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공부해라"는 말은 과연 뭘 의미했을까?
우리는 어릴 적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부모나 웃어른들은 공부 얘기를 왜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을까? 인간이 되라는 의미였을까? 물론 그런 의미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커서 남보다 더 잘 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더 잘 산다는 의미는 뭔가? 경제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남들보다 나은 걸 의미할지 모른다. 대개 배우지 못할 경우 주로 농사나 지으며 살거나 남밑에서 눈치를 보면서 쪼들린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배운 이들은 출세해서 판검사나 고위공무원도 되고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정년퇴직도 따로 없이 평생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특권도 누린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공부를 싫어했던 이들 중에서도 포용력과 인간미 그리고 추진력을 앞세워 사업가로 성공한 이들도 있다. 반면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나와 속칭 출세는 했는지 모르지만 독선과 이기심으로 욕심만 부리다 지탄을 받는 일도 있는데 이를 보고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이들 중에는 팔자를 고친다고 부잣집 사위가 되지만 결국 처갓집 어른들의 원격조정을 받는 구속된 삶을 살기도 한다. 결혼할 때 열쇠를 몇 개씩 받다 보니 처가 식구들은 사위집이 아닌 딸 집을 자기 집처럼 와서는 며칠씩 묵고 가면서도 위풍당당하지만 자기 가족들은 처가의 기세에 눌려 놀러 가 밥 한 끼 먹는 것도 눈치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삶에서 출세란 말의 동의어가 되어버린 성공이란 말의 개념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다들 가난하던 시절에는 피나는 노력으로 남들보다 '부나 지위가 앞서는' 게 성공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이라면 '정신적인 구속 없이 당당하게 또한 행복하게 사는' 걸 성공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건 돈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다거나 하층민으로 산다면 사실 쪼들리고 당당하기도 어려워 행복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거나 위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꼭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우선 자신을 찾는 이들이 자기보다는 돈이나 권력 때문이다. 또한 돈이나 권력이 제공해 주는 달콤함에 빠지다 보면 돈이나 권력이 없이도 혹은 그러한 게 없어야 찾을 수 있는 고귀한 기쁨이나 삶 자체에 대한 감사를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과거에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심심챦게 듣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접하기도 쉽지가 않다. 돈과 권력 혹은 지위와 같은 삶의 도구가 이미 인간이란 주체 위에 군림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사실 뭐니 해도 세상에 머니만큼 좋은 것도 없긴 하다. 돈이 있으면 남밑에서 굽실거리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또한 돈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차지하는 데도 큰 힘을 발휘한다. 여성들은 어찌 보면 진실하지만 가난한 남자보다는 진실성이 떨어질지언정 자신을 고생시키지 않는 남자를 더 선호할지 모른다.
하지만 물질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어느 정도이지 그 이상 혹은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릴 적 부모들이 "공부해라"라고 노래를 불렀던 이유는 정신적인 만족보다는 물질적인 안정을 중시했던 것 같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우리는 그 말의 한계와 맹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가 자녀나 손자들에게 해야 할 말은 무조건 "공부만 해라"가 아닌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노력해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