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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Dec 09. 2024

한무제 강의 3

권력을 향한 구중궁궐의 각축

저자는 소년 유체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 번째 여자는 문제와 효문왕후의 장녀인 장공주 유표(長公主 劉嫖)였다고 소개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공주 이름 앞에 붙인 장이란 접두어는 특별한 명칭으로, 황제의 누나와 누이를 호칭할 때 쓰는 말이었다. 그리고 장공주는 경제의 누나였다.


장공주는 원칙대로 황태자 책봉에 참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기의 자식 특히 딸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중국사나 고사성어에 등장하는 아교(阿嬌)이다. 아교의 교자는 금옥장교(金屋藏嬌: 뛰어난 미인을 좋은 집에 숨겨둔다)란 성어로 만들어질 정도로 중국의 시인들이 즐겨 쓰는 문장이었다.


장공주는 아교가 황후가 되기를 바랐으나 장공주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율희의 반대로 혼사의 요청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공주에게 위로를 준 것은 바로 무제의 어머니인 왕지였다. 장공주와 왕지의 제휴는 후궁을 그들이 완전히 장악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그녀들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그것은 도율정왕 폐영입체(율희를 쓰러뜨리고, 왕미인을 옹립한 다음 유영을 폐하고 유체를 황제로 세운다)는 것이었다.

이제 네 번째 여자가 등장하는 데 그것은 바로 경제의 장자 유영의 생모인 율희이다. 유영은 태자로 책봉되었으나 그녀는 황후로 책봉을 받지 못했는데, 당시의 황후는 후사가 없었던 박황후였고, 경제는 적자는 아니고 장자였으나 문제의 아들은 여전히 여럿명이었다. 그녀는 박황후를 쫓아내고 황후의 자리만을 노리고 있었으나, 왕미인이 자기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왕뤼친은 율희가 경제의 첫 여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큰 아들을 낳았을 뿐인데, 그녀의 가슴속에는 자신이 태후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만 있었고 소유한 것에 대한 감사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녀는 장공주의 능력을 너무 저평가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태자 자리의 안정성에 대하여 너무 과대평가하였으며, 자신이 조만간 태후가 될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하였다는 것이 그녀가 몰락한 이유로 든다.

저자는 중국의 황권을 극단의 독재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 절대 권력에 의한 정치적 변화를 측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황제가 어떤 빈을 황후로 임명하면 바로 그녀는 천하를 호령할 수 있으나, 그다음 날 그녀를 냉궁에 가두면 바로 사면초가가 되는 것이다. 절대적 황권에 대한 그녀의 이러한 오판은 오히려 무제를 등극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등장시키는 여인은 바로 두태후(竇皇后)이다. 효문황후 두의(孝文皇后 竇猗)는 한 문제의 황후이며, 경제의 어머니이다. 조나라에서 궁녀로 온 그녀는 여태후를 섬기게 되었는데, 당시 한태종인 효문황제 유항의 마음을 사로잡아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았다고 한다. 딸이 바로 장공주 유표였고, 맏아들 유계는 후일 경제가 되었다.

한태종 유항에게는 적실이 있었으나 한경제 유경이 즉위하기 전에 갑자기 사망하였고, 그가 황제가 된 이후에 그녀의 네 아들마저 잇따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두의는 한문제에 의해 황후로 봉해지고 경제 때 태후가 되었다. 그리고 황제 계승권에 당당하게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과연 장공주와 왕지는 어떻게 유영 대신에  유체를 황제가 되게 하였을까? 한무제 유체는 두태후의 견제 속에서 어떻게 자기 세력을 키웠을까? 이 물음들은 다음 장에서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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