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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올뺌씨 Apr 20. 2022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낭만을 아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비알레띠 모카포트를 구매했다

일을 하는 날이건, 집에서 쉬는 날이건, 하루 평균 세잔의 커피를 마신다.


어쩌면 내 몸의 70%는 수분이 아니라 커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떨어질까봐 평소에도 1리터짜리 페트병에커피를 항상 냉장고에 채워 다.


날도 마실 커피를 주문하려다 정말 갑작스럽게 비알레띠의 모카포트가 생각났다.



커피 좀 내린다 하는 커피숍에 방문하면 항상 인테리어 소품처럼 장식돼있는 이 녀석.


실제로 커피를 사랑하는 이탈리아에는 90%의 가정집에 이 비알레띠 모카포트가 있다고 한다.


캡슐 커피 추출기나, 반자동 커피 추출기의 경우 부피도 많이 차지하고, 캡슐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본인도 전에 가찌아의 반자동 머신을 이용했는데 이게 처음에는 편하고 좋았는데 관리 및 부품 마모에 따른 AS 문제에 결국 처분한 이력이 있었다.


요 녀석은 간편하게 가스 불에 올려서 커피를 내린 후 물로 가볍게 세척해서 바람이 잘 통하는 건조대에 보관해주기만 하면 되는 매우 편리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거기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크레마에 목숨 건 사람이 아니라면 가장 기본형 모델 3인용 정도로 구매하면 2만 5천 원 정도의 가격대다.


진하게 마시는 편이라면 혼자 마셔도 좋고, 약간 연하게 마시는 편이라면 둘이 마셔도 괜찮을 만한 양이 나온다.


거기다가 아날로그 감성이 더해져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상상하면 흐뭇함에 미소가 지어진다.


마치 커피프린스의 공유가 된 기분이다.


근처에 윤은혜가 연기한 고은찬 같은 여자분이 있다면 “어머, 멋져부러~” 하면서 한눈에 반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주변에 고은찬은커녕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주변에 고은찬 같은 여성분이 있었다면 분명 반했을 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은찬아, 너는 어디 있는 거니~’


애타게 은찬이를 그리워해 보다가 점점 글이 삼천포로 빠지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본다.


그렇게 행복하게 커피를 내리는 상상을 하고 나니 이건 꼭 사야 하는 필수품 중의 하나가 됐다.


신속, 정확, 주문한 지 12시간 만에 배송 오는 쿠팡에서 주문 버튼을 눌렀다.


상품 준비 중이라니 조만간 공유같은 남자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 띵동~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공유같은 남자가 되기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 모카포트가.


문 앞에 있는 택배 봉투들을 낚아채 왔다.


Made in Italy.


루마니아에서 만든 마감이 좀 떨어지는 제품도 있다고 해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탈리에 본토에서 만든 녀석이 도착했다.


은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자태가 본인을 유혹하는 듯했다.


- 어서 나를 뜨거운 불 위에 올려줘~


잘만 사용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만큼 관리에는 다소 까다로운 특성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일단 처음 받자마자 해야 하는 일은 모카포트의 세척인데 절대로 세제를 이용해서 닦으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닦아야 하냐고?


물로만 가볍게 닦고 마른 행주로 물기를 싹 닦아서 보관해야하는 까다로운 녀석이다


1. 수돗물과 손을 이용해서 겉과 안을 삭삭 훑는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세척한다.


2. 모카포트용으로 분쇄된 원두 가루 혹은 유통기한이 지난 원두 가루를 이용해 커피를 내린다.


3. 커피를 총 3회 내린 후 불순물이나 안 좋은 물질이 여과되면 이후에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절대로 세제를 이용해서 닦지 말 것이다.


알루미늄이 하얗게 뜨면서 부식이 진행되는 순간 공유같은 남자고 나발이고 예쁜 쓰레기를 하나 획득하게 될 뿐이다.


공유가 되기 위한 노력은 이처럼 험난한 과정동반해야 하는 거다. 


뜨겁게 달궈진 모카포트를 찬물에 급속도로 식히면 변형이 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미지근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한 정도) 정도가 됐을 때 물로 헹궈주고 다시 또 우리고를 반복하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점점 지쳐갔다.


당장 냉장고 문만 열면 페트병에 가득 담긴 쌉싸름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는데, 오로지 공유같은 남자가 되고야 말겠다는 오기 하나로 버텨냈다.


그래도 집안 가득히 진득한 커피 향이 차오르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세 번의 세척을 위한 커피 내리기가 끝나고 이제 직접 먹을 커피를 내리기로 했다.



하단 보일러 부분에 물을 넣는다.


물은 밸브가 잠길 정도로 넣으면 안 된다고 했다. 밸브를 넘지 않을 정도로 물을 채운다.


그리고 모카포트용으로 분쇄된 커피를 부어주는데 반자동 기계와 다르게 탬핑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탬핑을 하게 되면 고압력을 필요로 해서 커피가 추출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부드럽게 커피를 붓고 위를 평평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윗부분과 결합해준다.


가스 약한 불을 이용해서 끓여주면 되는데 강한 불로 할 경우 안에 실링이나 손잡이가 탈 수도 있기에 약한 불로 서서히 우려내야 한다.


약 3분 50초 정도가 지나면 “푸슈슉~ 푸슈슈슉~” 하는 소리가 올라온다.


커피가 1/3 정도 차오르게 되면 소리가 좀 더 격해지는 타이밍이 있는데 이때 가스 불을 끄고 남은 열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면 성공이다.


크레마는 없지만 진한 에스프레소가 우러난다.


크레마는 없지만 향긋한 커피가 내려졌다.


크레마가 생성되는 모델도 있었는데 그 제품은 약 2배가량 더 비쌌다.


굳이 에스프레소로 마실 것도 아니고 대부분 아메리카노로 마실 거라서 제일 기본형 모델로 구매했는데도 먹을만한 커피가 완성됐다.


두 잔 분량의 갓 내린 커피.


집안 곳곳에 풍겨오는 향긋한 커피 향.


뭐 하나 허전하다 싶은 것은 옆에 고은찬 같은 여자가 없기 때문일 것이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커피 한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또 한잔을 내려볼까 싶었지만 이미 세척하고 마른행주로 물기까지 닦아서 건조 중인 상태였다.


냉장고를 열어본다.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해둔 1리터짜리 커피 보틀이 꺼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다.


공유같은 남자가 되는 일은 일단 고은찬 같은 여자가 생길 것 같을 때 고민하자.’


낭만도 좋지만 역시 편한 게 장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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