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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Oct 13. 2024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들

인간의 감정에는 喜怒哀樂이란 게 있다. 기쁨, 화냄, 슬픔 그리고 즐거움이다. 喜樂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삶은 喜樂으로만 되어있는 건 아니기에 누구나 원치 않게도 살면서 분노나 슬픔이 예고 없이 닥쳐 그 정도가 예사롭지 않을 경우 잔잔한 바다가 뒤집어지듯 극도의 혼란이 찾아오면 마음의 안정이 깨어지고 당혹감이 커져 이전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인간은 삶이 평온할 때엔 표정이나 목소리 등 겉모습이 남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면 상황은 돌변한다. 가령 오래 사귀며 삶의 반려자로까지 생각했던 한 이성으로부터 느닷없이 "잘 살길 바란다"는 편지나 쪽지와 함께 그간 익숙했던 전화번호가 다른 누군가의 번호로 바뀌어질 때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어지러워진다. 또한 자신의 배우자란 이가 여기저기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온갖 애정행각을 벌인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세계적인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어린 시절 하느님과도 같던 자신의 모친이 어느 날 침대에서 한 외간 남자와 함께 누워있는 모습을 본 순간 눈이 뒤집어지며 염세주의자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삶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한 번씩 예기치 않게도 풍랑이 거세져 모든 걸 파괴해 버리기도 하지만 이 경우 과연 어찌할지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은 해봐야 할 것이다. 우선 어떤 경우에도 침착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도무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술에 의존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엔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해 길바닥에 팔자로 드러눕기도 하는 등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피하거나 물러서는 것만으로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경우라면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다. 1979년 군사정변을 일으키며 권력을 잡고 7년 단임후 물러나겠다던 이가 7년 후가 되자 단호한 표정으로 호헌을 선언할 때 그동안 침묵하며 지켜보던 국민들은 모두 거리로 뛰어나가 연일 시위를 벌여 온 나라가 뿌연 최루탄으로 얼룩졌다. 그제야 직선제 개헌이란 카드가 나오며 불안했던 정국은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다. 한때 나 앞에서는 듣기 나쁘지 않은 얘기만 하다 돌아서면 얼굴을 바꿔 내 욕이란 욕은 다 퍼붓고 다니는 이가 있었다. 처음엔 "설마?" 하다가 누군가의 귀띔도 있어 그런 심증이 굳어지자 이번에는 나 앞에서 누군가를 흠담하던 그를 향해 나는 "다른 사람 앞에 가서는 내 흉도 봤겠어요."라고 했더니 그도 양심은 있었는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그 후에도 필요할 때만 되면 나를 찾던 그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살면서 인간을 분노하게 하는 건 과연 어떤 일일까? 한 마디로 인간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이다. 인간은 성현군자가 아닌 다음에 말과 행동이 완벽하게 일치하긴 어렵지만 한마디를 내뱉더라도 행동이 뒷받침될 수 있는 말을 고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게 계획되거나 의도된 피해를 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인간이 반대로 이번에는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피해자가 된다면 과연 스스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해진다. 만일 자신의 가해자로서의 사실을 깡두리 걷어낸 채 상대방을 비난만 한다면 "나는 파렴치한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정치인들은 두 얼굴을 가지고 두 가지 말을 곧장 쏟아붓는다고 하지만 누구보다 말과 행동이 올곧아야 하는 이들이 교육자이다. 학생들 앞에서는 좋은 말 일색인 교육자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경우 사회적인 비난은 일파만파로 커진다. 1980년 말 중학교 체육교사가 노름빚을 갚기 위해 부유한 집 학생을 유괴했다 살해한 범행을 저지르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 하나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모든 교사의 윤리성이나 권위가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 컸다.


평소에 평온한 세상에 이렇듯 소용돌이치는 일이 벌어질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는 무척 어렵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이지만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도를 넘는 사건과 사고는 분노를 재촉한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이 약간 상식을 벗어나는 정도면 몰라도 짐승과도 같은 짓을 한다면 더 이상 죄만 미워하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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