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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Jun 22. 2024

데닛의 12가지 생각도구 4

스터전 법칙

데닛이 4번째로 제시하는 생각도구는 SF 작가 페드(시어도어) 스터전의 연설문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본명 시어도어 해밀턴 스터전(Theodore Hamilton Sturgeon, 1918-1985)은 미국의 공상과학 소설가이다. 그는 첫 번째 SF 소설인 단편 "에테르 호흡자"(Ether Breather)를 잡지 어스타운딩 1939년 9월호에 간행했고, 편집자 존 W. 캠벨의 호의로 잡지 언노운과 어스타운딩에 활발하게 작품을 올리며 A. E. 밴보트,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 등과 함께 SF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1953년 9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세계 과학 소설 대회에서 스터전은 이렇게 연설했다. "사람들은 과학소설이 화제에 오르면...'과학소설의 90퍼센트가 쓰레기야'라고 말합니다. 예 그  말이 맞습니다. 과학소설의 90퍼센트는 쓰레기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의 90퍼센트는 쓰레기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쓰레기가 아닌 10퍼센트이고, 쓰레기가 아닌 10퍼센트의 과학소설은 어떤 소설 못지않게 흥미롭습니다."


사실 엔젤투자가들이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을 심사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너무 혁신적이라서 실용성이 없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100개의 벤처업체 중에 1개만 살아남아도 그것이 실리콘밸리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원천기술이 될 수도 있다. 이론이 완성된다고, 그것이 상업적으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특허들이 <재료공학의 뒷받침>이 없기에 사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진공튜브 속으로 한국에서 미국까지 지하터널을 뚫어서 만 명이 되는 사람은 10분 만에 보낼 수 있는 설계도가 있다고 하자.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하터널을 파는 기술이나 장비 그리고 자본과 그것이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터널의 소재와 기차의 소재가 발명이 안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설계도에 불과하다.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특허 쓰레기다.

그러나 당장 보기에 쓰레기나 환상 나아가 몽상처럼 보이는 것들이 적절한 시기와 타이밍 그리고 기술과 자본을 만나게 되면 노다지로 변한다는 것은 <혁신의 상식>이 되었다. 데닛은 한 걸음 나아가 시니컬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자생물학 실험의 90퍼센트, 학술지에 발표한 수학논문의 90센트, 그 밖의 모든 것의 90퍼센트는 똥이다... 여기서 우리는 좋은 교훈을 얻는다. 어떤 분야나 장르나 과목, 예술형식을 비판할 때... 야유를 보내느라고 자신과 남들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좋은 작품을 쫓아다니거나, 아니면 내버려 두라."


데닛은 특별히 철학 작품일 경우 아니 나아가 상대방이 이미 지성사에서 거론된 철학자일 경우 특별히 이런 시간 낭비는 삼가라고 권유한다. "경험상, 상대방이 철학자일 때 더욱더 삼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하고 지혜로운 현인으로부터 최근의 지적인 영웅(예를 들어 성격이 전혀 다른 네 명의 사상가들, 즉 버트란트 러셀, 루드비하 비트겐슈타인, 존 듀이, 장 폴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자가 내놓은 최상의 이론과 분석도 교묘한 손재주 몇 번이면 완전한 바보짓이나 트집 잡기처럼 보이도록 할 수 있다... 제발 그러지 마라. 그래봐야 평판을 잃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니까."


이 글을 읽어보면 아마 데닛이 속한 영미의 과학철학 혹은 다른 과학 그룹에서 철학자들에 대한 희화화의 사례가 많은 듯하다.  사실 철학의 본질은 <형이상학>이다. 철학(학문)의 나무에서 과학들이 다 독립하고 남은 것은 형이상학, 인식론, 논리학, 윤리학 정도이다. 그러나 뒤의 세 가지 영역 역시 인지과학이나 정보학 혹은 사회심리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형이상학은 과학의 기준에서 볼 때 학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진다.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가? 내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간은 왜 죽음을 미리 의식하는가? 이런 물음에 학문적으로 논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질문자에게 즉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철학함'이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가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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