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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궁무진화 Jul 30. 2023

현지야, 우리 과제말고 영화 찍을래?

펜타닐 중독의 무서움, 단편영화 <꺼내줘> 비하인드 씬

시작은 단순했다. "오빠, 카메라 빌려줄 수 있어?"


몇개월만에 만난 후배는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수업 과제로 개인영상을 제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카메라를 빌리고자 나에게 연락하였고 간만에 퇴근 후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후배와 대화를 나누면서, 단순한 과제용 영상을 만들고 싶지 않은 후배의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요즘, 회사 프로젝트 말고도 다시금 개인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던 찰나 서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후배에게 제안했다. "현지야 우리 일 한번 벌려볼래?"


그렇게 2명에서 공동각본, 공동연출, 공동출, 공동촬영이 시작됐다.
빠듯한 과제제출 기한을 10일 남겨두고
프리프로덕션과 프로덕션, 포스트프로덕션을 진행했다.


후배는 '도시 주택가에서 펼쳐지는 추격전' 장르를 만들고 싶어했다. 또한 쫓기는 자신을 닮은 여자주인공을 설정 후 쫓는 이의 정체가 불명확한 '누구로부터 쫓기는 지' 모를 미스테리 추격전을 지향했다.

즉 후배는 특정 스토리라인보다도 원하는 이미지들로 작품을 구상하였다.

그에 반해 나는 스토리에 집중했다. 개인적으로 작품에 무엇보다도 스토리 메세지를 핵심코어로 삼는 스타일이었기에, '왜 주택가에서 추격전을 펼쳐야 되는가?'에 중점을 두고 후배와 이야기를 꾸려갔다.


원하는 이미지로 가득찬 후배와 몰입력 있는 스토리를 추구하는 나와의 대화는 꽤나 길어졌고

다행히 이미지와 스토리가 겹치는 공동구역을 하나씩 찾을 수 있었다.


주택가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은 현실과 맞닿아있기에
무섭고 을씨년스러운 장르적 쾌감이 있다.
하지만 그곳이 꼭 현실 속 공간임을 전제할 필요가 없잖아?


이러한 설정을 생각한 뒤로, 신선하고 흥미로운 스토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만약, 쫓는이가 과거의 나라면?
- 쫓는이가 자신의 죄책감이라면?
- 과거에 얽매인 자신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과 마주하는 스토리라면?

매우 매력적인 스토리들은 나오기 시작했고 물꼬를 튼 대화는 점점 재밌어졌지만 결말에선 모두 마땅한 끝맺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과거에 유튜브에서 보았던 한 영상이 떠올랐고 명쾌하게 스토리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바로 펜타닐 중독자들이 점령한 켄싱턴 거리의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 펜타닐에 중독된 그들은 마치 좀비처럼 기괴한 몸짓으로 세상이 멈춘 듯 거리에 서있었다. 마치 그들의 정신은 자신의 몸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스스로의 몸에 가둬버린 죄수들, 그들은 그 안에서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영상은 영감이 되어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뽑아내도록 도와주었다.

어느날 재미있게 보았던 다큐로부터 스토리는 명쾌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현지야 결국 쫓기는 장소는 약해 취해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의 세계인건 어때?
쫓는 이는 결국 펜타닐 그 자체인 거야.
마지막엔 씨익 웃으면서 문제의 원인은 바로 너라는 걸 알려주는 거고.
-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주인공
- 자신이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 자신을 스스로 가둔 개인의 비극

유레카, 장르와 이미지 그리고 스토리 모두가 녹아든 로그라인이 완성되었다.

야밤의 도심 추격전이란 장르적 특성에도 적합해보였고, 도망치는 동기와 추격의 이유도 명확했다. 또한 최근 사회적 문제로 부상 중인 '펜타닐'이란 마약의 소재에 대한 시의성도 매우 적합한 타이밍이었다.

이후 로케이션 헌팅부터 캐릭터 설정 및 아트, 의상 준비가 수월하게 진행했다. 것도 이틀만에.


펜타닐을 상징하는 죽음의 토끼, 빌런 '죽토' 캐릭터 설정
펜타닐의 의인화로 탄생한 죽토, 그의 아트에 많은 메타포를 설정하였다.

여의사 옷을 입은 토끼, 그러나 우락부락하게 다부진 몸이 드러나 성별을 알 수 없는 빌런. 우리는 그 캐릭터를 죽음의 토끼, 일명 죽토라고 설정했다. 죽토는 '펜타닐'을 의인화한 캐릭터로서 순수함을 상징하는 토끼의 탈을 쓰고 긍정과 치료의 의미를 전달하는 의사가운을 걸치고 있다. 하지만 탈과 옷 밖으로 드러난 그의 몸은 우락부락한 다부진 몸으로 위화감을 조성하게 설정했다. 오밤 중에 실제 토끼의 얼굴을 닮아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지는 탈을 쓰고 다부진 몸에 여의사 가운 한장만을 걸친 변태같은 죽토를 주택가 골목에서 마주한다면, 정말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급박한 순간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걸리면 '좆'되는 죽토기 완성되었다.


단편의 맛은 끝내주는 엔딩이미지와 충격적인 메세지의 힘

결국 쫓기는 주인공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거기에서 우리는 깊은 울림의 메세지를 선사하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이야기 속 모든 것이 주인공 현지가 만들어낸 허상임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또한 현지의 잘못된 행동에서 초래된 결과임을 함께 말하고자 의도했다. 물론 현지라는 캐릭터는 관객들의 공감과 몰입을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던지고 감정도 이입시키는 일종의 맥거핀이자 상황타개의 장치로 현지는 다른 '약'을 통해 잠시 호전되고 물도 마시며 펜타닐로부터 도망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펜타닐은 그 모든 노력을 파괴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불가항력을 지니고 있음을 전달하기 위해 현지의 비극적 결말을 설정했다. 어둡고 차가운 새벽의 골목에서 멈춘 현지의 얼굴에서 모든게 엉망징창으로 망가지고 널부러진 작은 방 속 현지의 얼굴로 컷이 전환되는 연출을 통해 우린 관객들에게 뇌리 깊은 결말을 각인시키고자 구상했다. 즉 현지는 자신의 몸에 갇혀 펜타닐로부터 사냥을 당한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추격은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실내에서 벌어진 허상임을 전달하는 결말로 직결된다.


12시간 밤샘 촬영속 교훈 :
현장 아이디어의 힘과 숙성된 프리프로덕션의 중요성

12시간 이어진 밤샘 촬영은 꽤 고되기도 했고 많은 변화가 생겨 재미도 있었다. 처음 구상한 로케이션 외 다른 공간을 결말의 공간으로 설정했고 S3와 S4를 하나로 합쳤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바람직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현장 아이디어 힘을 체감할 수 있었고 또한 프리프로덕션에서 매우 깊게 설계하고 고심 및 스토리라인을 숙성시켜야만 효율적이고 명쾌한 작품이 제작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사실 이번 단편뿐 아니라, 타 촬영장에서의 경험을 고려해보면 스케쥴 고려 및 다른 컷들과의 균형, 세팅된 화면속에서 최선의 연출을 위해 컷이 변화하거나 합쳐지는 현상들은 비일비재하였다.


영상작품 제작 후의 최대 고민 :
누구에게 어떻게 노출시키고 어디서 상영할 것인가?

그렇게 후배의 과제제출 기한에 맞춰 작품은 완성되었고, 과제 제출이란 1차 목표는 달성되었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거기에 우리는 더 많은 작품 노출을 위해 수업발표 외에도 인스타그램 업로드 및 유튜브 채널 생성을 계획하였다. 더 나아가 다양한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고자 현재 진행중인 공모전 중 출품가능한 대회와 모집중인 독립영화제 단편 부문을 탐색하였다. 영상콘텐츠는 늘 제작 외에도 어떤 플랫폼에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관객들에게 작품을 노출 및 상영 할 것인가에 대한 마케팅적 사고가 필수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제작을 복기하며 : 새로운 취미생활의 시작

그렇게 작품제작을 마치고 후배와 저녁을 먹으며 촬영에 대한 뒷풀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이팅 이슈 및 촬영에 아쉬웠던 점, 현장에서 탁월하게 결정했던 점들을 이야기하며 이것으로 끝이 아닌, 더 다양하고 재밌는 단편을 제작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유튜브 채널을 파서 작품 업로드는 물론, 콘티 제작 및 애니메틱, 프리비즈, 메이킹, 리뷰 등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어 스킬을 정교화시키고 인사이트를 쌓아가는 프로세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씩 가벼운 마음으로 취미 생활로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자 한다.

짧은 시간동안 시간을 쪼개가며 제작하여 매우 피폐했지만, 더없이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https://youtu.be/LJcFslyEvnQ?si=zb_DrXxlj4yjmk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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