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무지갯빛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 선녀가 나오는 그림책을 좋아했다. 그림체가 예뻤던 그 그림처럼 세상은 빛나는 황금색 옷을 입고 날아오르면 태양이 떠오르고, 바람처럼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을 입고 날아오르면 산들바람이 불고, 무지갯빛 옷을 입고 하늘로 향하면 무지개와 노을로 세상이 칠해지는 그런 곳이라 믿었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어린이의 시선에서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놀고 싶은 만큼 노는 것, 보고 싶은 책을 실컷 보는 것, 의자 사이에 이불을 걸쳐놓고 그 속의 세상에서 인형놀이를 하면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됐다. 내가 꿈꾸는 대로 세상일이 진행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야기책의 기승전결 끝에 모든 것이 해결되고 행복이 오고야 마는 그런 세상을 믿었다. 재수를 하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난 후 꿈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시선이 닿지 않았던 그 세상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전공을 바꾸면서 다시 생각했다. 이 너머에는 내가 꿈꿨던 필연적으로 모든 게 잘 풀려가는 세상이 존재할 거야.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세상도 표지를 보고 짐작했던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다음에는, 이다음에는 익숙한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 믿으며 걷고 또 걸어왔다.
어느 날, 우울증이 찾아오고 나서야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당연하다 여겨온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윤슬이 반짝이는 표면 아래로 추락하면서 무언가 바사삭 부서져버렸음이 틀림이 없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것처럼 구는 나는 대체 어디쯤 있는 거지. 우울증에 걸린 사람과 아닌 사람은 어떻게 구분되는 걸까. 암흑이 찾아왔을 때 떠오르던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고 침대에 누워 떠올려 보는 또 다른 바닥에 누운 죽음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다. 미쳤나 보다. 나는 이제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일까. 정상과 비정상은 어떤 기준으로 나뉘는 걸까. 문득 지하철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이들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지만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이들은 그때 내 눈엔 미친 사람이었다. 그들과 내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두려움 보다 깊은 슬픔과 연민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얼마나 많은 추락하는 날개옷들이 있을까. 어떤 말들을 그렇게 끝없이 하고 싶었던 걸까. 스스로에게, 또 어딘가에 있는 또는 존재하지 않는 그 누군가에게.
그럴 거야라고 믿었던 세상은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은 곁들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다. 죽음은 내가 세상에 나온 그 순간부터 줄곧 곁에 있어왔고 그들도 나도 미쳐있고 때로는 정상이다. 한 가지에 꽂히면 그곳을 향해 순식간에 내달리곤 했지만 이제 잠시 멈춰 호흡을 고르고 저편을 바라본다. 내가 본 것이 담장 위에 드러난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도미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나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경계에 서있다. 어느 쪽으로도 쉽게 발이 안 떨어진다. 어떤 곳으로 가도 진짜 나를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담장 위에 올라가면 더 멀리 보인다. 그 자리에 쭉 존재해 왔지만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경계를 걸으며 담장 위에서 만난 모든 것들을, 경계의 삶을 사랑하기로 했다. 계속 걸어본다. 담장너머 시선이 멀리 닿는 저곳에도 황금빛 노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