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윗니가 삐뚤빼뚤하다 보니 멀쩡하게 제자리에 있는 송곳니들까지 두드러져 보여서 사실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들이 놀리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고 있는 소심한 여자애였냐 하면...?
전혀 아니다. 내 눈을 마주치며 '드'자나 '송'자를 내뱉음과 동시에 이미 그 아이는 빛의 속도로 내달려야 했고 나는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뒤쫓아가서(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옷자락을 붙잡아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발길질을 한 번 더 해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쫓고 쫓기는 스릴을 즐기느라 나를 놀렸을 것이고 만약 내가 무시해 버렸다면 흥미를 잃어버렸을 테지만 나는 어김없이 강한 응징으로 반응했고 남녀로 나뉘어 반 아이들은 응원까지 해댔다.
겉으로야 그렇게 지지 않고 씩씩하게(사실은 좀 지나치게?) 대응을 했지만 슬슬 나의 고르지 못한 치아의 배열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왈가닥 천방지축 4학년 때는 매일 놀리는 애들과 그렇게 과격한 '나 잡아 봐라' 놀이가 끊이지 않았으나 5학년에 올라가면서는 상황이 달랐다. 학년 초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분위기가 전혀 달랐던 것이다.
5학년이라는 나이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점이어서라고만 하기에는 아이들이 훨씬 신체적으로 성숙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답지 않은 묵직하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뛰어다니며 잡고 치고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이 무리 지어 쑥덕거리며 2차 성징이나 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놀리는 것도 유치하게 큰 목소리로 까불거리는 것이 아니라 정면에서 대놓고 비웃듯이 얘기했다.
"너는 이가 왜 그렇게 삐뚤삐둘한거야?"라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놀리는 기색은 없었지만) 묻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몰라!"라거나 "이가 흔들릴 때 빨리 뺐어야 하는데 무서워서 늦게 빼서 그래."라고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차츰 이가 보이지 않게 하려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중학교 때 체육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가지 않고 교실에서 중간고사 자습을 하는 날이었다. 체육 선생님은 내 옆에 와서 실실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너 이빨은 누굴 닮았노? 부모님이가?" 옆 친구와 소곤거리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선생님 때문에 속이 뜨끔했던 나는 순간 짜증이 확 나면서 "아니라고요! 아무도 안 그래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유전인데!"라고 말하며 뭐가 신이 났는지 흥얼거리며 교탁으로 멀어지는 체육 선생님이 얼마나 얄밉던지... 사실 그 선생님 말이 옳았다는 건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나는 유난히 이를 뽑는 것에 겁이 많아서 매번 흔들리는 이를 실로 묶어서 잡아당기는데 몇 시간 동안 울고불고 진땀을 빼야 했다. 그것도 새 이가 밀고 올라와 유치가 거의 절반쯤이나 덜렁거릴 지경인데도 그랬기 때문에 늘 할머니와 아버지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야 했으니 "이를 빨리 뽑지 않으면 뻐드렁니(부정교합을 그렇게 말했다)가 된다."라고 수도 없이 얘길 했었고 난 정말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가족 중 나 말고는 아무도 이가 들쑥날쑥한 사람이 없었으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그런데 나중에야 알고 보니 할머니와 아버지는 아랫니가 나의 윗니보다 훨씬 심하게 부정교합이었고 고모도 고종 사촌들도 아랫니가 틀어져 있었다. 나만 윗니가 그랬던 것!
중학교 때 울고 불고 해서 치과에 교정상담을 하러 갔었다가 당시의 집 한 채 값이 넘는 비용에 까무러칠 듯 놀라기도 했지만 만약 우리 집이 부자였다고 하더라도 결코 감행할 수 있는 치료가 아니었다. 나의 경우는 간단히 입 안쪽에 교정장치를 달면 되는 정도가 아니었고 겹친 이 사이의 틈을 만들기 위해 맨 뒤쪽 어금니부터 견인을 해서 당겨야 했다. 지금이야 기술이 좋아져서 아주 얇은 철사와 투명한 교정장치를 이용하고 적절히 이를 뽑아서 공간을 넓히기 때문에 기간도 단축시킬 수가 있으나 그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마치 맹수의 입을 막기 위한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생긴 쇠로 된 견인장치가 입술 밖으로 나와 뒤통수를 돌아서 반대편 볼 쪽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아버지는 시술 가격에 입이 딱 벌어졌고 나는 그 무시무시한 장치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의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우린 그날 이후 치아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학 때 동기들 중 두세 명이 교정을 했으나 모두 상태가 심하지 않아서 앞니가 약간 벌어져 있거나 송곳니가 덧니인 정도였고 어금니를 몇 개씩 뽑고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치료가 끝났다.
중고등학교 내내 나는 집 밖에서 큰 소리로 웃을 땐 양손으로 입을 가리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어색한 표정이 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대학 동아리의 신입생이 된 어느 날, 한 선배의 말을 듣고 그런 컴플랙스를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선배가 한 말, "너는 이가 참 예술적이구나!"
그때 난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갑자기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말을 한 선배도 나 만큼은 아니었지만 앞니가 부정교합이었다.
"선배님도 이가 예술적이시네요, 하하하."
선배는 인간미가 넘치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너는 이가 참 예술적이구나!"라는 말로 "너도 나처럼 부정교합이구나." 하는 동질감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고 생각해보지 않은 방식의 표현에 빵 터졌고 그동안 가졌던 열등감이 우습게 느껴졌었다. 그 이후로 당당하게 웃을 수 있었던 나는 졸업 후 한참이 지나서 동아리 선후배와 모임을 가졌을 때 그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선배가 말하길, "내가 그랬어? 기억이 안 나는데? 근데 너 지금 보니까 이가 예술적이긴 하다..."
졸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정신없이 사는 동안 아무도 나의 이를 보고 뭐라고 한 사람 없고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가질 뿐 남의 일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매일 만나서 저녁 운동을 함께 하고 수다를 떠는 친구도 "네가 이가 삐뚤어져 있다고? 어디?" 하며 확인을 하고서야 "아, 좀 그렇긴 하네. 근데 전혀 몰랐는데?"라는 반응이었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 수시로 사진을 찍게 되고 카톡으로 사진을 주고받으면서 새삼 내 얼굴을 내가 자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굴이 멀리 있어서 웃고 있어도 이가 잘 보이지 않는 사진은 괜찮지만 가까이서 찍힌 사진은 하나같이 내 눈에 못나 보이는 앞니 4개를 부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진들을 볼 때마다 "에휴, 이놈의 이는 나중에 틀니를 끼워야 반듯한 모습을 보게 되는 건가?'라며 혼자서 구시렁거리며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최근에 둘째 딸이 교정을 하게 되면서(사실 아무도 교정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정상에 가깝게 고른 치아였다) 나날이 예뻐지는 치아의 배열과 얼굴 윤곽이 달라지는 것을 보자 조금씩 내 마음도 들뜨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엄마는 도저히 못 할 거야.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던 딸이 몇 달 지나자 "이제 적응되니까 아무렇지도 않네. 엄마도 자꾸 신경 쓰이면 그냥 해버리는 게 어때?"라고 말하면서 부채질을 해대는 통에 최근까지 고민을 했었다. 그래도 여전히 치아교정은 무섭다. 예민한 내가 정말 견딜 수 있을까? 게다가 지난 주말에 치과에 다녀온 딸이 교정장치에 추가로 그물망을 씌우고 나자 통증이 심해서 잠을 못 잤다고 하니 더 겁이 났다. 다음번엔 나도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고 상담해 볼까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는데 "안돼, 엄마, 하지 마!"라고 말하는 딸이 그저 부럽다. 저 나이에 나도 해버릴걸...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면서 몇 년 동안 입모양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지만 실내에서 마스크 의무착용의 규정이 완화되면서 학교에서도 새 학기가 되면 마스크를 벗어야 할지 모른다. 조만간 언젠가는 벗게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방과후 수업을 하면서 3, 4학년 학생들에게 발음을 설명하느라 마스크를 벗었다. 다시 마스크를 쓰는 나에게 한 아이가 "선생님, 마스크 쓰지 말아요! 안 쓰는 게 더 이뻐요"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마스크를 쓴 채로 만났기에 눈매로만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서 어쩌다 잠깐 마스크를 내린 모습을 보면 너무 낯설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에 놀라곤 한다. 그래서 나도 마스크를 내리는 것이 어색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아직은 마스크 벗는 게 좀 그렇지 않아?"
"저희가 다 쓰고 있으니까 선생님은 벗어도 되잖아요"
"좀 쑥스러운걸?"
"에이, 뭐가요? 선생님은 안 쓰는 게 더 이쁜데."
수업 중에 딴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난 아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드니 못 이기는 척 마스크를 벗고 수업을 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서 말했다.
"그런데 얘들아, 선생님 치아 교정하는 게 나을까?" "네? 왜요?"
"이가 삐뚤삐뚤, 좀 그렇지 않아?"
"아닌데요? 전혀 몰랐는데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이쁘기만 해요."
허 참, 그 녀석들... 예전에 1, 2학년 아이들 중에는 "선생님 이는 왜 그렇게 생겼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하던데. 관점이 바뀐 건가? 아님 벌써 아부를? 이쁘다고 하는 걸 보면 수업 빨리 끝내주라는 뜻의 아부성 발언??
내가 이렇게 때가 묻었다. 순수한 아이들의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사실 마음속으로는 좋아서 헤헤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