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태양아래에도 곳곳에는 드리운 그림자가 여기저기 보인다. 봉우리가 웅장할수록 계곡의 골도 깊다고 한다. 이러한 그림자 속에서 잠시 하늘의 태양과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관만 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면 잠시 거쳐가는 삶의 정거장을 마치 종착점으로 받아들이는 누를 범할지 모른다.
인간은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또한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앞길이 창창했던 때가 있는 반면 먼지가 자욱한 채 지하창고의 구석에 던져진 씁쓸한 기억도 있다. 살면서 늘 양지에서 웃으며 걷는다면 세상 부러울 일이 없겠지만 열심히 산다고 해도 그리 되기는 어렵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화려한 취임식전 오랜 기간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갑갑한 생활을 했던 이가 있다. YS의 경우 가택연금으로 집에만 갇혀 지내던 암울했던 시절 바깥세상의 빛을 대하던 유일한 통로가 집 한구석에 있던 담벼락이었다고 한다. 거기서 옆집에 살던 여자애랑 틈틈이 얘길 나누며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그 후 대통령이 되어 그는 대학생이 된 그 아이를 청와대에 부르기도 하였다.
DJ의 경우도 야당 정치인 시절 일본에서 납치되어 동해바다에서 엔진소리 들리는 어두운 선박의 한구석에서 몸이 묶인 채 바다에 던져지기 직전 배를 추적하던 미국 CIA 헬기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대통령의 꿈을 이룬 그에게 과거 납치당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일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한 이들에게까지 보복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 DJ라고 한다.
三金중 또 하나인 정치인 김종필도 대학시절 만나던 한 여대생으로부터 실연을 당한 쓰라린 기억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육영수여사를 만나기 전 집안 어른의 등살에 떠밀려 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는 정을 붙이지 못한 채 결별을 한 여성이 있었다. 그 후 동거를 하며 한동안 함께 지내던 한 여성도 있었는데 그는 그녀를 무척 사랑했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아 여러 번 가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남로당 총책이던 그가 여순사건 관련 조사를 받으며 고문으로 생과사를 오가던 중 공산당이 싫어 월남했던 그녀는 그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는 실연의 아픈 기억을 안고 살다 결혼을 하고 결국 최고통치자까지 되었다.
위의 정치가들 외에 세인의 존경을 받았던 위인들 가운데에도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과거가 있는 이들이 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수상 처칠도 학창 시절 라틴어 성적이 나빠 낙제를 한 일이 있고 재선까지 했던 미국의 레이건대통령도 이혼한 경험이 있다.
나의 삶에도 그러한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해외로 나가 공부를 할 때 일이 생각한 대로 잘 풀리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하는데 당시 연락을 하며 지내던 한 여자와 헤어지는 일이 생겼다. 현실을 잘 모르던 나는 "얼굴이 예쁘니 마음까지 예쁘겠지" 하고 생각했건만 그 사람은 나의 처지가 어려워지자 거짓말까지 하고는 행방을 감추어 버린 것이다. 안과 밖으로부터 시달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한동안 마치 병실에 갇힌 병자와도 같은 생활을 했던 그 시절은 지금도 암울하기만 한 기억으로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그 후 마음을 다잡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결혼도 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미국서 만난 한 사람은 한국에서 명문대 신방과 대학원을 마친 후 결혼하고 부푼 꿈을 안고 미국의 명문대 신방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는 귀국도 하지 않은 채 몇 년간 불법체류자로 미국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후 미국 시골의 한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이렇듯 삶의 과정 속에는 남들에게 말하기조차 싫은 갑갑했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늪과도 같은 시절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일도 있기에 삶의 맛이 달라질지 모른다. 홍어란 생선은 삭힐수록 맛이 깊어지고 김치는 묵힐수록 냄새는 나지만 미각을 자극하는 오묘한 맛을 느끼게 된다. 삶이 힘들 때일수록 지금이 종착점이 아닌 거쳐가는 하나의 정거장이란 생각을 한다면 시름을 조금은 덜게 될지 모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그때를 돌아보면 "나에게도 그럴 때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