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속의 이방인

by 유칼리

일기를 쓴 지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쓴 게 3~4년은 된 듯하다. 일기장을 열고, 일기를 쓰고, 내가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이 별거 아닌 것 같은 과정을 생각만 해도 지친다. 어쩌면 우울증은 모든 감각들을 고통과 연결시켜 날 무력화시키는 병인지도 모르겠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더 잘 살피기 위해 감정일기가 권장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기장을 펼치기가 힘들다. 일기를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일기 때문에 우울증이 온 거나 다름없는데.


코로나가 한창일 때, 온라인 드로잉 커뮤니티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리더인 회화 작가님이 매일 드로잉 미션을 주면 각자 그림을 그려서 단톡방에 공유했다. 아이패드를 장만한 김에 그림을 그려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오랜만에 그리는 재미에 푹 빠졌다. 몇 주 동안의 활동이 끝난 후 그림을 계속 그리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작가님이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책을 읽으며 각자 일기를 쓰고, 감상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창조적인 나를 회복하고 몰랐던 나를 찾아보자'는 이 여정에서 내가 찾았던 건, 마주하기 힘든 낯선 인물이었다.


나는 그 여정을 다 마치지 못했다. 그 여정에서 내가 썼던 일기들은 그동안 내가 써왔던 일기와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읽지 않고 정신없이 그저 쏟아부었다. 여과 없이 쏟아진 나를 마주한 순간 느꼈던 그 놀라움이란 마치 신성한 신전에서 갑자기 피를 철철 흘리는 들짐승을 만난 기분이랄까.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제 그것들이 하나하나 몸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믿었던, 절박하게 의지하고자 했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엄마라는 세계에서 나는 늘 버림받을까 두려움에 떨던 투사체(엄마가 닿지 못했던 세상을 향한)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원망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고 설칠 때부터 알아봤다. 결국 가 또 무덤을 판 거야. 바보같이.


역설적이게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물에 비친 내 모습을 억지로 확인한 그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그때.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을 뗄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줄도 모르고 썼던 예전 일기 속의 내가 낯설다. 정답 같고, 나를 채찍질하고, 부족함을 반성하고, (뭔지는 모르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탯줄을 감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분화를 시작했다. 아직은 펼쳐보기 두려운 일기장 속에는 매일이 낯선 이방인이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