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 관련한 불안이 커지기만 한다. 정치적으로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그리고 이스라엘과 주변국 간 전쟁이 진행 중이며 가까운 북한은 핵실험으로도 모자라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보내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환율, 물가 및 금리 상승에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방위분담금 압박 등은 전 세계를 불안하게만 한다. 몇 년 전 코로나 사태로 경제는 제자리걸음을 했는데 팬데믹에서 벗어나자 새로운 위험요소들이 대한민국을 크게 위협한다. 우선 1,9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1,200조에 달하는 정부부채인데 정부부채는 GDP의 50%로 IMF의 권고치인 40%를 훨씬 넘어 버렸다. 시내중심가의 건물 곳곳에 '폐업'이라 적힌 간판이 줄을 잇고 어떤 건물은 건물 전체가 폐업이란 문구로 도배되어 있다. 특히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대한민국으로서는 마치 집안이 망하거나 혹은 배가 풍랑에 가라앉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재 개인소득 3만 불을 넘어선 대한민국은 성장과정에서 정치적 민주화 및 노사 문제와 함께 북한을 포함한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과 같은 분야에서 선진국들로부터 도입한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까지 발전시키며 선진국으로 도약하였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산업의 불황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의 경쟁력 저하로 성장은 삐걱거리기만 한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걱정거리로 대두되어 온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암세포는 별 치료약도 없이 저성장과 노년 빈곤층을 양산하며 국가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렇듯 암울하기만 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도 별 묘책이 없다. 이럴 땐 먼 곳에서 답을 찾기보다 과거와의 반추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과거 두 자리 수의 성장을 하던 시절 실업률이나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현재보다 나았는지 모르지만 자기 집도 없이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서민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한 지붕 세 가족'이란 드라마 제목은 그 시절의 세태를 보여준다. 아파트 전세조차 구할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의 집에서 방 하나를 세내어서 주인집 눈치를 보며 사는 일인데 당시에는 너나 나나 그랬기에 셋방살이는 별 흉도 아니었다. 또한 자식들이 노부모를 모시다 보니 '고부간 갈등'이란 말도 있었지만 노인들은 자식들로부터 생활비나 용돈 정도는 얻어 쓸 수 있었기에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차 없는 집이 없고 생활환경은 안락해지다 보니 고생스러운 일은 피하고 자기만 호강하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해졌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눈높이는 올라갔지만 사회나 국가를 생각하는 의식은 갈수록 희박해지기만 하였다. 심지어는 옆집에 사는 이웃이 생활고로 인해 일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대외적인 요인도 혼란스럽지만 이러한 이기주의와 무관심도 현재의 불안정을 가져온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라앉는 배와 같은 나라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주변을 둘러보고 잘못된 게 보이면 누구든 목청을 높일 수 있는 시민의식이 살아나야 할 것이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장시간 휴대폰 전화를 큰 소리로 하는 사람을 보고도 혹 설전이라도 날까 봐 가만히만 있으니 소음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이가 반성은커녕 당당하기만 하다.
둘째, 자기 배만 채우는 망국적인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자기만이 아니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자기만 잘 되려 하다가 공멸할 수도 있는 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여 급기야 금융기관이 문을 닫게 된다면 자신의 예금 또한 안전하지 못하게 된다.
셋째, 세상이 어려울 때일수록 조금은 손해 본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여유가 있는 이라면 어려운 이웃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때 외면하기보다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렇듯 난파되기 직전일지도 모르는 대한민국에서 여야로 싸움만 일삼는 정치인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들 중에서 잘못된 걸보고 목청을 높이고 함께 행복할 길을 찾고 손해 볼 맘이 있는 자가 과연 몇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