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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Jun 24. 2024

데닛의 12가지 생각 도구 6

오캄의 빗자루

데닛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분자생물학자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 1927-2019)가 오컴의 면도날을 현대적으로 비틀어 새롭게 만든 조어 <오컴의 빗자루>란 생각 도구를 소개한다. <오컴의 빗자루>란 '지적으로 부정직한 사람들이 어떤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양탄자 밑에 쓸어 넣는 것을 일컫는 용어이다.'


데닛은 이것이 일종의 반(反) 생각도구이며, 여기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항상 주의력을 잃지 않아야만 한다고 경고한다. 특히 선동자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이 수법을 쓸 때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예를 들어 최근의 한국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선동들은 대표적으로 <오컴의 빗자루>를 사용한다. 소위 사실 확인(팩트 체크)란 과정을 교묘하게 선동의 양탄자 밑으로 집어넣고 대중들을 현혹시킨다.


한국의 좌파와 우파는 서로 <심판론>이라는 프레임으로 투표자들을 선동하였다. 도대체 심판의 대상이 과연 어떤 사실적 오류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엄밀한 논증이 전혀 없었다. <정권 심판론>이란 프레임을 지지하는 하부 프레임은 민생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현 정권 탓이라는 막연한 국민 정서뿐이었다. <운동권 심판론>이란 프레임의 하부 구조는 운동권이 주축이 된 전 정권의 실정만을 수사적 언어로 표현할 뿐이었다.


다수의 학자들은 침묵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정치적인 논쟁에 참여하기를 꺼려하였다. 한국의 미래에 대해 실현가능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진영은 아무 데도 없었다. 데닛은 이런 정치적 풍토에 살지 않았기에 그가 드는 예는 주로 진화론에 반대하는 창조론자들이 사용하는 빗자루 수법이다. '창조론자들은 자기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난감한 증거가 있는데도 한결같이 이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볼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주시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데닛은 우선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권유한다. 영국의 생물학자 스티브 C. 마이어(Stephen C. Meyer)는 2008년 <세포 속의 시그너쳐 (Signature in the Cell)> 에서 '생명이 (초자연적이지 않은) 자연에서 기원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함을 밝히려 하였다.'


마이어의 주장이 얼마나 솔깃했는지 2009년에 미국의 윤리철학자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은 런던의 <타임즈 문예부록>에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데닛은 만약 네이글이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면 마이어가 오캄의 빗자루를 마구 휘둘러 불편한 진실들을 시야에서 없애버렸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고 회고한다.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아직 탄탄하고 합의된 이론을 도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론의 후보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현재 이 분야는 무주공산이 아니라 북적거리는 격전장이다. 그러므로 정상과학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모든 격론을 쓸어버리고 답이 없으니 아예 생명의 기원에 초자연적인 것을 개입시켜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눈가림이다.


데닛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음모론자들 역시 오컴의 빗자루를 휘두르는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정보의 홍수 시대에, 특히 음모의 홍수 시대에 네티즌들은 새로운 음모론을 검색하여,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어떤 결함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그 뒤에 전문가의 반박을 읽어보는 것이 현대인에게 좋은 논리-사고 훈련법이라고 권유한다.

대학을 나왔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논쟁에 약하다. 정치적 담론은 끊임없이 평행을 달린다. 여론은 항상 분열되어 있고, 좌파던 우파던 <부국강병>이란 국가의 단순한 목표마저 잃어버렸다. 21세기에 어떻게 이 작은 나라가 강대국 틈에서 살아남고, 그들과 긴장과 균형을 유지할 것인가? 목표가 정해지면 많은 전문가들이 각 영역에서 격론을 통해서 실현가능한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들을 설득해나가야 한다.


아쉽게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국민들은 쉽게 위정자들의 감언이설에 현혹되기 마련이다. 역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왜 옥스퍼드에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들이 많이 배출되는가? 그것은 매주 혹은 매달 열리는 대학이 초청한 당대 최고의 지성과와의 공개 토론이 학생들의 사고를 업그레이드시키기 때문이다.


유명 인사의 강연만 듣고 제대로 반박조차 할 수 없는 학생들만을 양산하는 교육 시스템으로만으로는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제발 교육 정책자들부터 데닛의 생각 도구를 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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