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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궁무진화 Sep 24. 2023

삶의 상징과 은유로 가득찬 도봉산 위 결심

바꿀 수 있는 건, 몸뚱아리밖에,부터.

생각을 빼고 살았다.

주어진 대로, 힘들 땐 먹고 눕다보니

회사 다니는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다.


자그마치 8키로.

입사 이래로 8키로가 늘었다.

근육이 이만큼 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온전히 살이 쪘다.


자연스레 의욕을 잃었다.

자신이 싫었다.

무겁게 비대한 지방속에 파묻힌 죄수처럼,

자신 속에 갇혔다.


나조차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에

멈출 수 없는 불쾌한 자명종 시계처럼 흘러만 갈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러다 21년도,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 도봉산에 가고 싶어졌다.

2년만에 오른 신선대는, 그야말로 녹슨 자신을 적나라히 보여줬다.

지방으로 덜 떨어진 체력, 신체능력에 대한 두려움 등

모든게 안락한 소파에 파묻힌 돼지처럼 똬리를 틀고 있음을 발견했다.


꽤나 안주하며 살았구나, 싶었다.

자연스레 편한걸 찾고, 좀 더 쉬운걸 찾고, 힘든 건 피하려 하지 않았나

자신을 해부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하산하던 찰나 엉덩방아와 미끄러짐을 경험하며

길 조차 잘못 들어 수풀을 헤쳐가며 겨우겨우 입구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엉망진창 한 가운데에서 한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삶은 모험이구나.


넘어지고 망가지고 핸드폰은 액정이 나가며 길도 잘 못 들어 홀로 산 속에 갇히기도 하지만

헤쳐가는 모든 게 삶이구나, 그러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착하면 그대로 즐거운 여정이구나.

상징과 은유로 가득찬 등산이었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글을 쓰며 알았다. 나 자신은 야전에서 많은 의미를 얻어감을 말이다.

한동안 재미도 의미를 잃은 자신이 비로소 도봉산을 오르며 삶에 대한 흥미를 되찾았다.

무엇보다 등산에서 얻은 생각을 시작으로, 다시금 놓았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도, 글도 쓰기 싫었던 건 아마도 자신을 마주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자기고백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렇지만 결국에는 마주해야 할 불가역적인 존재기에 외면할수록 방치의 기간만 늘어남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정상에서 읽은 류시화 시인의 시는 마음의 경종을 크게 울렸다.


꽃은 피어도 죽고
피지 않아도 죽는다.

어차피 죽을 것이면
죽을힘 다해
끝까지 피었다 죽으리

- 꽃의 결심(류시화)


하나씩,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마치 처음처럼, 바꿀 수 있는 하나에서 의미를 느끼고

감사하고 재미를 찾는 일. 삶의 모험에 감사하게 최선으로 임하는 일. 그렇게 하루를 의미로 빛내는 일.


그래서 시작해보려 한다.

바꿀 수 있는 몸뚱아리부터 다시금 일으켜 구속에서 벗어나는 여정의 시작을 알리고자 한다.  


도봉산은 나에게 21년도에 이어 23년도에도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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