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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24. 2023

나는 멈추지 않고 걷고 또 걷습니다.

나의 엣지는


“매니저님 오늘 할 이야기가 있어요. 매장에 계실 건가요?”
“네 저 오늘 근무합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6년째 매장을 운영 중이었지만 그해는 너무 힘들었다. 재고부족으로 공급량이 줄고 판매도 줄어 매장매출은 좋지 않았고 사장도 나도 운영에 대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었고 재계약은 아직 3개월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다.

그해 들어서는 유난히도 사장이 자주 매장을 들렀더랬다. 예년 같지 않은 경제상황 탓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어려운 여름철 3개월 정도 사장이 직접 몇 시간씩 대신 근무를 해주기로 하면서 자주 마주하긴 했더랬다. 직원이 부족하여 시니어 한 명만으로는 작업이 어려워 힘들었던 시기도 다행히 막 넘긴 시기여서 이번 겨울만 잘 넘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한데 갑자기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걸까?


“이번 재계약 조건이에요.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재계약은 어렵겠어요. 지금 다들 어려운 시기인 건 알지만 우리도 좀 힘들어서”
“네?? 재계약 조건,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도 많이 어렵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생각해 보시고 답 주세요..”
“제가 여기서 근무한 시간이 6년이에요. 아무리 어렵다고 하셔도 갑자기 6년 전 처음 계약했던 연봉으로 재계약이라니요. 다른 계약 안은 없나요? 그리고 왜 지금 재계약 이야기를 하시나요? 2월이 재계약이잖아요??”  
“올해 1월 계약서 다시 썼잖아요. 12월 중에 결정해야 하니 생각해 보시고, 계약서도 기억해 보세요. 기억 안 나시면 계약서 보내드릴게요.”


너무 당황스럽고 화도 났다. 6년간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내가 이 매장에 쏟은 노력과 흘린 땀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내가 어떻게 만들어놓은 매장인데.. 아.. 정말 이곳을 그만둘 때가 된 것인가.. 올초 고민했을 때 먼저 그만둔다고 했었어야 했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지며 막막해졌다.  다시 계약조건을 들여다보았지만 말이 안 되었다. 갑자기 수수료 계약이 아닌 연봉계약을 해야 하고, 6년 전 최초계약 연봉이 아니면 같이 일하기 어렵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억울함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게다가 생각할 시간은 최대한 2~3일만 주겠단다. 문득 4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이 매장 계약 시 난 연봉계약이었지만 2년 만에 직원고용보험 건으로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직원을 매장 매니저들에게 떠넘기며 모든 매장을 개인사업자로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었더랬다. 그때도 수수료 계약으로 2~3일의 시간만 주며 통보했었고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식 계약을 진행하던 날이 떠올랐다.

‘나쁜 xx들.. 안 변했네.. 안 변했어..’


그날로 나는 억울함과 화를 가득품고 더 이상 나와는 인연이 아니라며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억울한 마음 탓인지 상황은 꼬여갔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등과 발뒤꿈치가 골절되어 근무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다닌다는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든 일이 물밀듯 밀려오는가 싶었다.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억울한 마음에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하고 발 때문 에라도 다음 일도 결정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그로부터 4년 여가 지났다. 돌아보면 왜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같다.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으려 했던 내가 보이고, 현명하지 못하게 대처한 내가 보였다. 그 후 의미 없는 자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마음공부가 절실했던 나였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고 책을 읽으며 서서히 알게 되었다.



이른 아침 일어나 스트레칭을 끝내고 유튜브를 켜고 책과 노트를 펼쳐 책 한 페이지를 노트에 고스란히 옮겨적고 10분 정도의 강의를 들으며 마음공부를 1년 정도 해주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시작했고, 그 후로도 매일 필사를 하며 자책이 아닌 자신에 대한 관심과 충분한 이해 그리고 내가 주도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얼마나 생각 없이 그냥저냥 살아왔는지 후회되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여 다시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쉬지 않았더랬다. 점점 단단해지는 나를 만날 수 있었으며 그렇게 멈추지 않고 살아내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얼마 전 이벤트진행으로 이런 질문을 받은 일이 있었다. 당신의 엣지, 당신의 독특함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받고 조금 당황하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 중 나에게 먼저 질문을 해주었다는 것에 우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과연 난 뭐라 답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가득했다.

하루종일 나만의 독특함에 대해 고민고민하다 퇴근길 바삐 걷던 순간 문득 떠올랐고 당당하게 적을 수 있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걷고 또 걷습니다. 거침없이 하루를 살아낸 오늘의 자신처럼 그렇게 살아있으므로 삶이 있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그렇게 답하고 나니 뿌듯함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거침없이 지금,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나, 희망이 있는 삶.  

아직도 부족하고 좌충우돌 겪어야 할 일들은 많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해주었다.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할 것이라고.



지금의 나를 있게한 필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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