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실패의 연속이다. 어제도 아이는 할 일을 기계적으로 적고는 책상 위에서 다이어리를 치우면서 머릿속에서도 치워버렸다. 할 일 가짓수만 나열하고 해야 할 구체적 행동과 전혀 연결이 안 되는 걸 지켜보노라면 단전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친다. 언제 이 숙제를, 공부를 시작했고 언제쯤 끝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은 우리 딸 머릿속에는 없다. 시계 보는 법을 알지만 보지 않는다. 뽀모도로 타이머를 돌리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타이머를 돌리는 이유는 단 하나, 저 빨간 부채가 사라지고 나면 영혼의 양식인 유튜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튜브의 시작과 동시에 빨간 부채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삐삐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꺼버리고 영상에 다시 집중하는, 평소와 다른 그 민첩함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나는 오늘도 아이의 시계가 되어 때마다 아이 방문을 '노크'한다. 그나마 수학은 아빠에 의해 목덜미를 붙잡혀 꾸역꾸역 하지만 그 외엔 책상에 앉자마자 흐린 눈을 하고 꾸벅꾸벅 존다. 그렇다. 내 딸이다. 온갖 짜증을 다 내고 발버둥도 치지만 파닥거리는 금붕어 마냥 제 방에서 그래도 버티는 게 감사하다. 오늘도 10시가 넘었다.
매일매일 변신의 연속이다. 핸드폰 체크리스트에 할 일을 나열해 뒀지만 사라지는 모닝커피와 함께 그 기억도휘발되어 날아갔다. 저녁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아차, 더듬어 열어보지만 이 일은 이제 내일의 내 몫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답답함과 자책이 몰려온다. 반추해 보지만 오늘은 갑자기 친구가 상담을 해와서 어쩔 수 없었잖아. 그 일 때문에 나도 많이 놀라고 지쳐서 오후에는 쉴 수밖에 없었다. 신경이 곤두서서 일에 집중하기 힘들어 넷플릭스 지옥 시즌 2로 마음을 달래 본다. 한 편만 보자고 맘먹었지만 흐름이 끊기면 아쉽잖아. 넷플릭스는 역시 정주행이지. 친구 일로 심란했지만 드라마에 몰입하니 모든 걸 잊는다. 저녁 식사 준비와 아이 숙제 챙기기, 운동시키기 미션을 하면서 나무늘보는 변신한다. 갑자기 잔뜩 곤두서서 황야를 날카로운 눈으로 둘러보는 한 마리 거친 들개가 된다. 한 없이 냉정한 눈빛을 한 들개는 금붕어랑 오늘도 맞붙는다. 금붕어를 잡아먹을 생각은 없지만 금붕어는 어항에 있어야지. 들개는 생각한다. 오늘도 11시가 넘었다. 지친 들개는 들판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영혼의 안식처인 유튜브로 향한다.
불안과 답답함, 미안함의 알고리즘이 육아와 교육 채널로 인도한다. 반성하는 어린양이 된 나는 또 한 번 무릎을 친다. 새파란 무릎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아침이다. 모닝커피와 함께 오늘의 체크리스트를 적어본다. 어항 속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