐 어쩌겠어요. 지금 와서 할 수 있는 일도 없는걸.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이런 태도가, 지금 적절하게 보이나요?”


“이건 마치, 뱃속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배가 계속 아픈데 진통제만 계속 복용하면서 일시적으로는 통증이 사라지니까 괜찮다고 미루며 치료를 미루고 있는 거라고요. 병원 문턱에서 계속, 치료받을까? 아냐 약 먹으면 안 아픈데 뭐. 하고 있는 거라고요.”


상담사님도 답답해하고, 나도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상담사님의 말들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이게 최선이었다.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치료의 필요성은 느꼈다.

그렇지만 쉽게 꺼내기엔 너무도 불편하고 힘든 기억이었으므로, ‘네! 무지하게 불편하고, 오래 묵혀둔 얘기지만 원하신다면 자발적으로 다 얘기해 볼게요!’라고 할 수가 없었다.

꺼내기 시작하면 내 마음이 얼마나 시궁창이 될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대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 감정을 써서 진심으로 내켜야 한다는 건 무슨 말인 걸까?

막, 진심으로 얘기하고 싶어! 얘기해야 직성이 풀리겠어!라는 애달픈 마음인 걸까?


이제부터 나의 가장 아픈 부분을 말하기 위한 빌드업이 시작된다.

가장 내밀하고, 트라우마에 가깝고, 다른 누군가에게 얘기하길 꺼려하는 부분.


그래서 심리적 저항도 격렬했다.

말해야겠다 생각하다가도, 말하기 싫어졌다.

다 털어버리고 싶다가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꽁꽁 싸매고 도망치듯 살고 싶었다.

이렇게 우울하게 살기 싫었다가도, 지금도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변하고 싶다가도, 변하기 싫었다.


회피와 혼란의 연속이었다.

솔직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내적 단계를 넘어서야 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